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같은데 가서 흠..어디가 좋을까 그래, 서울역 앞에서 바삐 왔다갔다
하는 사람들 앞을 막고 물어보자
"당신은 당신 꼴리는대로 하고 사슈?"
"천만에요"
모르긴 몰라도 아마 백 이면 백, 천 이면 천 사람이 한결같이 <꼴리는대로 어떻게 하고 사노> 할거다.
꼴린다는 말의 어원은 어렴풋이 알기로, <좆 꼴리는대로>란 말의 줄임말일터다. 남성의 거시기가 발기할 때 왼쪽으로 서는지 오른쪽으로 서는지 그건 순전히 거시기 주인 맘대로란 뜻이 내포되어 있다.(참,우리말이지만 그걸 발견한 사람이나 첨 써 먹은 사람이나 존경시럽다)
그렇게 세상사 모든 일들을 제 맘내키는대로 하고 산다는 너무나 꿈같은 이야기를 내가 왜 하느냐 하면 일전에 스방으로부터 이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봄도 오고 겨울 옷이랑 입다 만 옷들이 너저분히 걸려 있는 옷걸이도 그렇고, 구석구석 쌓인 먼지도 여간아니고 해서 모처럼 대청소를 하였다.
있는거라곤 힘줄 돋은 두 팔뚝과 어데 쓸 지도 모르는 힘 밖에 없는 여편네, 처음에는 소소한 가구를 이리저리 옮기며 그 밑에 딩굴고 있는 차렵이불 두께 수준의 먼지들을 빨아 땡기고 있는데, 제작년 12월에 도배하면서 삐그덕 망가진 컴퓨터 책상이 눈에 들어왔다.
아이들이 서로 컴퓨터를 하겠다고 몸 싸움을 할 때는 이녀르꺼 책상이 이리 삐딱, 저리 삐딱 넘어가는데, 모니터가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것 같은 불안한 기운을 매번 작대기로 바란스 맞춰 버팅겨 놓고 사용을 하였다
그런 몹쓸 풍경이 대뇌에 접수가 되자 나는 고만 불안하고 만다.
그래서 아이들 힘을 빌어 컴의 코드를 다 배놓고 컴 책상을 해체하였다.
방 하나 치우는데 한 나절이 뭔가, 꼬박 하루 해가 다 차서야 두박스의 책을 들어내고 한 박스의 프린트물, 자잘한 장난감 부스러기, 딱지, 구슬.......많기도 많다. 그렇게 청소가 끝나고 컴 책상은 분해되어 바깥으로 걸어나갔다.
침대도 방향을 돌려 벽 쪽으로 붙여 놓고 책상하나 들어내니 얼마나 방이 훤하던지...정말이지 살면서 너무 많은 것들을 들여놓고 살구나 하는 반성이 저절로 온다.
그런 훤한 풍경도 잠시, 이 삼일 지나다 보니 컴과 부속 장치를 딸아이 책상 위에 가득 올려 놓은 것도 눈에 거슬리고, 무엇보다 책상도 없이 5학년까지 버텨준 아들 놈이 불쌍하기도 하고...기타 등등의 이유들이 생각나자 고만 내 마음은 바빠지기 시작한다.
그래서 결심하기릴, 이참에 공간도 생겼으니 아들놈 책상을 하나 들여놔야지 하는 것.
이 결심을 고서방한테 말하면 분명히 손사래를 치며 눙깔을 치뜨고는 "또 멀 사!"하고 한 마디 들을게 뻔한 터라, 고만 영동 시장에 간다고 나와서는 책상을 덜컥 사고 말았다.
책상 250,000원에 전자렌지와 밥솥을 얹을 수 있는 렌지대까지 넣어서 290,000에 돈을 지불하고 집으로 왔다. 저녁에 배달을 해 주겠다고.
집에 와 반찬 몇가지를 만들고 저녁 준비를 하고 기다리니 전화가 왔는데 책상을 싣고 동네 입구 까지 왔다는 것이다. 아 그런데 뿔사 뿔사 아뿔사. 고서방이 마침 그 때 저녁을 먹으러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밥상을 서둘러 차려주고 바깥에 나가서 운반차를 집 쪽으로 유도해서 마당에 차가 들어왔다.
밥상에 앉아 있던 고서방, 뭔 봉고화물차가 마당가운데로 들어오니 숟가락도 놓아두고 바깥은 내다본다.
"저거 머여?????? (눈꼬리 올라가면서)"
"아, 컴퓨터 책상이 망가져서 병조 책상도 필요할 거 같아 사왔어요"
"이 씨8, 책상 없어서 여직까지 공부 못했냐"
가구점 사람이 책상을 들고 들어오니 더 이상 말은 안한다.
밥만 먹고는 말도 없이 시퍼런 인상을 해가지고는 일하러 다시 나간다.
문제는 밤.
여전히 책상이 들어 온 것에 못마땅하다. 시베리아 바람을 어깨에 한짐 걸머지고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을 째려보고 있다. 우리는 코너에 몰린 짐승떼처럼 죽은 듯 방안에서 가만히 있었다.
속으로야, 뭐 내 사치할라고 물건 산 것도 아니고 자슥놈 공부 잘하고 책 정리 좀 깨끗하게 하라고, 심기일전하여 공부 잘 할 지 누가 알어? 란 항변의 말이 부글부글 원더풀 하이타이처럼 끓어 올랐지만, 이 상태에 그런 말을 끄집어 냈다가는 신나에 불을 땡기는 일일거고..그저 이 냉전의 기류가 퍼뜩 지나가기만을 바랄 뿐인것이다.
그 날 밤은 엥돌아져 저 혼자 팔을 이마 우에 얹어서 잠을 잔다.
내 옆으로 접근도 안하고.
닭이 울고 아침이 밝아 밥을 먹고 나가는 고스방 앞에가서 나는 이런 말을 하고 말았으니.
"친정집에 좀 다녀올게요. 둘째 동생이 부산으로 이사를 해서 거기 집들이를 다 같이 간데요"
"언제 니가 내한테 보고하고 뭘 했냐? 지 하고 싶은대로 다 하고 살면서."
찬바람이 씽씽 분다...하이고.
그래도 뭐 우린 짐을 싸들고 친정으로 가서 이박 삼일의 일정으로 보내고 밤 10시가 다 되어서 황간으로 돌아왔다.
친정엄마는 이렇게 늦게 출발하믄 아이들도 힘든데 하룻밤 더 자고 가지 하면서 우리의 손목을 붙잡았지만, 그 날은 월요일이여서 남편이 잘 보는 <야인시대>도 녹화를 해 놓아야하고...하룻밤 더 자면 혼자서 화가 머리끝까지 받칠거 같아 늦더라도 황간으로 왔다.
밤 11시가 다 되어 들어온 고스방.
야인시대 녹화를 되감기 해 보면서,
"대구는 갔다하믄 오밤중에 밖에 못오나?(여전히 쌍심지)"
"부산 갔다가 부산에서 늦게 대구로 오는 바람에 늦었어요(흠매 무써워)"
"좀 일찍 일찍 나서서 오면 발가락이 썩나?"
"큰동생이 아이들 아쿠아리움 구경시켜주고 용궁사에도 들렀다가, 거 뭐래나 양산 통도랜드에 들러 놀이기구 태워 준다고 거기도 갔다오니 더 늦었지 뭐라요"
"그래, 어디 한번 니 꼴리는대로 살어봐라!"
꼴리는대로!
두구두구두구둥~~~~~나는 여기서 열 받았다.
꼴리는대로 살었다고? 내가 여태까지 내 꼴리는대로 살었는기 뭐가 있는데, 내가 뭐 내 쓰자고 책상을 샀나? 1월에 친정에 가니 엄마가 아이들 공부하는데 쓰라고 돈을 주시길레 가지고 있다보믄 그거 어데 썼는지도 모르게 다 쓰지 싶어서 병조 책상 사 좃는데 그기 뭐 그리 잘못 된기고 응? 허이고, 내 쓰자고 머 샀다믄 큰 일 날뻔 하겠네. 내 자슥만 되나 당신 자슥도 되잖아. 애들 공부하라고 책상 산 것이 뭐그리 맞아 죽을 짓이라고 이래 사람을 뽂아쌌노. 그려, 당신 공부할 때야 누가 쓰다 준 책상에 공부했지. 나도 그랬어, 책상없이 공부했어. 그렇지만 지금은 시절이 다르잖아, 아랫채에 있는 당신 쓰던 책상 딲아서 아이들 주라고? 쥐 오줌냄새에 책상서랍은 잘 빠져나오지도 않는데, 나는 그렇게 못해 아이들도 그거 쓰지도 않을거구. 다다다다다..."
"여편네가 사는 것은 좋아해가지고, 맨날 집 좁다 그러면서 멀 자꾸 사다대나?"
"렌지대도 그래, 내가 필요해서 샀어요. 당신도 차 운전하다가 불편한 것은 새 부속 사다 넣고 하잖아, 나도 부엌 일하믄 좁아서 물건을 어데 놓을지도 모르는데 렌지하고 밥솥하고 정리해 놓으니 씽크대가 넓어져서 일하기도 좋찮아. 나는 내 하는 일에 즐겁고 편하게 할라고 그거 샀는데 왜 자꾸 잔소리를 해대나."
벽 쪽에 등을 기대고 다리를 세우고 머리를 그 속에 파묻는다.
평생을 살 섞고 살아도 앞 뒤가 절벽같을 때가 있다.
내가 책상을 사겠다고 말 한마디 하지 않는것은 분명 잘못인데, 만일 내가 말을 했다면 책상을 사라고 했겠는가? 당장 자기가 쓰던 옛날 베니어합판 책상 물로 씻어서 쓰라고 날 아랫채로 끌고 갔을걸.
"무엇이든 말도 안하고 저질로 놓고 보자는 심사인데 그렇게만 살어.
언제 한번 안 좋은 꼴 볼테니."
살아가는 일은 끝없는 소모이다.
내 육신의 소모는 말 할 것도 없거니와, 살림을 이루며 산다는 것은 처음 장만한 것으로 평생 쓰지 못한다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
한 남자와 몇십년 같이 사는 것도 참말로 지겨운 일인데, 그 지겨운 일이 정녕 지겹게 느껴지지 않고 살아 갈 수 있는 것은, 끝없이 새로운 것들이 삶 가운데 발을 내 딛이고, 보기 싫은 것들이 사라져 준다는 일이다. 아이들도 처음 어릴 상태에서 끝까지 그렇게 간다면 누가 아이를 낳아서 키우겠는가. 진보와 성장, 끊임없이 변화하는 사물의 새로운 면모에서 스스로 느끼는 기쁨이 더 크기 때문에 사람은 즐겁게 살아 갈 수 가 있는 것이다.
"나는 이리저리 홰까닥 바꾸는 사람이 젤 싫어"
내가 뭘 그렇게 홰까닥 바꾸면서 살았는가. 파마머리 싫다해서 십수년을 생짜 짧은 커트머리하고 살아가고, 염색을 한번 지대로 색 넣어서 했던가, 아니면 하루 아침에 삶의 방식을 바꾸었던가. 반찬도 작년 그 시절의 그 반찬을 올해도 해 먹고, 저 좋아하는 감색바지를 사시장철 사다 주지 않았던가. 섭섭한 것은 한 두가지가 아니다.
무.얼.그.리. 내. 꼴.리.는.대.로. 살.았.던.가
(나는 꼴릴 좆도 엄따 씨이)
밤은 깊어가고, 첫 새벽 알리는 달구새끼 울음 소리 들린다
아!
또 아침인가.
*지금은 뭐 상황종료가 된 일이지만, 언제라도 다시 부풀어 오를 수 있는 밀가루 반죽같은거..쩝*
전상순
하는 사람들 앞을 막고 물어보자
"당신은 당신 꼴리는대로 하고 사슈?"
"천만에요"
모르긴 몰라도 아마 백 이면 백, 천 이면 천 사람이 한결같이 <꼴리는대로 어떻게 하고 사노> 할거다.
꼴린다는 말의 어원은 어렴풋이 알기로, <좆 꼴리는대로>란 말의 줄임말일터다. 남성의 거시기가 발기할 때 왼쪽으로 서는지 오른쪽으로 서는지 그건 순전히 거시기 주인 맘대로란 뜻이 내포되어 있다.(참,우리말이지만 그걸 발견한 사람이나 첨 써 먹은 사람이나 존경시럽다)
그렇게 세상사 모든 일들을 제 맘내키는대로 하고 산다는 너무나 꿈같은 이야기를 내가 왜 하느냐 하면 일전에 스방으로부터 이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봄도 오고 겨울 옷이랑 입다 만 옷들이 너저분히 걸려 있는 옷걸이도 그렇고, 구석구석 쌓인 먼지도 여간아니고 해서 모처럼 대청소를 하였다.
있는거라곤 힘줄 돋은 두 팔뚝과 어데 쓸 지도 모르는 힘 밖에 없는 여편네, 처음에는 소소한 가구를 이리저리 옮기며 그 밑에 딩굴고 있는 차렵이불 두께 수준의 먼지들을 빨아 땡기고 있는데, 제작년 12월에 도배하면서 삐그덕 망가진 컴퓨터 책상이 눈에 들어왔다.
아이들이 서로 컴퓨터를 하겠다고 몸 싸움을 할 때는 이녀르꺼 책상이 이리 삐딱, 저리 삐딱 넘어가는데, 모니터가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것 같은 불안한 기운을 매번 작대기로 바란스 맞춰 버팅겨 놓고 사용을 하였다
그런 몹쓸 풍경이 대뇌에 접수가 되자 나는 고만 불안하고 만다.
그래서 아이들 힘을 빌어 컴의 코드를 다 배놓고 컴 책상을 해체하였다.
방 하나 치우는데 한 나절이 뭔가, 꼬박 하루 해가 다 차서야 두박스의 책을 들어내고 한 박스의 프린트물, 자잘한 장난감 부스러기, 딱지, 구슬.......많기도 많다. 그렇게 청소가 끝나고 컴 책상은 분해되어 바깥으로 걸어나갔다.
침대도 방향을 돌려 벽 쪽으로 붙여 놓고 책상하나 들어내니 얼마나 방이 훤하던지...정말이지 살면서 너무 많은 것들을 들여놓고 살구나 하는 반성이 저절로 온다.
그런 훤한 풍경도 잠시, 이 삼일 지나다 보니 컴과 부속 장치를 딸아이 책상 위에 가득 올려 놓은 것도 눈에 거슬리고, 무엇보다 책상도 없이 5학년까지 버텨준 아들 놈이 불쌍하기도 하고...기타 등등의 이유들이 생각나자 고만 내 마음은 바빠지기 시작한다.
그래서 결심하기릴, 이참에 공간도 생겼으니 아들놈 책상을 하나 들여놔야지 하는 것.
이 결심을 고서방한테 말하면 분명히 손사래를 치며 눙깔을 치뜨고는 "또 멀 사!"하고 한 마디 들을게 뻔한 터라, 고만 영동 시장에 간다고 나와서는 책상을 덜컥 사고 말았다.
책상 250,000원에 전자렌지와 밥솥을 얹을 수 있는 렌지대까지 넣어서 290,000에 돈을 지불하고 집으로 왔다. 저녁에 배달을 해 주겠다고.
집에 와 반찬 몇가지를 만들고 저녁 준비를 하고 기다리니 전화가 왔는데 책상을 싣고 동네 입구 까지 왔다는 것이다. 아 그런데 뿔사 뿔사 아뿔사. 고서방이 마침 그 때 저녁을 먹으러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밥상을 서둘러 차려주고 바깥에 나가서 운반차를 집 쪽으로 유도해서 마당에 차가 들어왔다.
밥상에 앉아 있던 고서방, 뭔 봉고화물차가 마당가운데로 들어오니 숟가락도 놓아두고 바깥은 내다본다.
"저거 머여?????? (눈꼬리 올라가면서)"
"아, 컴퓨터 책상이 망가져서 병조 책상도 필요할 거 같아 사왔어요"
"이 씨8, 책상 없어서 여직까지 공부 못했냐"
가구점 사람이 책상을 들고 들어오니 더 이상 말은 안한다.
밥만 먹고는 말도 없이 시퍼런 인상을 해가지고는 일하러 다시 나간다.
문제는 밤.
여전히 책상이 들어 온 것에 못마땅하다. 시베리아 바람을 어깨에 한짐 걸머지고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을 째려보고 있다. 우리는 코너에 몰린 짐승떼처럼 죽은 듯 방안에서 가만히 있었다.
속으로야, 뭐 내 사치할라고 물건 산 것도 아니고 자슥놈 공부 잘하고 책 정리 좀 깨끗하게 하라고, 심기일전하여 공부 잘 할 지 누가 알어? 란 항변의 말이 부글부글 원더풀 하이타이처럼 끓어 올랐지만, 이 상태에 그런 말을 끄집어 냈다가는 신나에 불을 땡기는 일일거고..그저 이 냉전의 기류가 퍼뜩 지나가기만을 바랄 뿐인것이다.
그 날 밤은 엥돌아져 저 혼자 팔을 이마 우에 얹어서 잠을 잔다.
내 옆으로 접근도 안하고.
닭이 울고 아침이 밝아 밥을 먹고 나가는 고스방 앞에가서 나는 이런 말을 하고 말았으니.
"친정집에 좀 다녀올게요. 둘째 동생이 부산으로 이사를 해서 거기 집들이를 다 같이 간데요"
"언제 니가 내한테 보고하고 뭘 했냐? 지 하고 싶은대로 다 하고 살면서."
찬바람이 씽씽 분다...하이고.
그래도 뭐 우린 짐을 싸들고 친정으로 가서 이박 삼일의 일정으로 보내고 밤 10시가 다 되어서 황간으로 돌아왔다.
친정엄마는 이렇게 늦게 출발하믄 아이들도 힘든데 하룻밤 더 자고 가지 하면서 우리의 손목을 붙잡았지만, 그 날은 월요일이여서 남편이 잘 보는 <야인시대>도 녹화를 해 놓아야하고...하룻밤 더 자면 혼자서 화가 머리끝까지 받칠거 같아 늦더라도 황간으로 왔다.
밤 11시가 다 되어 들어온 고스방.
야인시대 녹화를 되감기 해 보면서,
"대구는 갔다하믄 오밤중에 밖에 못오나?(여전히 쌍심지)"
"부산 갔다가 부산에서 늦게 대구로 오는 바람에 늦었어요(흠매 무써워)"
"좀 일찍 일찍 나서서 오면 발가락이 썩나?"
"큰동생이 아이들 아쿠아리움 구경시켜주고 용궁사에도 들렀다가, 거 뭐래나 양산 통도랜드에 들러 놀이기구 태워 준다고 거기도 갔다오니 더 늦었지 뭐라요"
"그래, 어디 한번 니 꼴리는대로 살어봐라!"
꼴리는대로!
두구두구두구둥~~~~~나는 여기서 열 받았다.
꼴리는대로 살었다고? 내가 여태까지 내 꼴리는대로 살었는기 뭐가 있는데, 내가 뭐 내 쓰자고 책상을 샀나? 1월에 친정에 가니 엄마가 아이들 공부하는데 쓰라고 돈을 주시길레 가지고 있다보믄 그거 어데 썼는지도 모르게 다 쓰지 싶어서 병조 책상 사 좃는데 그기 뭐 그리 잘못 된기고 응? 허이고, 내 쓰자고 머 샀다믄 큰 일 날뻔 하겠네. 내 자슥만 되나 당신 자슥도 되잖아. 애들 공부하라고 책상 산 것이 뭐그리 맞아 죽을 짓이라고 이래 사람을 뽂아쌌노. 그려, 당신 공부할 때야 누가 쓰다 준 책상에 공부했지. 나도 그랬어, 책상없이 공부했어. 그렇지만 지금은 시절이 다르잖아, 아랫채에 있는 당신 쓰던 책상 딲아서 아이들 주라고? 쥐 오줌냄새에 책상서랍은 잘 빠져나오지도 않는데, 나는 그렇게 못해 아이들도 그거 쓰지도 않을거구. 다다다다다..."
"여편네가 사는 것은 좋아해가지고, 맨날 집 좁다 그러면서 멀 자꾸 사다대나?"
"렌지대도 그래, 내가 필요해서 샀어요. 당신도 차 운전하다가 불편한 것은 새 부속 사다 넣고 하잖아, 나도 부엌 일하믄 좁아서 물건을 어데 놓을지도 모르는데 렌지하고 밥솥하고 정리해 놓으니 씽크대가 넓어져서 일하기도 좋찮아. 나는 내 하는 일에 즐겁고 편하게 할라고 그거 샀는데 왜 자꾸 잔소리를 해대나."
벽 쪽에 등을 기대고 다리를 세우고 머리를 그 속에 파묻는다.
평생을 살 섞고 살아도 앞 뒤가 절벽같을 때가 있다.
내가 책상을 사겠다고 말 한마디 하지 않는것은 분명 잘못인데, 만일 내가 말을 했다면 책상을 사라고 했겠는가? 당장 자기가 쓰던 옛날 베니어합판 책상 물로 씻어서 쓰라고 날 아랫채로 끌고 갔을걸.
"무엇이든 말도 안하고 저질로 놓고 보자는 심사인데 그렇게만 살어.
언제 한번 안 좋은 꼴 볼테니."
살아가는 일은 끝없는 소모이다.
내 육신의 소모는 말 할 것도 없거니와, 살림을 이루며 산다는 것은 처음 장만한 것으로 평생 쓰지 못한다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
한 남자와 몇십년 같이 사는 것도 참말로 지겨운 일인데, 그 지겨운 일이 정녕 지겹게 느껴지지 않고 살아 갈 수 있는 것은, 끝없이 새로운 것들이 삶 가운데 발을 내 딛이고, 보기 싫은 것들이 사라져 준다는 일이다. 아이들도 처음 어릴 상태에서 끝까지 그렇게 간다면 누가 아이를 낳아서 키우겠는가. 진보와 성장, 끊임없이 변화하는 사물의 새로운 면모에서 스스로 느끼는 기쁨이 더 크기 때문에 사람은 즐겁게 살아 갈 수 가 있는 것이다.
"나는 이리저리 홰까닥 바꾸는 사람이 젤 싫어"
내가 뭘 그렇게 홰까닥 바꾸면서 살았는가. 파마머리 싫다해서 십수년을 생짜 짧은 커트머리하고 살아가고, 염색을 한번 지대로 색 넣어서 했던가, 아니면 하루 아침에 삶의 방식을 바꾸었던가. 반찬도 작년 그 시절의 그 반찬을 올해도 해 먹고, 저 좋아하는 감색바지를 사시장철 사다 주지 않았던가. 섭섭한 것은 한 두가지가 아니다.
무.얼.그.리. 내. 꼴.리.는.대.로. 살.았.던.가
(나는 꼴릴 좆도 엄따 씨이)
밤은 깊어가고, 첫 새벽 알리는 달구새끼 울음 소리 들린다
아!
또 아침인가.
*지금은 뭐 상황종료가 된 일이지만, 언제라도 다시 부풀어 오를 수 있는 밀가루 반죽같은거..쩝*
전상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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