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대포집 세째며느리

죽음의 한 연구

황금횃대 2006. 5. 6. 21:32

죽음의 한 연구

 

 

박미라

 

 

황태덕장에서

죽음의 무리를 사열한다

 

온몸을 곧추 세운 채 줄지어선

정지된 목숨들.

어린 병사들처럼 잔뜩 얼어 있다

다시는 날렵하지 않아도 좋을 지느러미와

그만! 바다를 잊어야 할 젖은 살점을 헤집는

저 매운 바람은

마지막 한 방울의 물기까지 걷어갈 것이다

이제, 마른 장작처럼

노릇노릇하게 말라야 한다

물기 빠져나간 자리마다

기억의 냄새를 채워야한다

 

찢어질 때까지 벌린 입 속으로

흰 눈이 꾸역꾸역 쏟아진다

채워지지 않는 허기를 위하여

하늘이 제 살점을 저며내는 중이다

오랫동안 이웃이었던 빈집을 돌보듯

내리다가, 그쳤다가,

눈은 하염없다

 

자신의 죽음을 확인하는

황태의 눈꺼풀을 자꾸만 쓸어 내리며

바람이 길게 심호흡을 한다

죽음도 모여 있으면 따뜻한 것인지

빈집 골목이 훈훈하다

 

 

 

 

 

시집 <붉은 편지가 도착했다> 현대시 2004

 

 

 

 

비가 종일 내려서

사무실에 꼼짝없이 앉았다가 퇴근을 했다

의자에 앉아 몸을 비틀때는

집구석 방바닥이 한 없이 그립다

아들놈이 개지 않고 밀쳐 둔 이불뭉테기도 그립고

부들부들 양그림이 그려져있는 스폰지 요대기의 매끌매끌한 감촉도 그립고

꼼꼼한 아들놈 땀냄새가 배인 푹꺼진 베개도 그립다

 

그러다 막상 퇴근시간도 되기 전에 보따리 챙겨 집으로 들어서면

그 그립던 몇 가지의 냄새와 감촉들을 순식간에 잊고

밥솥을 열어 밥의 재고량을 조사하고

국솥을 열어 저녁까지 한 그릇씩 쭈욱 돌릴 수 있는가 가늠하고는

다문 한 가지의 반찬이라도 볶는 시늉을 할려고

앞치마를 두른다.

 

시험 공부를 하다가 저녁에 귀가한 딸이 급히 차려내는 밥상을 보며

"아, 우리집도 점점 맞벌이 집의 밥상을 닮아 가는 같애"하고

매정하게 필살기 한 마디 날린다.

구운 김을 잘라놓고, 창란젓넣은 나박김치가 몇 번째인지도 모르게 가장자리만 닦여져

상 우에 오르고, 시그러운 깎두기며 무친 콩나물이 전부다 오래 된 빛깔을 내뿜고 있다

 

반찬도 참 희안하지

빛깔이면 빛깔, 그 한 가지로 통일하고 말 일이지 왜 금방 무친 것에 흐르는 윤기와 하루 지난

빛깔이 틀리냔 말이다.

 

그렇게 시장을 반찬삼아 딸아이와 밥을 먹으면서

종일 그리워하던 빛깔을 잊는다.

 

그러면서 집어 든 박미라시인의 시집.

건성 읽었던 지난번과는 달리, 내가 시집을 처음 읽고 그리워하던 옛날을 떠 올린다.

시가 그렇게 달더니

농담으로 내 사는게 신데 새삼스레 시는 무슨 시..하고 지내다

영 시를 놓쳤다.

 

종일 그립고 그립던 따뜻한 이불 속보다

저 시 한 편 읽고 나니 새로운 그리움이 가슴 가득 밀려와

문득...고개를 들어 책꽂이를 훑어 보는데.

 

 

   <대구 갔더니 막내동생 딸 가희가 이렇게 많이 컷어요. 이쁜 뿅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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