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은 음력으로 이월 열사흗날, 그러니까 고스방 생일이래요
어제 어머님 병원 다녀 오신다고 아버님하고 같이 병원 갔더랬어요
병원 간다고 아침 일찍 나서는데 차에 올라타자 마자 어머님이 장 봐오는 말씀을 하시는거래요
스방 생일 왔으면 어련히 제가 알아서 할낀데 그게 못 미더워서 뭣을 사고 뭣을 사고 하며 품목을 일러 주십니다. 벌써 세 번째 듣습니다. 순간 화가 확 치밀어 올라요. 그넘의 승질머리는 와 그리 못땠던지. 어머님 지금 장 볼거 걱정할기 아이고 어머님 편찮으신거 치료 하실 생각부터 먼저 하시이소. 하고 톡 쏘아부쳤어요.
십 팔년째 해오는 생일 음식인데, 그것도 가족 수 대로 일년에 몇 번씩이나 비슷한 음식을 하는데 그걸 못 미더워서 말씀을 하시는거예요.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 두번이라고 나는 왜 그래 그걸 잘 못 참는지 몰라요. 어머님 진료 받으시려고 기다리는 동안(병원이 엄청 환자가 많아서 많이 기다려야 됨) 그 옆에 있는 하나로 마트에 가서 눈썹이 휘날리도록 장을 봅니다. 어머님이 말씀하신 재료는 빠지지 않았나 두 번 세 번 카트 속을 점검하고 쌈채를 내가 이천원어치 샀어요. 잡채 거리를 다 사구는 당면은 집에 있는거 같아 만일 없으면 황간 가게에서 사야지 하고 병원 일을 보고 장 본것을 들고 왔는데.
집에 와서는 종일 부엌에서 다듬고 씻고 볶고 국도 미리 끓여 놓습니다.
논우렁이 무침은 내가 해도 하는데 내가 잠시 쉬는 동안 어머님이 잽싸게 부엌에 들어가시더니
도마를 꿰차고 앉으셔서는 그 요리를 하시는거라. 속으로 에혀..하고는 고만 들어옵니다.
내가 해 드리는 것은 맛이 없다 하시지요. 넣을 걸 다 안 넣는다는게 어머님의 평상시 말씀입니다. 그 넣을 것 다 안 넣는 것 중에 두 가지가 미원과 다시다라. 나는 그걸 될 수 있으면 적게 쓸려고 하고, 어머님은 그것도 넣을 만큼 충분히 넣어줘야 맛이 난다는 것입니다.
나는 못땐 며느리인가 몰라도 어머님 하신 음식은 화학조미료 맛 때문에 먹기가 싫어요.
나박김치를 담궈도 꼭 당원을 물에 타서 물을 끓입니다. 백해무익이라고 아무리 말씀드려도 그 당원조차 어머님은 <넣을 것을 다 넣는 것>에 해당 되는 사항이라.
내가 열무김치를 담궈 놓으면 어머님은 매번 달달하니 당원 넣어서 담으시니, 내가 담은 것은 씹씰하다 하시면서 숟가락을 담궈 국물을 찍어 맛을 보시고는 인상을 쓰십니다.
참...저 엄청난 식습관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 몰라 나는 화가 나기도 하고 속도 상합니다. 그러면서 아프시다하니..날 보고 어쩌란 말입니까.
싱겁고 덜 매우면 덤덤하니 맛이 없다하고, 그걸 또 아버님께 고자질을 합니다. 시레기국도 맛대가리도 없게 끓여놨다구. 그걸 내가 듣게 귓말로 이야기하십니다. 나는 그럼 열통이 터집니다.
다시다 팍팍, 미원 팍팍 넣고 끓여야 하는데 그렇게 안 하니 자연 맛이 씁쓸할 밖에.
계속 줄여서 먹으면 괘안아 진다고 아무리 말씀을 드려도 <넣을만큼 넣어야 한다>는 신조를 버리지시 않네요.
2.
아침에 잡채를 하려고 건어물 넣어두는 서랍을 여니 당면이 한 주먹도 안 되게 남아 있어요
그래서 나중에 낮에 당면을 사다가 만들어줘야겠다. 그래도 생일이니 국수 종류는 먹어야지. 마음을 이렇게 먹고 아침상을 새벽에 일어나 만들어 차립니다.
밥상 위에 더 놓을 자리가 없어 반찬을 이리 옮기고 저리 옮기고 하는데도 어머님, 상을 쓱 둘러 훑어 보시더니 그러십니다.
"잡채는 안 했나?"
"당면이 많이 있는줄 알았는데 조금 밖에 없어서 못했세요"
그러자 어머님이 내가 무쳐놓은 쌈채샐러드를 가르키며
"이런거 사지 말고 당면이나 사지 그래"하며 차갑게 한 마디 하십니다.
내 드러운 승질이 그대로 욱, 합니다.
"어머님 이건 제가 먹고 싶어 산 것이거등요"
그 얘길 듣자 고만 밥 먹자 정이 똑 떨어져요
숟가락 놓고 밥그륵 들고는 부엌으로 와서 치웁니다.
딸래미가 왜 밥을 안 먹어 엄마 하길래, 반찬 만드느라 간 본다고 이것저것 먹었더니 밥이 안 먹혀 하고 대답하고 맙니다. 참 나도 쏘가지가 못땠습니다.
3.
오늘같이 추운날,
며칠 전 자두 밭에 가서 자두 전지 한 것을 혼자 줍다가 너무 힘이 들어서 친정에 전화를 했더랬어요. 아부지가 전화를 받습니다.
"아부지 감기는 안 걸리시고 집안에 별고 없으시지예"
"그래 우리는 괘안타 아무 걱정도 없고. 뭐 하는데 숨소리가 씩씩하노?"
"아, 자두나무 전지한 거 줍다가 걸터 앉아 전화하는거라예"
"전지한게 많나?"
"두 밭뙈기 전지 해 놨으니 제법 되요"
"그걸 혼자 우째 줍노 내 요새 별로 할 일도 없는데 좀
도와줄까"
"심심하시면 놀러 오세요 그럼. 같이 쉬엄쉬엄 줍죠. 엄마도 같이 오세요"
그렇게 통화를 끝내고 친정아버지께서 오시기로 한 날이 오늘이네요.
새벽 여섯시에 집에서 나와서 일곱시도 채 안돼 출발하는 기차를 타고 부모님이 오셨습니다.
잡채 때문에 기분이 상해서 마악 밥그릇을 치우고 시간을 보니 기차 도착시간이라요.
고스방 차를 타고 역전에 나가 조금 기다리니 기차가 들어옵니다.
어이고 이눔의 날씨가 꽃샘추위라더니 바람부는 꼴이 장난이 아니예요. 속으로 이거 날을 잘못 잡았구나 싶었지만 어쩔 수가 없습니다.
대충 대구에서 간단하게 새벽밥을 드시고 오셔서 다시 아침을 드시고는 바로 행장을 차려 밭으로 가자 하십니다. 엄마랑 아부지랑 나는 자두밭에 가서 그렇게 바람이 부는데도 가지를 다 치웠네요. 아버지가 거들어 주시니까 얼마나 수월턴지..엄마는 조금 줍다가 힘드신가 냉이밭을 발견하고는 호미로 냉이만 캡니다. 내가 젤 첨 시집와서 꼭 오늘같이 고스방 생일날 자두나무 전지한 가지를 주으러 왔어요. 따뜻하다하나 철둑 비얄 아래 자리잡은 자두밭에 바람이 휑 불면 이월바람이 얼마나 사정없이 치맛속을 파고들던지.
그 때는 새댁이시절이니 바지도 못입고 그냥 무릎 아래오는 홈웨어라나 뭐 그런걸 입었재요. 나무가지를 같이 주웠으면 별로 안 추웠을텐데 혼자 바람모지에 가마이 섰으니 얼매나 추웠겠어요. 그래서 춥다고 징징 울었더니 고스방이 배락같이 괌을 지르는거라. 농사일이라고는 어디 츠자적에 한번 해보기를 했어, 모르는건 당연한데도 그눔의 서방이 얼마나 서운하게 고함을 지대는지.
철철 눈물을 흘리며 오르락내리락 기차를 바라보며 꺼이꺼이 울었던 기억이 어제같은데, 이젠 서방 없이도 혼자 자두밭에 낫들고 와서는 척척 가지를 힘껏 내리쳐서 나뭇단을 묶어서 들어내고 있으니. 삶의 진정한 내공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거죠.
오후 한시쯤 되자 일이 어지가히 끝났습니다. 아버지가 흩날리는 비닐도 걷어서 묶어주시고 잔가지까지 알뜰하게 주워서 밭이 깨끗하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고맙던지요. 저걸 혼자 하자면 몇 날 며칠을 왔다갔다 해야하는데. 아부지하고 나뭇가지를 줍는다고 바람 속을 왔다갔다하면서 엎드려 일하시는 아버지를 봅니다. 옛날 옛날 아부지 노름하던 시절도 생각났어요. 그 어려운 시절도 지나가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오늘 이렇게 아부지가 건강하신 모습으로 딸의 농사일을 도와주시는데 왈칵 눈물이 나데요.
저녁을 간단하게 드시고 여덟시 기차를 타고 집으로 가십니다.
고스방이 손님을 태워 멀리 단양까지 가는 바람에 걸어서 역까지 가는데 이 길을 또 언제 엄마랑 아버지랑 내가 셋이서 걸을 수 있을까하는 마음에 또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아부지 엄마 보내드리고 내려 와서는 당면 사와서 잡채 완성해 놓으니 9시가 넘었어요
어머님 한 접시, 아버님 저녁 상에 한 접시의 잡채를 담아 놓습니다. 나요? 나는 아침에 꼬장한 마음갈고리를 그 때까지 바로 펴지 못하고 딱 간 본다고 한 오래기 집어 먹고는 쳐다도 안 봤네요.
글 쓰면서도 내가 나를 쳐다보며 <그녀르 종자 독하기도 하다> 하고, 혼자 실쩌기 웃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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