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대포집 세째며느리

쌩구라

황금횃대 2004. 7. 5. 22:30
딸아이가 올해 중딩이 되었다
공부도 첨에는 좀 할라구 그러더니 학원도 때려치우고
집에서 영.수 눈높이만 하고 있다
그러니 다른 아이들 과외하러 가고, 학원 가서 수업할 동안
울 딸은 집에서 열라리 채팅을 한다
뭐 채팅을 내가 나쁘게 보는기 아니고
에미된 자격으로 한번쯤 인상을 쓰며
그 시간에 공부 좀 하라고 주끼 쌌지만
영 씨알이 먹혀들어가지 않고 있다

어제는 거울 앞에서 머리 모양만 깻잎이네 뽕이네
핀으로 만지작 빗으로 돌리고 하는 냥이 얼마나
한심하던지, 내 과거 공부 하던 시절 이야기를 했다
과거야 검증 되어지는 것이 아니고, 딸 또한 검증자료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니, 맘놓고 뻥을 칠 수 있지만
치사하게 그런 걸 모하러 뻥치냐 했던대로 이야기를 하니
만고태평 울 딸 조금 놀라는 눈치다

옛날 옛적에 공부 못한 부모가 어디있겠는가
ㅎㅎㅎㅎ
다들 한 시대를 풍미한 듯 공부 열심히 했다고
자슥들한테 구구절절 이야기 하지 않겠는가.
내 중딩 시절 이야기를 하면서

딸아, 참 니 공부하는거 보이 한심하데이
내는 그 시절 책을 안 놓고 살았는기라
머리에 들어가든 안들어가든 손에 책 떨어질 날
없었구마. 니가 그렇게 어려워하는 과학 교과목
나, 그거 자율학습위원 했다 아이가
뭐냐 올렌산 부피 구하는거, 등가속도, 가속도, 등속운동
운동에너지, 속력, 플레밍의 왼손법칙, 질량보전의법칙
미주알고주알 ....
지금은 공식을 다 잊어 먹어서 못 풀지만,
그 때는 참말로 가소롭게 풀었재이
생물도 알고보면 암기과목인데 니가 그걸 못한다는건
순전히 암기를 안했다는 반증이야
가정도 그렇게 영어 문법도 그렇게 하든 안하든 머리맡에
책 놔두고 살았다
이렇게 뻥을 치니 울 딸 적잖히 놀라는 눈치다

지금 생각하믄, 그 때 열라리 공부했는기 뭔 소용이고
그저 인간성 조은기 더 사는데 보탬이 되는 것을
이런 말이 목구멍까지 치받치 올라오지만
그런 말 했다가는 개떡같은 고스방 귀에 들어가면
에미가 저따구로 생각을 하니 아덜이 하나같이 그렇지
이런 소리 듣기는기 싫어서

딸아,
그 때 참..참고서도 한 권없어서 얼마나 서릅었는지 아나
넘들은 완전정복이네 뭐네 문제지에 참고서 사서 거개서
문제 나왔다고 시험지 동그라미 칠 때 속이 디기 따갑았는기라
나도 문제지만 있었다면 백점 맞았을낀데....어린마음이였지
그게 있으나 없으나 다 교과서 공부로 해결 할 수 있었지만
그 때는 그것이 참말로 야속시러웠다
핑게없는 무덤이 없다는 말하고 일맥상통하지만.

그렇게 공부했다
반딧불잡아 그 빛으로 공부는 하지 않았지만
공부방 가져 보는 것이 일생의 소원이다
지금도 내 소원은 오로지 내 혼자 공부할 수 있는
작은 방 하나 가져보는기 소원이지만..소원은 잘
안 이루어지니 소원이라 안카나?
부엌바닥 물로 씻어 연탄 가스 냄새 나는데도
그 바닥에 쪼글시고 앉아 도께다시 찬 기운을
궁뎅이로 느끼며 공부하는 기분..참담함 보다
더글더글한 남동생들 방해 안받고 공부할 수 있다는
고즈넉이 더 좋았다.

그렇게 좋던 공부도 나이드니 헛것이라
니 알재?
내가 요새 시집 좀 읽을라하면 벌써 책이 얼굴울 장악하고
잠들어 버린다는 것을
내가 책 가져오면 니가,
"엄마 또 잘라꼬 책 가져오나"이 소리 할 때마다
내 얼굴은 화끈 달아오른다

옛날 엄마 학생 때 외할머니한테 외삼촌하고 모여서
맨날 이런 주문을 했단다
거 뭐냐 저기 이태리에 죠반니노 꽈레스끼란 작가가 있거등
그 작가는 "신부님 우리 신부님"시리즈로 힛트를 쳤어
신부님(돈까밀로)와 공산당 읍장쯤 되나(빼뽀네)의 티격태격
하는 일상을 쓴 소설인데 우리 사형제는 그걸 보고
얼마나 재미있어하고 낄낄거렸는지 몰라
근데 더 재미있어한 것은 외할머니한테 이 소설의 작가
이름을 발음해보라고 시키는 것이였지
외할머니는 한번도 <죠반니노 꽈레스끼>를 똑바로 발음하지
못하셨어 우린 막 웃었지
그리고 백년동안의 고독이란 책을 샀을 때는 외할머니한테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께스>라는 긴 이름을 금방 들려주고는
또 기억해 보라고 이야기 했어
그런 경우는 우리가 책을 하나 읽을 때마다 그랬지
<로제 마르땡 뒤가르>도 역시 할머니의 새로운 창작이름을
비켜 갈 수 없게 만들며 우릴 웃게 만들었지

얼마 안 있으면 엄마도 그렇게 되겠지
니가 말하는 팝송가수 이름을 생뚱허니 지어서 발음을 하는

이공...지금 생각하니 참말로 못땐 짓이였어
그래도 그게 그 때는 참 재미있었지만.
그렇게 컷다.

뭔 말을 하려다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졌지?
여튼..공부 좀 열심히 해라
사기를 쳐도 책 읽는 놈하고 안 읽은 놈하고 차이 난단 말이야
으휴=3=3=3=3=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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