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마지기 논에 논둑만 열한 개가 있는 골짝 다랑지 논을 포도밭으로 만든지는 십 여년이 다 되었다. 나락농사를 지어봐야 수매도 되지 않고, 마침 여기 영동지역을 중심으로는 포도가 특화산물처럼 되어 너나없이 논을 메꾸어 포도밭으로 만들어 포도를 심었다.
우리 논도 천수답에다 어쩌다 물이 넉넉한 해는 얼마나 논이 깊이 빠지는지 한 해는 경운기 앞부분이 써레질 중에 고만 물 속에 처박히는 꼴을 당하였다
그러더니 남편이 시동생과 의논 끝에 거기다가 포도밭을 만들어 포도를 심자는 의견일치를 보고는 논을 밀어 밭을 만든 것이다.
예전에는 논으로 밭을 만드는 것이 꿈에도 일어나지 못할 일이지만, 쌀 농사가 수지타산이 워낙 맞지 않고, 예전처럼 손이나 사람 품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전부 남의 손에 의지를 하여 기계로 하다보니 이것저것 제하고 나면 남는 것은 기대도 할 수 없고, 그저 양식을 사서 먹지 않는다는 그 위로 밖에 건질 것이 없었다.
"포도농사 그거 아무나 짓는거 아니라는데, 한번도 지어본 경험이 없는데 그걸 누가 지어?
아직 아이들도 어려서 한창 농사철에는 포도밭에 붙어 살아야하는데 애들은 누가 키우고?"
이렇게 볼멘 소리로 반대를 해 보았지만, 결론은 포도농사를 짓는 것으로 나고 말았다
포도나무를 심고 첫해에는 포도를 가설한 곳까지 키워서 나무 모양을 제대로 잡는 것이 중요하다. 매일 가서 자란 만큼 순이 부러지지 않게 포도순을 나무에 매어주고 맨땅에는 수박을 심었다.
처음 수박을 심는 땅에는 박에다 접붙이지 않고 수박씨로 키운 모종을 옮겨 심으면 되기에 수박 농사를 한 해 지어봤다. 그 해도 어찌나 비가 자주 왔던지 밭이 사흘들어 질척거려 수박 심는 시기를 놓칠 뻔했는데, 그래도 일꾼을 얻어서 하루 날 개이자 서둘러 수박을 심었다.
수박순이 뻗어 나갈 때도 일을 감당하기 힘들어 매일 꼴짝밭에 가서 살았으니, 몰골은 새까맣게 타서 말이 아니고, 둘 다 처음지어 보는 농사여서 서툴기가 말할 수가 없었다
바람이 불면 수박순들이 마구 뒤엉켜 그거 가지런히 놓는 일도 여간 신경쓰이는 일이 아니고 수박을 달 때는 이파리의 숫자를 헤아려 일곱 번째 아니면 여덟 번째 잎에 매달리는 수박을 달아야 했기에 엉뚱한 곳에 달린 수박을 잘라주는 일도 보통일이 아니다.
여름철, 수박맛이 있니없니 박수박이여서 맛이 이상하니 어떠니 하여도 수박 한 덩이 얻을려면 그렇게 땡볕에 발바닥이 녹아나도록 길품을 놓아야한다.
수박이 어느 정도 크기가 잡히면 수박 밑에 흙이 묻지 않도록 받침을 놓아 주어야한다.
그렇게 수박을 키워 밭뙈기로 넘기는데 백만원을 받았다. 수박씨값이랑 옮겨심을 때 품값, 그리고 농약값에 이것저것 제하니 농사지은 주인 인건비는 찾을 길이 없고, 그냥 그 돈으로 삽겹살 서너근 사다가 온 식구가 구워먹는 것으로 수고에 대한 보상을 마쳤다.
포도나무가 자라 이제 어엿 몇 년생이라는 이름을 붙일 만큼 세월이 흘렀다.
한해 한해 포도농사를 지어보면 그 기대치에는 언제나 밑돌게 마련인데도 안 지을 수가 없는게, 처음 포도나무를 심을 때도 가설비며 묘목비며 수월찮게 돈이 들어갔고, 또 몇해 뒤에는 비가림 시설이란걸 융자를 받아 하고, 경운기로 농약 치면 농약줄 잡아 주는 일도 만만찮고 그걸 끌어 당기면서 긴 포도밭 골에 약치는 일도 뙤약빛에 여간 힘든 일이 아니였다.
그래서 SS분무기라는 작은 농약치는 기계를 또 샀다. 대개 농자금은 삼년거치 오년상환이란 조건이 붙기에 그걸 갚으려면 한 해 어떻게 되었다고 그걸 때리치울 수는 없는 일이였다
이런 상황에서 농사 지으니, 해마다 농기계 대출 상환금 떼네고 이자떼고, 박스비며 포도 봉지, 농약값, 그리고 비가림 비닐이며 봉지쌀 때의 품값이며...여러가지 명목의 자제비를 떼고 품값이며 소모품비를 제하고 나면 그 남아있는 액수에 허탈하기 일쑤다.
올해는 더군다나 질질 징그럽게도 쏟아 부은 비 탓에 한참 포도 딸 때에도 비가 사흘들어 내렸으니, 포도란 익으면서 한껏 수분을 저장하는데 그 때 뿌리가 또 물을 빨아댕기면 정말 비온 다음날은 누가 면도칼로 포도를 착착 그어놓은 것처럼 열과가 왔다.
포도가 한 두알 터지면 봉지를 벗겨내고 작업가위로 잘래내서 상품으로 만들면 되는데, 포도알 하나 터지면 얼마나 물이 많이 나오는지, 포도 한 알의 물로도 포도 한 송이가 척척하도록 젖게 만들 수있다. 포도 물이 다른 포도 알에 묻으면 멀쩡하던 포도도 떠억 갈라져 버리는데, 포도작업을 할 때는 이렇게 포도알에 묻은 물까지 휴지로 깨끗하게 닦아 주어야한다. 그러니 일손을 얼마나 더디며 그렇게 작업 한다고 포도를 오랫동안 들고 쭈물락거리면 신선도도 떨어지고 결국 상품이 되지 못하고 파치로 던져지게 되는 것이다.
포도 농사! 말이 포도농사지 포도는 농사 짓는게 아니고 빚는다 해야 할 것이다.
과수 농사가 예전처럼 달리면 따서 팔고 아님 말구 하는 식의 농사가 아니고, 이젠 손으로 일일이 수작없을 통해서 과일을 만든다고 얘기를 해야 할 것 같다.
포도만해도 봄날 붉은 순이 전지 해 놓은 가지에서 나올 때는 붉은 꽃이 핀 것처럼 이쁘다
그러나 하루가 다르게 자라나는 순을 보면 무섭다. 농사를 잘 짓는 사람 같으면 이런 표현을 안 할지 모르지만, 농사 근처에도 안 가보고 살다가 시집와서 이렇게 농사를 짓는 나 같은 초보는 포도순이 무섭게 하늘로 뻗어 나가는 것이 무섭다. 포도 순이 나오면 바로 잎이 서너 개 나온 위에 바로 끄트머리에 꼬꾸랭이와 포도 꽃송이가 달린다. 그러면 꼬꾸랭이를 일일이 손으로 다 따주어야 하며 잎과 줄기 사이에는 또 옆순이 나와서 그것도 사이사이마다 손톱으로 쥐어 뜯 듯 하여 잘라 준다. 얼마 안 있으면 포도 꽃이 피는데, 포도꽃의 향기는 이것이 꽃향기인가..하고 느낄 새도 없이 피었다 진다. 포도 꽃이 떨어지면 바로 작은 포도 알 모양의 포도송이가 만들어지는데 이때에 포도 알은 아주 작아 뭐 만하네 하고 빗댈 것도 없다. 그 즈음 포도송이는 또 하나의 작은 송이를 달고 나오는데 그것을 육손이라 하여 마치 사람 손가락 여섯이 있는 것처럼 포도송이 작은 것이 또 하나 삐죽이 달렸다. 그것을 놓아두면 포도가 제대로 크지도 않을뿐더러 봉지 쌀 때 여간 걸그적거리질 않는다. 그래서 그것도 일일이 다 잘라주어야 한다.
포도순은 하루가 다르게 죽죽 뻗어나가는데 이것을 제때 철사에 결속을 해 주지 않으면 새순과 옆순 할 것 없이 서로 엉키어서 실타래 엉킨건 명함도 못내밀 지경이다. 그래서 포도 순을 결속하면서 포도 꽃이 떨어지기 전에 순지르기를 한다. 포도 순이 얼마나 컸는지 팔이 닿지를 않아서 음료수 박스 같은 것을 줄에 묶어 허리에 차고 다니면서 거기 올라가 순을 딴다. 하루종일 하늘만 쳐다보며 순지르기를 하다가 점심을 먹으려고 밥 숟가락을 떠 넣으면
종일 치켜들은 턱이 아귀가 맞지 않아 밥알 씹는 것이 이상하다. 턱이 이럴 정도니 어깨와 팔이 떨어져라 아픈 것은 말해 무엇하랴.
이렇게 순지르기는 3차까지 시행하는데, 그렇게 순을 질러도 포도 딸 때쯤이면 포도 순들이 뒤엉키어서 하늘 보기가 힘들다. 포도 한 송이 익혀내기 위해서 포도나무도 잎을 내놓고 순을 내밀고 애를 쓰지만 역시나 사람도 오뉴월 땡볕에 머리가 벗어지도록 제 육신을 굽고 있다.
포도 알이 녹두 알만하다가, 또 콩알만하다가 또 자라서 누룽지 알사탕만하게 자라면 알 솎기를 한다. 이때부터 포도 빚는 일이 시작된다. 천여 평 포도나무 심은 것을 일일이 알 솎기를 하자면 등때기에 모닥불을 지핀 듯 더위와 싸워야하고 일이 얼마나 더디게 나가는지 하루 왠 종일 버둥대도 한 골 겨우 끝마치는 정도니 지겹기가 이를 데가 없다. 포도 알 솎기 할 때 생각하면 포도 한 송이가 금쪽 같고 농사철 끝나서 다시 그 일 할 때를 생각하면 그저 가슴이 먹먹하여 눈에 눈물이 핑 도는 것이다.
일은 지겨워 죽것는데 장꿩은 이 산에서 저 산으로 옮겨 다니며 꿔엉꿩 울어 싸면, 괜힌 부아가 치밀어 멀쩡한 꿩새끼한테 흰자위가 드러나는 눈을 흘겨대는 것이다. 아, 꿩이 뭐랬기에.......
이렇게 송편을 빚듯이 포도농사를 지어 유월 말쯤에 봉지를 싸면 포도는 이제는 그리 손이 많이 가지 않는다. 일하는 기간으로 치면 두어 달 꼬박 밭에서 살아야하나, 포도 봉지를 싸 놓으면 언제 그렇게 일을 했는가 싶게 한갓지고 포도 익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것이다.
올해는 비가 많이 와서 제때에 익은 포도는 다 터지고, 우리 밭처럼 해마다 조금 늦게 익는 밭들은 온도가 맞지 않아 포도송이가 익지 않고 벌겋게 미쳐 버리는 일이 생긴다.
그렇게 수고하며 손질한 포도가 익지 않아 그것을 따내 버릴때의 심정이란.......
그래도 예부터 농사꾼은 이래야한다고,
굶어 죽어도 베개 속에 종자를 베고 죽는다 했으니.
올해는 비록 피농을 하고, 포도가 익지 않아 가위질 한 번 못 해보고 고스란히 그 들인 비용을 빚으로 떠 안게 되었지만, 내년에는 좀더 낫겠지, 사람은 최선을 다했는데 하늘이 그렇게 만든 것을 어쩌나.. 이렇게 위안을 하면서 가을볕 아래 포도밭 청소를 한다.
돈 들여, 더운 밥 해 먹여가며 싸 놓은 포도봉지를 다시 떨어내어 활활 불구덩이 속으로 집어 넣으면서, 이렇게 신고가 떠날 날이 없건만 농사에 목메고 있는, 농사꾼들의 주름지고 검게 그슬린 삶이 밥알처럼 뜨거운 이유를 생각해본다.
2003년 삶이 보이는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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