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온이 올라 가고, 빗방울 기별이 잦으니 창 유리는 자주 뿌옇게 흐려온다
마치, 은밀히 봄이 오는 모습을 모자이크처리 하듯, 아무리 보아도 사람의 눈은 봄이 어디서 그 가쁜 숨결을 토해내는지 알 수 없건만, 창은 자주 그 모습을 감추인다
봄비가 고요히 오는 아침, 간혹 큰 빗방울에 움찔 나뭇가지가 움직이기도 하지만, 비 맞은 새조차 조심스레 가지 위에 앉았다 사뿐이 날아 갈 뿐이다..
무엇하나 다칠새라 조심조심하고 있다.
제대 말년에는 떨어지는 낙엽에도 머리 조심하라는 말이 있다지만, 봄은 무엇이 무서워 저리 사뿐사뿐 제 행보를 옮기고 있는 것일까.
화분에 옮겨 심어 몇 해를 넘긴후 무성해진 제비꽃은 아직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 겨울 추위에 다 얼어 죽었나 하고 무심한 마음으로 며칠을 지내면, 그제서야 게으른 하품을 하며 볼그족족 싹을 내밀던 전례를 아는지라 삭막한 화분에 가끔 궁금한 눈길만 보낼 뿐 조바심은 치지 않는다.
밭에 가서 흙을 퍼와 매발톱 꽃씨도 넣어야하는데, 날은 매일 궂고 몸은 천근만근이라 쉽게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고 있다.
화장대 서랍 속 봉투에 쌓인 꽃씨들도 갑갑하리라.
건네준 손길이 착, 착, 고스란히 접혀져 있는 봉지를 열어 본다
약봉지 접는 방법으로 신문지가 접혀져 있고, 그 안에는 자잘한 매발톱꽃씨가 까만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빨리 세상 구경하고 싶어요"이렇게 작은 소리로 까만 씨앗들이 조잘조잘 항의를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알았어...비 그치면 곧 너희들을 바람결에 내어 놓을게"
이렇게 비 오는 날은 장화를 신고 길을 나서고 싶다
우산 하나 들고, 장화 신으면 비 오는 날 이보다 더 든든한 장비는 없다.
운동화나 구두를 신으면 빗방울 튀기는 것이 무섭고, 물 웅덩이가 성가시지만 장화를 신으면 그런것이 아무렇지도 않다.
부러 물 웅덩이를 거슬로 지나가고, 발걸음을 씩씩하게 내 딛일 수가 있다.
새 봄, 나는 봄날의 나른한 권태와 이기기 위해 무슨 장비를 갖춰야 하나?
무엇이든 활기차게 올라오는 것들의 무서운 기세를 보면서 지레 짓눌린 나 자신을 쳐다보는 일은 생각만 해도 힘빠지는 일이다.
오직 치열함, 그것으로 정신의 갑옷을 입고 계절의 도전 앞에 서 보기로 한다. 손바닥이 거칠어 지도록 괭이를 잡고, 녹아 흐믈흐믈해진 흙을 끌어 덮으며, 소똥 내음 풍기는 거름을 포도나무 아래 퍼다 먹이며, 등때기 모락모락 피어 오르는 내 훈김을 느끼며, 그렇게 봄을 이겨야겠다.
비 오는 오늘만은 푸~욱 쉬고.
전상순
마치, 은밀히 봄이 오는 모습을 모자이크처리 하듯, 아무리 보아도 사람의 눈은 봄이 어디서 그 가쁜 숨결을 토해내는지 알 수 없건만, 창은 자주 그 모습을 감추인다
봄비가 고요히 오는 아침, 간혹 큰 빗방울에 움찔 나뭇가지가 움직이기도 하지만, 비 맞은 새조차 조심스레 가지 위에 앉았다 사뿐이 날아 갈 뿐이다..
무엇하나 다칠새라 조심조심하고 있다.
제대 말년에는 떨어지는 낙엽에도 머리 조심하라는 말이 있다지만, 봄은 무엇이 무서워 저리 사뿐사뿐 제 행보를 옮기고 있는 것일까.
화분에 옮겨 심어 몇 해를 넘긴후 무성해진 제비꽃은 아직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 겨울 추위에 다 얼어 죽었나 하고 무심한 마음으로 며칠을 지내면, 그제서야 게으른 하품을 하며 볼그족족 싹을 내밀던 전례를 아는지라 삭막한 화분에 가끔 궁금한 눈길만 보낼 뿐 조바심은 치지 않는다.
밭에 가서 흙을 퍼와 매발톱 꽃씨도 넣어야하는데, 날은 매일 궂고 몸은 천근만근이라 쉽게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고 있다.
화장대 서랍 속 봉투에 쌓인 꽃씨들도 갑갑하리라.
건네준 손길이 착, 착, 고스란히 접혀져 있는 봉지를 열어 본다
약봉지 접는 방법으로 신문지가 접혀져 있고, 그 안에는 자잘한 매발톱꽃씨가 까만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빨리 세상 구경하고 싶어요"이렇게 작은 소리로 까만 씨앗들이 조잘조잘 항의를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알았어...비 그치면 곧 너희들을 바람결에 내어 놓을게"
이렇게 비 오는 날은 장화를 신고 길을 나서고 싶다
우산 하나 들고, 장화 신으면 비 오는 날 이보다 더 든든한 장비는 없다.
운동화나 구두를 신으면 빗방울 튀기는 것이 무섭고, 물 웅덩이가 성가시지만 장화를 신으면 그런것이 아무렇지도 않다.
부러 물 웅덩이를 거슬로 지나가고, 발걸음을 씩씩하게 내 딛일 수가 있다.
새 봄, 나는 봄날의 나른한 권태와 이기기 위해 무슨 장비를 갖춰야 하나?
무엇이든 활기차게 올라오는 것들의 무서운 기세를 보면서 지레 짓눌린 나 자신을 쳐다보는 일은 생각만 해도 힘빠지는 일이다.
오직 치열함, 그것으로 정신의 갑옷을 입고 계절의 도전 앞에 서 보기로 한다. 손바닥이 거칠어 지도록 괭이를 잡고, 녹아 흐믈흐믈해진 흙을 끌어 덮으며, 소똥 내음 풍기는 거름을 포도나무 아래 퍼다 먹이며, 등때기 모락모락 피어 오르는 내 훈김을 느끼며, 그렇게 봄을 이겨야겠다.
비 오는 오늘만은 푸~욱 쉬고.
전상순
'왕대포집 세째며느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춘설과 장물 단지 (0) | 2004.04.27 |
---|---|
베갯잇을 시치며 (0) | 2004.04.27 |
나 죽거등 니가 알아서 혀..... (0) | 2004.04.27 |
사라져 가는 것들 (0) | 2004.04.27 |
곰 이야기 (0) | 2004.04.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