왕대포집 세째며느리

15년만에 변신

황금횃대 2005. 12. 18. 11:02

며칠 전에도 말했듯이 고스방은 내가 머리 모양 바꾸는 일에 결사반대였다.

이유는 내가 머리 손질을 잘 못한다는 잘못된 믿음 덕이다.

이 잘못된 믿음의 근간이 되는 한 사건이 있었으니...때는 바야흐로 십오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둘째 아이 병조가 태어나고 딱 일년만에 젤 큰 아즈버님이 돌아가셨다

그 때 내가 얼라 낳고 일 년이내에는 파마를 하면 머리밑이 들뜬다고 아주 금기시하였다

출산 후 대충 자르고 묶어서 한 일년 지내다가 아즈버님 사십구제를 지내고 며칠 뒤에 파마를 했겠다.

파마한 머리로 아이랑 하루종일 딩굴다보면 머리카락은 퍼시시하다 못해 바위덩어리처럼 부피가 커져서 새집 짓느라 여름 내도록 한대(바깥)살림을 해서 쌔까맣게 탄 내 얼굴과 환상적으로 맞아 떨어져 고서방은 질쌕팔색을 하였다.

그러다 인천에서 전화가 와서 아즈버님이 집 밖(병원)에서 돌아가셨으니 길 닦아주는 굿을 한다고 나를 불러 올렸다.

새벽시간을 가로질로 서울로, 부평으로 가서 굿을 한 나절 참관하고 서둘러 저녁 기차 시간에 맞춰 다시 서울역으로 이동. 겨울 차를 타고 앉으니 종일 긴장이 얼마나 간단없이 풀리던지 집으로 가는 내도록 졸며 깨며 머리를 끄덕거리고 부비고 생 지랄을 다 하면서 갔겠다.

퍼뜩 눈을 떠보니 영동이라. 후다닥 봇짐 챙겨 내려서 역전을 나가니, 고스방이 영동 역전에서 나를 태우고 가겠노라 기다리다가 푸시시 대가리라고는 만장지장 한 떡당새기가 된 내 머리를 보고 기절 직전이였다.

역전 앞에는 아는 동료 운전 기사들이 손님을 받는다고 주욱~ 진을 치고 삼삼 오오 모여있는데 자기 여편네가 바위덩어리같은 머리를 흔들며 자기를 아는 척하며 웃어싸니 고서방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내가 아주 챙피시러워서 얼른 차로 되돌아 가고 싶은 걸 간신히 참고>여편네를 맞이했다나?

 

그 이후로 머리카락 모양에 대한 지청구는 늘어졌다.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 두번인지 자꾸 들어싸니 내가 기분이 좋겠는가. 졸지에 머리 손질도 하나 못하는 덜 떨어진 여편네가 된 판국에.

 

그길로 얼마 되지 않아 내 머리카락은 커트머리로 바꼈고 그게 십오년이나 지속됐다.

가끔 지겨워 나도 파마를 한 번 해볼까 하고 넌즛 이야기하면 고스방은 예의 그 날의 그 바윗덩어리수세방티 머리모양을 들고나와서는 내 기를 팍팍 죽였다.

 

그러나 세월은 흐르고 고스방의 생각도 많이 수그러 들었고, 아니 수그러들었는기 아이고 내 대가리가 파마를 안 해도 굵어질대로 굵어져 예전에 그 새댁이 시절이 아니란 말일시.

이번에 아주 큰맘 먹고 머리카락을 길러 며칠 전 친구랑 파마를 하러 갔겠다.

그 동안 파마값의 변천사 이런걸 알 턱이 없는 나.

 

새팅파마라고 별로 곱슬곱슬하지 않을거라는 미장원 마담의 말에 덜컥 하고 값을 물으니 오만원이란다. 아주 기절을 할 노릇이다. 주머니에는 삼만원 달랑 남았는데 그거 먼저 주고 계좌번호 알려주면 집에가서 송금하겠노라 하고는 돌아왔다.

 

십오년만에 변신 앞에 고스방은 그 입을 삐죽거리며 바위덩어리 운운하며 눈을 흘겨댔지만 흥! 아무리 그래싸도 나는 내가 이뻐!

 

 

 

어이구...앞가슴이 너무 파인 옷이네 찍고 보니...어쩌겠냐..이 의상은 덤이구(이게 지난 여름에 산 가슴패기 확 파인 나시티여 ㅎㅎㅎㅎ)

 

근데 요즘 사진을 자꾸 찍어보니 내가 참 많이 늙었구나 하는 생각이 드네

여태 철이 덜 들어서그런지 늙었다는 생각을 잘 안하구 살았구만.

하염없이 처지는 저 볼살이며 눈 밑에 주름이며..ㅋㅋ

 

그래도 좋아

세월 앞에 자연스럽게 늙는거야 축복이지 뭐.

그냥 이 때쯤 되면 자슥이든 스방이든 속을 쎅여서 팍팍, 한 꺼번에 늙기도 하는데 말여.

 

 

 

 

자세히 보면 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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