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대포집 세째며느리

우화(羽化)

황금횃대 2006. 6. 27. 10:05

분당에 갔었어요
분당이 대한민국 어느 귀퉁이에 붙어 있는지 짐작할 필요도 없이 살다가 딸래미를 잘 봐주실 선생님이 계시다는 말에 전화번호와 대강의 위치만 메모해서 딸 손을 잡고 나섭니다.
수원역에 내려서부터 아이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어요. 엄마 이렇게 복잡은데서 어떻게 살아?
지하도를 내려가고, 지하도에서도 두 세갈래의 길이 나타나도 망설임없이 길을 찾아 손을 잡아 끄는 나를 보고 아이는 감탄을 합니다. 뭐 제 자랑같지만서두 저는 고등학교 졸업한 후부터는 길 찾는데는 도가 텃어요. 흰쌀밥 먹고 흰소리 좀 보태자면 <서울 사는 김서방>이란 요정도의 정보만 있어도 찾아갑니다.

 

 

수원에서 분당까지 가는 시내버스타고 가는 구간에는 길 옆으로 온통 아파트들이 들어서서 아이는 답답하다고 한숨을 푹 쉽니다. 엄마 이렇게 복잡은데서 어떻게 살아? 아마 백번에서 다섯번 모질라게 아이는 내게 묻습니다. <나는 절대로 혼자 이런 곳에서는 못 살것 같아.> <사람이 살아서 못 살 환경은 없어. 남극 세종기지에도 사람이 사는 걸?> <그거하고 이거하고는 틀리잖아> <뭐가?> 요즘 머리 속이 혼란한 딸아이는 <사람 많은데서 사는 것>과 <날씨 추운 곳>에 사는 것은 좀 문제의 개념이 다른거 아닌가..하는 생각을 말로 풀어내지 못하고 있네요.
그래,그래. 니가 지금 그걸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속이 복잡하고 뒤엉켜있는게야

 

 

선생님이 진맥을 하시고, 복진을 하시고는 딸아이에게 찬찬히 묻고 딸은 대답을 합니다.
결론은,
아이가 너무 고되게 살았다. 학교 다니고 공부하느라 제 속에 있는 기력이 다 빠져나갔을 정도로 힘이 없다. 그러니 그동안 눌러 놓았던 기가 떠들대로 떠들어올라서 아이의 마음이 하루에도 수천번 소용돌이속에 휘감긴다....이런 내용이였습니다.

약을 먹고 찬찬히 치료해서 몸의 기운을 올리고 순환이 잘 되게 도와주면 저절로 괜찮아 진다고 합니다. 휴~~ 가슴을 쓸어내렸지요.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오랜만에 학교 친구들 이야기하면서 웃고 그랬어요. 얼굴이 훨 밝아졌고 머리도 맑아진것 같답니다. 그러나 공부걱정이 떠나간 건 아니예요. 생각같아서는 학교도 휴학을 하고 싶지만 제대로 놀 줄도 모르는 요즘 아이들은 그 마저도 두려운 일입니다.
내가 가슴을 치며 반성을 했어요. 아이를 너무 창조적으로 못 키웠구나..하는.
나 역시 마찬가지겠지요. <팍, 쉬어버려!>했을때 마음 편히 진짜 팍 쉴 수가 없는 것처럼.

 

 

다른 사람은 어띤가 몰라도 내 경우를 보면 그래요
늘상 벗어나 다른 차원 위로 올라가서 좀더 자유로운 생각과 행동의 반경을 가지자 열망을 하면서도 기실 준비는 안 하고 산다는 것. 진짜 그런 시간과 공간이 주어졌을 때 외려 그걸 누리지 못하고 두려워하며 안으로 움츠려드는건 아닐지..하는.

 

사는 일이 눈 앞에 봄꽃망울 터질 때처럼 팡팡 터져주는 집구석 일들을 처리하다 봉께 사람이 경황없이 쪼그라들어 널널한 시간이 와도 그걸 주체를 못해 안절부절하며 허둥대다 시간 다 보내는 꼴이 나는건지도 모르재요.

 


아이는 아침에도 눈뜨자마자 공부걱정에 눈물을 흘리며 울었습니다
처음에는 울지마 괜찮아..하다가 에이, 수건 하나 얼굴에 갖다 붙여주며 <실컷 울어라> 했지요 제법 흑, 흑, 흐느끼다가 코가 막히니까 울음 소리가 잦아 들어요


<더 울지 오늘만 울고 다시는 못 울거니까 아주 원도 한도 없이 울어>했더니


<코가 막혀 못 울겠어 엄마>합니다 츠암내.

 

옛날 아주 어릴 때, 하도 쨍쨍거리며 짤아쌌기에 그 때도 실컷 울어라 했더니 한나절 울다가 아무도 달래러 안 오니까 <나 이제 고만 울래>하더니.
이태껏 편안하게 자슥놈 키워왔는데 요즘 조금 애를 먹네요. 아이 어릴 때 교육학박사님이 강의하는 걸 잠깐 들었는데. 아이가 어릴 때 실컷 놀려야지 그렇지 않으면 언젠가 한번은 반드시 <논다>네요. 그 노는 시기가 초등학교 때 마쳐야 하는데 그 때 놀지 못한 사람은 고등학교, 혹은 장가 가서도 꼭 놀고야 만답니다. 저도 한 때 대책없이 놀았어요^^ 다 커서 말이죠.(근데 나는 초등학교 때도 부지런히 놀렸는데)

 


이제 바라는 바는 아이가 한약을 잘 먹고 몸과 마음이 다 건강해져서 옛날처럼 명랑쾌활버전으로 되돌아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나는 영 체질적으로 이마에 내천자 그리고 인상쓰며 고민하는것은 맞들 않아서. 울 딸 상민이가 어려운 우화과정을 겪고 이쁜 나비로 다시 태어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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