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대포집 세째며느리

보릿대

황금횃대 2004. 7. 15. 17:12

어제 마우스 사러 갈겸 영동 갔다가
오후 4시10분차를 타고 황간으로 되오다
드넓은 밭 한 뙈기 온통 눈 안에 들어오는 풍경
엄동 지나 봄날에 파릇파릇 보리 피어 오르더만
푸른 수염을 달고 이슬을 콕,콕 찍어 먹는 시늉 뒤에
어느새 보리가 누르스름 익었는가 고만 타작마당 되어
훤하게 대가리는 다 거둬가고 황금색 보릿대만
어지러이 누워 있다
이리저리 누워있다
갈피도, 저 서있던 줄도 없이 그냥 씨러져 누웠다
누운데 또 덮쳐서 보릿대가 누워있다
오후 넘어가는 햇살은 보기에도 따가운데
보릿대는 태양을 밀어내며 땀을 흘리고 있다
트랙터가 딱 한 번 지나간 곳으로 한줄기 길이 생기고
버스가 휙 지나가면서 내게 보여준 그 풍경 하나에
나는 가심이 씨라리도록 슬픈것이다
뭔 일이 있었던가?
아모 일도 아니다


평생 살면서,
어지러이 흩어져 누운 보릿대같은 세상 속에서
이조여인 정수리를 타고 넘은 듯, 그리 반듯한
가리마 같은 하얀 길 하나 내 인생에 낼 수 있을까
그 생각하니 하냥 억장이 무너져
왈칵 뜨거운 눈물이 솟구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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