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도 안 먹는 고스방

가감없이

황금횃대 2007. 2. 25. 10:09

고스방: 애들 어디 갔어?

여편네: 머리카락 자른다고 김천 갔세요

고스방:뭐? 대가리 자른다고 김천까지 가나? 보나마나 미장원에서 자르겠지

여편네:이발소보다 미용실이 훨 보기 좋고 잘 자른다고 갔는데 뭐

고스방:그깟 대가리 아무데서나 자르면 되지 뭘라꼬 차비 디리 가지고 가나. 머리에 피똥도 안 마를 새끼가.

여편네:이제 고등학생인데 피똥이 왜 아직 안 말랐겄어요 고추에 털도 났더만.

고스방:공부하는 놈이 대가리에 그렇게 신경써서 언제 공부를 해

여편네:대가리에 신경을 쓰던 머리에 신경을 쓰던 졸업할 때 장학금 받으면 됐지 뭘더 바래요(뭘더는 X-file주인공인데 ㅋㅋ)

고스방:나는 하여튼 그렇게 생각하는 사고방식이 맘에 안들어. 대가릴 깎을려면 이발소가서 학생같이 단정하게 깎아와야지 똑 그지새끼같이 깎아 올라구

 

지에비를 닮은 고서방의 아들은 머리카락이 곱슬이다. 머리카락이 길면 정수리부터 머리카락이 아래로 뻗어 내리는게 아니고 새둥우리처럼 뱅뱅 잡아 돌며 각자 개성대로 꼬부라져 돌아가는데, 결국 그런 머리카락의 속성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머리가  커 보이는 것이다. 아들은 그게 늘 불만이다. 이번에 새배돈이며 장학금이며 모두 긁어 모아 머리카락 속성 수정에 한방 쏘기로 한 것이다.

 

설 전부터 그놈의 대가리 싸악 깎았으면 좋겠다는 소리를 귀에 따까리가 앉도록 들어도 못 들은 척 넘어갔는데 이제 삼월 이일이면 입학식을 해야하니, 그 백수건달 같은 머리컨셉을 어찌 정리는 해야 할 판이다. 그래서 지 누나랑 상의하더니 거금 삼만 오천원을 들여 볼륨매직파마를 하기로 하고 어제 오후에 김천 미용실로 둘이서 갔다. 가기 전에도 인터넷 검색을 통해 머리 스타일을 삼천개 정도는 검색을 해 보고 갔다. 그러더니 저녁 여덟시 차에 황간으로 와서 집으로 왔다.

 

붕 떠서 희안하던 머리카락이 착 가라 앉고, 뒷머리는 모가지까지 내려오게 길다란 샤기컷을 하고 얌전하니 귓가에 머리카락이 착 달라 붙어서 돈 들인 폼이 난다.

한 눈에 봐도 순정만화 남자 주인공까지는 안 가고, 그냥 옆에 붙어 노는 찌질이친구쯤으로 잘라놨다.

낯선 모습에 첫 마디 나온다는게 뭐가 이래? 였는데 지에비가 보면 또 잔소리군소리가 댓발 늘어지게

생겼다. 그래도 놈은 좋다고 히희낙낙이다.

 

저녁에 들어 온 고스방, 대뜸 아이들 방 문을 열고는 들어가 한다는 말이 "이 쒜끼 대가리 그거 깎는데 무슨 김천까지 가. 공부하는 새끼가 대가리에나 신경쓰고 (그 뒤에는 백마디 말보다 더한 위협의 눙깔 꼬라보기. 포스가 느껴지는 숨소리. 아들의 머리 위에 쏟아지는 송곳 눈길...등등)

 

나는 암말 않고 부엌에서 미뤄놓았던 설거지를 한다. 이 순간에 나는 설거지를 하면서 그 악담을 그릇 부딪는 소리로 상쇄시킨다. 오호..

 

고스방은 "그 머리로 학교가서 안 걸릴라는가 모르겠네. 에혀"하며 한숨을 쉰다

 

아들아...그게 다 아버지가 니를 너무 사랑해서 그렇단다. 이해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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