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대포집 세째며느리

산다는 것 -남편의 수염

황금횃대 2004. 5. 4. 10:10
산다는 것

[부제:남편의 수염]




남편이 응급실로 실려갔다

배가 탈이 났다

밤새도록 토하구 설사를 했다

까치름하다 얼굴이



응급실에서

한 상태기도 안되게 오그리고 잔다

저 넘의 병원침대는 왜 저리 빈곤하게 생겼나

발이 침대 밖으로 삐져 나갔다

일순, 흥부의 방이 생각났다

너무 작아서 팔은 앞마당, 발은 뒷뜰로 나간다는



참, 오랜만에

아니다, 결혼 후 첨으로 그렇게 남편의 얼굴을 자세히 보았다

아주 자세히

평상시 눈 감으면

맨날보는 남편의 얼굴이지만 주름살의 지도가 잘 그려지지 않았다



아하

눈가의 주름은 저렇게 자리 잡았구나

귓바퀴위에 하얀 머리칼은 언제 저리 소복하게 놨누

그런데

나는 보고 말았다

남편의 흰 수염을

비온 뒷날 돋아나는 부추밭의 돋음으로

남편의 흰 수염이 그렇게 돋아났다



"여보! 당신 턱에 흰 수염이 있어요!"

나는 탈진한 남편의 귀에다 이렇게 소리쳤다

아......흰 수염......



응급실을 나와 집으로 오는 땡볕길

샌들을 신고 돌아오는 남편의 발걸음이 너무 무거워 너무 무거워

순간, 나는 남편을 업어주고 싶었다

옛날 내 동생이 다리 아프다면 스스럼없이 돌려대던 그 등을

남편에게도 돌려서

"여보 힘들지? 내게 업혀"



이제 땡볕은 남편의 흰 수염에도 반짝이겠지......



점점 희어져 가는 세월에

나는 순응하는 훈련을 해야한다

순응하는 훈련......



********************************************

한 사년 전의 일이다. 고서방이 밤에 배가 아프다고 밤새도록 네방구석을 헤매다가 새벽에 대전병원 응급실로 가서 치료를 받고 올 때는 직행버스를 타고 와서 버스정류장에서 집까지 걸어오면서의 생각을 쓴 글이다.

이렇게 써서 삐리리 카페에 올리고 한참을 지나서였다.
인터넷하기 전에 편지쓰는 사람들이란 작은 인연을 통해 울산에 사는 아줌마와 펜팔을 하였는데 (여기서의 펜팔은 작업을 동반하는 사귀는 의미의 펜팔이 아니고 재소자나 소년소녀가장, 그리고 위탁모 시설에 일하는 아가씨들에게 서로 편지를 주고 받는 그런 펜팔이다) 이 아줌마는 어린 아이가 둘이며 가난하게 살아가는 소시민이다.
그이도 나처럼 편지쓰는 것을 좋아해서 그 모임을 통하여 소개받은 재소자들에게 편지쓰는 일을 하면서도 나에게도 편지를 보내왔다. 서로서로 그렇게 연결을 해 주는 것이다. 내가 서방 뒷수발은 잘 모해조도 편지 하나만은 끝내주게 쓴다는 것 아닌가. 이렇게 잘 쓰는 편지를 고서방은 한 장도 못 받아보고 내게 장가를 왔으니, 그 또한 생의 아이러니로 밀어부쳐 두는 수 밖에. 그럼 내 편지를 받아서 헬레레 간 놈들은 다 어디간겨? 그러고 보면 내가 좀 푼수맞지 뭘. 정작 내꺼에는 물 한번 주지 않고 엠한 곳에다 소방호수로 뿌려댔으니.쩝....

각설하고,
그 아줌마가 아이엠에프를 맞아 어렵게 신랑이 취직을 하여 며칠 일 하지 않는 상태에서 그만 사고가 나는 바람에 남편이 병원에 입원을 하였다. 어린 아이 둘을 추스르며 남편의 병수발을 하고 또 간간히 아트플라워 강의도 나가고 참 어렵게 살아갔나보다. 그 후로도 간간히 그녀에게서 편지가 오면 나는 떼먹지 않고 꼬박꼬박 답장을 써 주었더랬다. 서로 전화번호도 알고 주소도 알아서 언제라도 마음만 먹으면 교통이 가능하다는 걸 알기에 그리 신경을 쓰지 않았다.

한번은 그 아줌마가 전화가 와서 자기가 사는 울산 메가마트 2주년 기념으로 주부 백일장을 하는데 날더러 나가보라는 것이다. 나는 울산 사는 사람도 아이고 뭐 그런 백일장에는 아직 한번도 나가본 적이 없어서 뭣하다하니까 그럼 날 보고 시를 하나 써서 보내 달란다. 그럼 자기 이름을 써서 백일장에 나가본다고.
그 때야 우린 처음으로 글을 써서 글의 저작권이런거 신경 안쓰고, 이웃집 아지매한테 파 한 줄거리 나눠먹는다는 심사로 글이든 시든 쉽게 생각하고 그랬는데(지금도 마찬가지지만...내글 내글하면서 악다구니 쓰는 사람들 나는 별로 존경하지 않는다)아뿔사 위에 쓴 저 글이 운문부에 대상을 탄 것이다.
지금 읽어보면 참말로 웃기는 짜장이고 그 글을 심사한 문학철시인(당시 고등학교 선생님)도 심사평으로 해 놓은 말쌈이..이거 뭐 시의 형식을 가지진 않았는데 메가마트니까 아줌마를 상대로 한 감성에서 조금 끌린다는 그런 내용이였던거 같다.
당시에는 문학철이라고 심사위원의 성명을 써 놓아도 그가 누군지 어떻게 알겠는가. 아..그런 사람 있구나 이정도로 넘어 갔다.

그 아줌마는 어려운 살림에 대상으로 청소기를 부상으로 받았고, 그녀는 그게 미안하고 고마워서 내게 커피메이커와 파스텔 한통, 그리고 거 뭔냐 멀건커피...향이좋다는..그걸 한 봉다리 사서 보내왔다. 나는 자다가 떡을 얻은거 같이 기뻣다. 그녀가 그 일로 인해 밝아지고 글 쓰는데 눈이 깨인것 같아 고맙다는 내용을 편지로 보내왔을 때 정말 내일 처럼 기뻣다.

그러다 그녀의 살림이 조금 펴졌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게 한 이년을 소원하게 지냈다.
그런데 어제 영동 갔을 때 그녀가 전화를 해왔다. 사니라고 바뻐서 연락할 틈이 없었다고. 그러고는 옛날 내가 써준 시가 하도 자기 이야기같고 고맙고 좋아서 시화로 액자를 만들었다고. 택배로 보내드렸으면 좋겠는데 유리가 있어 깨질까바 보내 줄 수가 없노라며 언제 울산에 들르면 꼭 전화주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그깟글...나는 잊어도 한참을 잊었는데, 어느 한켠에서는 그걸 잊지 않고 예쁘게 액자를 만들 생각을 하고 있다니. 그녀가 아이 이야기며 신랑 이야기를 하는데 자꾸 눈물이 나왔다. 나는 도대체 무얼 중요하게 여기고 살아가는가. 바람에 나부끼는 깃발처럼 왜 그리 허접으로 사는가 싶어서. 그런 내 연민과 더불어 어려운 시간을 지내온 그녀 보다 내가 더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그러면서 그녀가 자기가 만든 카페가 있는데 놀러 오란다.
그러마 하고 대답하고 가르쳐준 카페에 가니 그녀의 흔적이 있다.

가입 인사에 이렇게 쓰고 나온다.


처음에 어땠냐고는 묻는게 아니다
살아보니 어떻더라는 것도 나불댈거 아니다
그저....그러려니하고 살다보믄
마지막에는 이러겠지?

"좋았더란다."


쥔장과의 인연은 그러하단다...하고.




초대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대를 늘...생각했다면 저 여편네 또 뻥치는구나 할거구.
문득 건너방 창호 문짝에
감나무 가지를 가로지르며 건너온 달빛이 놀러 오는 날,
그런날은 가끔 당신 생각하였노라 고백하면, 그리 믿으십시요.





후일담 하나,

부산에 아는 놈이 있어 그가 어느날 자기 카페에 오란다. 주변인의 시라는 카페인데 거긴 시에 목숨 걸고 사는 사람들이 들락거리는 곳이다. 시전문 계간지도 발행을 하면서 다들 수준높은(?) 시를 발표하는데 얼래? 거기 운영자가 문학철씨다. 푸히

그 때 심사평하신 샘인데 내가 그 이야기를 했더니..어떻게 그럴수가???한다.
산다는 것은 뭐냐면 말이지
이렇게 두고두고 인연들이 대추나무 연줄 걸리듯 걸려서 얽힌다는 것이여...맞지요?



좋은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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