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대포집 세째며느리

슬픈 녹

황금횃대 2004. 6. 30. 22:11
대구제3공단
기름을 짜며 한시간 달려가 짐짝으로 부려지던
공단1로 동산양말 바로 옆
거북식당에서 멀건 국수 물에
열아홉 생의 가닥을 후르륵 거리던 뒷마당 쯔음
주물공장 찌그러진 삽짝 앞에는
녹의 광장이 있었다

초짜 경리로 하꼬방 문턱을 넘어
작은 책상 앞에 앉으면 딱 그 높이의 눈 앞에
바깥으로만 열렸던 쪽창이 있었고
쪽창 중간을 가로지르는 호흡에
저울의 눈금대가 걸려 있었지

삼사백킬로는 우습게 달아 주던 저울 앞에
한귀퉁이 처박혀도 아야소리 내지 않던
주물덩어리들이 기둥으로 혹은 원형으로
무거운 몸을 서로가 의지 한 채 쌓여 있었다

비 오는 날
풍경을 눈에 끼운 채 쪽창을 내다보며
하루를 되새김질하다 문득 바라보면
아! 아름다운 녹,
처음의 녹, 주황색!
페인트를 뿌려놓은 듯 빠알간 주황색
그것이 며칠 더 풍화하면 붉은 녹이 되었다

녹조차 아름다왔던 열아홉
그 가난한 마음이 붉다가 붉다가 이젠
푸른 녹이 되어 사위어가는 들판에서
푸른 소줏병을 기울이고
앉은뱅이 책상머리에도 몸 붙일 것 없는
씨알머리 자잘한 생을 부풀리느라
이러구 앉았네


슬픈 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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