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적에 그 내용을 공부했더라. 오래되어 기억조차 가물가물하네. 왜 있잖아 어떤 사내의 집에 아이들이 자꾸 들어와서 놀길래 그 주인이 담벼락을 높이 쌓구 난 뒤에는 그 집에 봄이 오지 않았다는. 혼자 추위에 떨면서 지내는데 어느 날 아이들이 개구멍으로 들어와 마당에서 그들의 노래소리가 들리니 비로소 봄이 온다는. 그래서 이 사내는 아이들을 자기 어깨 우에 앉히고 그 높은 담장을 허물어 버린다는 이야기.
아마 초딩 이학년이나 삼학년쯤에서 배웠을거야. 그 땐 그 내용이 얼마나 감동이던지. 책장을 넘기면 같이 따라 나오던 교과서의 그림 -꽃 피고 새 지져귀는- 그 풍경이 내 눈에는 그냥 황홀경으로 그대로 느껴졌지. 지금 내 마음속 개구멍으로는 아이들이 언제쯤 찾아 오시려는지.
오늘은 사월 초 사흗날.
어제까지 모지락시럽게 꽃샘추위를 하여 마악 동그랗게 몽실몽실 내미는 목련의 주둥이를 시퍼렇게 얼궈놓더니.
고사리
오영호
들판 어디에든 꼭꼭 숨어 있어야해
총알이나 죽창을 피하기 위해선 함부로 하늘을 쳐다봐선 안돼. 두 눈에 불을 켠 산 자들이 너를 만나기만 하면 여지없이 허리를 꺾어 버릴 꺼야. 반백년이 흐른 다랑쉬오름자락엔 오늘도 안개비만 내리고 한 발의 총탄에 4. 3의 짐을 지고 북망산천 떠돌고 있는 형님의 제사상에 올릴 살진 고사리를
아내는
아픈 허리를 참으며
꾸벅꾸벅 꺾고 있다.
한 시절은 잊혀지고 이리 따뜻한 날 계속되면, 섶벌 잉잉대는 덤불 속에 여린 고사리 고불고불 올라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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