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아주 옛날 나 시집와서 딸래미 하나 낳구선 몸이 아팠어요
얼라 하나 낳아도 새댁이라고 감히 내 먹고 싶은 걸 선뜻선뜻 못 해 먹었어요
지금 이런 말 하면 고스방이 한 마디 하겠지요
"세월 참 마이 변했다. 그 땐 저랬는데 지금은 저 먹고 싶어야 우리도 얻어 먹으니..."
고스방이 그렇게 말하기나 말기나 내게도 저런 시절 있었습니다.
삼시 세끼를 밥만 먹고, 행여 국수를 삶더라도 밥이 없으면 또 밥을 앉히던 시절이였으니
그녀르 카레가 먹고 싶은데 나 혼자 먹겠다고 그걸 해 먹들 못했지요
그라고 이 집은 하도 옛날 반찬만 고수해서 카레란게 뭔지도 몰랐데요
고스방은 군대에서 카레를 먹어봤다등만.
몸은 아프고 카레는 먹고 싶고 선뜻 낋이 먹지는 못하고.
그러고 있는데 친구가 카레를 끓였다고 노란 양은 냄비에 한 냄비를 가져다 주네요
여기서 걸어올려면 한 시간이나 걸리는 거리인데 제남편이 퇴근하자 오토바이 시동 끄지 말라하고는
따끈한 카레 한 냄비를 들고 왔세요. 어찌나 고맙든지.
노오란 카레에 밥 한 그릇 비벼 먹고는 나는 병이 나앗을거라요
어제 아는 새임이 아파서 가 보지는 못하고 내가 안절부절 정신이 없었세요
물건인동 반찬인동 들었다놨다 함씨롱.
결국은 고스방한테 전화해서 이만저만 사정이 있어 내가 대전 가서 그 새임 서울병원에 입원만 시켜 드리고 새벽차로 올것이..하고 조심시럽게 얘기했더니 고스방 흔쾌히 "니가 알아서 해라"그럽니다.
나는 수시로 고스방 흉을 보고 험담을 하고 투정을 하지만 속으로는 참말로 고맙게 생각하재요
이런 일에 절대 냉담하게 끊어내지 않습니다.
전화를 해보니 새임이 움직일 힘도 없다고하며 병원을 도저히 갈 수가 없다 하네요
저녁 7시 차 타고 내가 대전간다고 전화를 했으니 그 시간 되어 시외버스 터미널에 고스방이 가니 내가 안 나왔잖여. 또 전화가 왔습니다.
여차저차 갈 수가 없노라고 얘기하니 자기가 답답해서 사설이 늘어졌습니다.
한시라도 바쁜 사람이 왜 그리 미적거리노 하면서 걱정반 지청구반입니다.
밤이 지나고 아침 설거지 끝내고는 내가 바로 대전차에 올라타면서 전화하니까
새임이 자기 집이 너무 찾아오기 힘들다고 극구 오지 말라구 하시네요
대전 갔다가 900원짜리 모자 하나 사서 되돌아왔습니다.
뭐랄까...걱정은 되구 어떻게 할 수는 없구 막 나한테 화가 나는 고야요. 그래서 화날 땐 쇼핑이 최고라.
마트 들러서 휙 돌아보고는 세일하는 모자 하나 사서 머리에 푹 눌러 덮어 썼으요.
부글부글 머리 위로 끓어 오르는 그 무엇이 모자를 쓰자 조금 가라 앉아요.
집에 와서 점심먹고 앉았으니 새임이 전화가 왔어요
이젠 열이 좀 내렸다고.
그래도 뭘 좀 잡솨야지 기운을 차리재요
매운고추 썰어넣은 부침개 하나 먹었으면 딱 좋겠구만. 그 거 하나 먹으면 내가 일어날 것 같구만...
가까이나 있으면 쪼르르 달려가서 그까잇꺼 부침개 한 장 아니라 두세장도 처억 부쳐주련만..
옛날 옛날, 그 옛날, 나 딸 하나 낳고 몸이 아픈 새댁일때, 친구가 낋이다준 카레 한 냄비가 무장무장 생각이 났습니다.
사랑은 뭐랄까. 반드시 준 사람에게 갚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받은 사람이 또 다른 이에게 사랑을 줄 때, 값 없이 한 사랑은, 또 값 없이 갚아지는 것인데.
오늘 나는 그 기회를 놓쳤습니다.
그래서...좀 슬픕니다.
둘 다 새임이 좋아하는 것이라 했지요?
눈으로나마....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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