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대포집 세째며느리

멀어져 가는 것

황금횃대 2006. 10. 24. 19:23

어제는 무릎이 저리도록 편지를 썼네요

나뭇가지에 낙엽 두 장 달랑 달려 있는 그림을 여덟장이나 그렸세요

딸아이는 학교에서 아이들과 쵸코파이를 사먹고, 그 통 안에 있는 공작용 색종이를 가져왔세요

제 에미가 이런 종이에 혹하는 것을 딸년도 아는게지요

버리지 않고 갖다주는 정성이 고맙네요

작은 수첩에다가도 꼼꼼하게 하루 일을 기록하고 이렇게 입 안에 곰팽이 스는 상황을 어떻게 견디고 있나 하는 것을 썼어요.

짬짬이 <칼의 노래>를 읽어요.

충무공은 그 난리통에도 치열하게 기록을 하셨답니다. 작가가 그걸 간단하게 언급했는데 갑자기 코끝이 징해지는게 눈물이 나요. 치열한 기록...

 

1권을 다 읽고는 뒷편에 부록으로 붙은 항해도와 일기의 원본을 찬찬히 들여다봐요

그리고 큰 칼 사진도 들여다봐요

시간이 흘렀고, 그 때의 처참한 전쟁상황은 이 산천 어느 구석에도 남아 있지 않는데 전에 읽은 도모유키와 내용이 겹치면서 마음은 한 없이 밑바닥으로 가라 앉아요.

 

옛날에는 내게서 굳이 멀어져가는 것들이 몹시 안타까왔어요.

잡으려고 허공에 손을 내밀기도 하고 마음을 다치면서까지 붙잡기도 했어요. 그런데 이제는 그게 안되요

굳이 멀어져 가는 것이 눈에 보이면 나는 굳이 잡으려 하지 않기로 했어요

그리 마음 먹으니 마음이 편합디다.

사람의 일이든, 나라의 일이든, 아니면 세상 돌아가는 일이든

내가 붙잡고 애걸복걸 한다고 멈추어 서 주는게 아니라는 걸 이제 알아요

참 많은 것을 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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