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년전인갑다. 문구디자인하는 어떤 사람을 급히 만난 자리에서 그가 내게
리포트 용지 한권과 나무재질의 앞표지가 달린 노트 한 권을 선물로 주었다
나는 그 선물값으로 포도를 한 상자 보냈으니 값으로 치면 그거 두권이
이만원쯤 되겠다
문구디자인과 제작을 겸해서 했던 그이는 그 후로 사업이 망해서 여기저기
돈문제와 결부되는 바람에 스스로 멀어졌지만, 가끔 그가 쓰던 고운 글들은
생각이 난다. 고운 글이래야 맨날 '님'타령인데, 그 님을 이용해서 여럿에게
메일도 보내고 해서 그걸 곡해한 사람끼리 분란도 일었던 갑다
나는 사이버에서 님, 어쩌구 저쩌구 하는 것을 보면 그 님의 개념을 만해새임처럼
조국으로 간주해 버린다. 그럼 삐리리한 해석과 결부는 전혀 되지 않기에 망구강산
편하고 좋은 일이다. 매부도 좋고 처남도 존 일이다.
공책 표지가 제법 단단하고(나무판때기니 오즉하랴) 종이 재질도 참 매끌매끌
샤워를 끝낸 여편네 허벅지 모냥으로 질감이 좋아서 그걸로 일기장을 하였다
작년 한 해는 일기를 그냥 쉬엄쉬업 써서 일년치 일기라 하여도 몇장 되지 않더니
올해는 뭔 맘을 심히 독허게 묵었는지 차근차근 일기를 잘 써갔다
그것도 배운 도둑질이라고 볼펜 한 번 잡으면 뭔 씨잘대기 없는 말들이 많이
나오는지 서너페이지 넘어가는 날도 있었다. 아..역사의 모티브는 없고 씨부림만
남은 그 파편들도 모아놓으니 대학 노트 한 권이 훌쩍 차 버렸다
이젠 공책 일기장도 없고 해서 여기다 일기를 써야겠다
이천사년 유월 초사흗날 맑음 목요일
어제 황간장날 오후 느즈막하게 장거리에 나섰더니 새우젓 장사한테 김치담는
새우젓은 이천원어치를 샀는데 기가 맥히게도 단골 아줌마네 배추는 싸게가 났다
겨우 대파를 두 단 사서 집으로 오다. 대파가 한단도 천원, 두 단을 사도 천원이란다 이런 셈이 희안한 경우가 있나. 희안하든 말든 머리가 돌데가리가 아닌 이상 두단 사고 천원을 내밀겟지? 나도 그랬다
대파 두단을 스쿠터 발판에 올려놓으니 푸짐하다.
건어물 집에 가서 마른 새우 삼천원어치를 사고 아줌마랑 새우의 몰골이 작년같지 않다고 썰을 풀어재끼다가 먹어보고 맛있으면 다음에 많이 사마 하고 삼천원어치를 사가지고 온 것이다.
장터 풍경이래야.. 사위어가는 오일장의 추레한 몰골이 여기저기 드러난 뼛조각처럼 을씨년스러운데 그래도 닷새 먹을 반찬 돈이 없어 못 사지 물건이 없어 못 사는 것은 없다. 고등어 자반 한 손 끼울래나 만다. 물어보니 오천원이랜다 지기럴...고등어 한 손이 뭐 그래 비싸.
모퉁이를 스쿠터가 반원을 홰액 그리며 돌아 나가는 싯점, 바로 그 모퉁이 구십도 각도의 충남학원 모서리에 늙은 할머니가 어린 모를 가져나와 판다
모종파도 몇 단이 있고 서서히 시들어가는 부춧단도 몇 단 보인다.
조그만 폿트 속에 방울토마토, 고추, 오이, 가지들이 제 본자리로 이식을 기다리며
지루하고 가난한 갈증으로 목을 빼물고 있다
다음 장날까지 저 작고 비좁은 폿트 속에서 닷새날을 날 걸 생각하니 내가 다 비좁고 답답하다. 그러나 부지런히 물을 뿌려주면 그것들은 근근 목숨줄을 놓지않고
놰리리리리리리 말라가리라/
엿새날은 아버님 생신이시니 오늘쯤 배추김치는 담궈놔야한다.
지난 번 첫 햇배추 김치를 내가 너무나도 짠순이표 김치로 담궈놔서 아무도 손을 내밀지 않더니 급기야 그 김치는 짜서 목 먹으니 새로 담그라는 명령이 하달되었다
아참, 그 명령과 동시에 행동지침도 하달이 되었는데 그건 고스방 자신이 직접 김치를 담그겟다는것이다. 사악한 나는 주변머리가 팽팽돌아간다.
기억도 가물가물한 고딩시절, 구미에서 자치하며 학교 다닐 때 통근기차안에 집에서 담궈준 김치를 가져가다가 김치 국물을 쏟아서 기차안에 온통 신김치 냄새로 공간 도배를 하고부터는 챙피해서 그 때부터 직접 담궈 먹었다는 김치경력을 들이대며 오늘 자신이 담글 배추김치에 기대를 하라고 나발을 불어 쌌는다 오냐..함 담궈봐라. 김치맛을 내려면 살림살이의 경력이 녹록치않게 붙어야 되는 것인데 그 시절 몇번 담궈 연탄불 옆에 놓아두고 삭혀서 먹은 김치맛이 이 싯점에서 재현되긋냐..나는 팔짱을 끼고 눙깔을 아래로 내려깐다.
와중에도 어머님은 당신의 아들이 김치를 직접 담그겟다고 나서니 혹여 그 김치가 맛이 없어 나한테 지청구를 들을까바 내가 방에 들어오면 무얼 넣으시는지 부엌 도구가 떨그덕 거리는 소리가 나며 나중에 보니 고추양념을 다 후려놓으신다
저녁에 들어온 고스방. 헹궈서 소쿠리에 밭쳐놓은 김치를 일단 한쪼가리 맛을 보더니 짜단다.
다시 물에 넣어 잠깐 담궜다가 두어번 더 씻어내니 어랍쇼 소금기가 많이 빠졌다
다라이에 물기를 짜서 넣어주니 어머님이 만들어놓은 고춧가루 양념을 넣어 비닐장갑을 끼고는 조물조물 김치를 담기 시작한다.
도끼눈은 아니고 새비눈을 뜨고 그 하는냥을 가만히 지켜본다.
그런데 양념도 한꺼번에 퍼억 쏟아서 하지 않고 조금씩 배추와 살살 버무려가며 조절을 하는게 내가 담기 싫어 억지로 하는 김치 담글 때와는 판이하게 다른 정성을 기울인다. 오호..........라 이것 좀 봐라.
다 버무린 김치를 김치통에 담고 통깨로 고명까지 설설 뿌리고 난 뒤에 한 그릇
덜어 주더니 먹어보란다.
(얼씨구 ..맛있네)
다음부터는 당신이 꼭 배추김치를 담궈줘야겟네. 나보다 훨 나아...한껏 똥꼬에
바람을 넣어가며 둥실둥실 띄워준다. 고서방 가죽이 넓어서 금방 바람빨 받아 천정 높은 줄 모르고 자랑을 하며 또 예의 그 옛날 고딩시절 김치담궈 먹던 이야기를 한 번 더 잽싸게 내 귀에 들려준다.
"아, 연탄불 때면 고 옆에 놔뚜고 하룻밤 살짝 익히면 기똥찬데..." 한 구십번만 더 들으면 백번 채우는 이야기를 또 듣는다. 아무렴 어떤가 김치를 맛나게 담그는데.
울 시어머님, 늘 깨작깨작 드시는데 아들이 담근 김치 한 보시기 이리저리 헤집으며 배추이파리 부분만 찾아서 진지 한 그릇을 다 드신다. 헉...저렇게 팔은 자동으로 안으로 굽는가벼.
김치를 담고, 밭에서 뽑아온 알타리무도 한 다라이 담고..잠이 쏟아지는 눈꺼물에 성냥개비로 눈깔땡보를 만들어 눈꺼풀을 받쳐놓고 메일을 한 통 쓰다.
아이들이 오고, 아버님이 오시고 한겨레 신문을 끼고 나가 동네 회관 네온 불빛 아래 불나방과 같이 신문기사를 읽는다. 잘 안 보인다 어두워서. 밝은 집 놔두고 날 궂이를 하는 건지.. 벌씨로 모기들이 떼거리로 뛰쳐나와 내 다리에 달라붙는다
그 들이 놀라게 나는 다리를 들었다 땅에 쿵소리가 나게 내려 놓았다. 혼비백산 하였는가는 내일 모기나라 홈피에 사연이 뜰것이다.
저녁에 세이클럽에 접속하니 아는 오라버니가 기별을 한다
이 왕팬 아저씨는 나 때문에 맨날 속앓이를 한다. 내가 좋다고, 그러나 어쩌겠는가
사랑은 하나인것을. 그 하나의 사랑은 고서방 모가지에 걸렸으니 끌끌..
일부일처제, 일부 다처제, 일처 다부제, 다부 다처제... 세상에는 네가지 유형의 결혼 형태가 있다고 오늘 우연히 혜적할아버지 싸이월드홈피에서 글을 읽다.
남편들이 고분고분하다면 일처다부제도 괘안을 듯. 그러나 사람의 문제란 그리 고분고분한게 아니여서 골머리 띵띵 아플일이니 그것도 고만 땔치우고
초여름,
어디서 박각시 주락시 나방들이 날아들어 희멀건한 형광등 불빛에 잦은 날개소릴 내면 부딪친다. 야들아...가루 고만 떨구고 배끝으로 나가그라.
오늘 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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