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 동맹 상순이

꿈꾸는 역동

황금횃대 2007. 3. 4. 10:28

 

 

초등학교 때는 크레파스로 그림을 참 많이 그렸다. 내 생각 속에 자리한 바다,산, 나무 새, 꽃들이 보편의 모양에서 내 나름의 색깔로 칠을 했다. 기실 색이래야 24색에서 꽃잎을 표현할 수 있는 색깔은 많지 않았지만, 그 때는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리는데 두려움이 없었다. 지금의 나이에 와서는 왜 크레파스로 그림 그리는 일이 어려워지는 것일까. 오랜 시간동안 손 끝에 쥐어지는 필기구는 그저 가늘게, 가늘게를 지향하다 보니 저렇게 하나를 잡으면 손아귀에 가득차는 듯한 느낌의 굵기를 버거워 한 것이다. 그래서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리는게 점점 멀어질 밖에.

 

몇 년되었을까? 아니 십여년이 다 되어가나? 영동문화원에서 크레파스 그림을 강습을 했는데 어렵게 거기 가서 등록을 했다. 그러고는 4절지 스케치북과 58색 크레파스를 한 통 사서 집으로 와 풍경 사진을 놓고 그림을 그렸는데, 4절지가 주는 그 막막함이란.. 크레파스로 공간을 다 메워야 한다는게 여간 부담이 아니다. 다른 회원들 작품을 보면 어렵잖게 도화지의 공백을 메워놓은 것 같은데 나는 그게 왜그리 넓고 부담스러웠던지. 결국 회비만 내고 두어번  출석하고는 땡, 종을 치고 말았다. '그래그래, 나는 저렇게 큰 도화지는 도저히 힘들어서 못하겠어 엽서나 편지지가 나에겐 딱이야 딱,'이러면서 고만 출석을 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아쉽기도 하지. 그 때 좀 무리를 하더라도 꾸준히 다닐 걸...저기 서송원에 사는 승호엄마는 이 시골에서 서울 홍익대까지 그림을 배우려고 일 주일에 두 번씩 서울로 다니지 않는다는가. 농사 지어가며 그렇게 하는 사람도 있는데 나는 기껏 영동까지 나가는 일에도 그렇게 게을을 부리며 포기하고 말았으니.

 

어제 아는 언니가 왜 3월에는 달력을 보내지 않지? 하면서 물어오길레 부랴사랴 크레파스 꺼내서 한 장 그리고, 어젯 밤 또 한 장을 그려봤는데 어렵다. 딸래미한테 보여주니 <엄마는 색연필 체질>이라며 늘 하던대로 하세욤 한다. 야,야, 체질이 어딧어 그것도 바꾸면 되지. 술만 봐도 알 수 있잖아. 내가 술을 못 먹었는데 요새야 뭐...까짓 체질쯤이야 히히.

 

그러고 있는데 대구 사는 아자씨가 상순씨~하며 전화가 왔다.

거울 앞에 쪼그리고 앉아 전화를 받는데 입은 부지런히 수다를 떨면서도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가마히 쳐다보니 이제 나도 늙음의 경계 안으로 들어가 앉았구나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그러면서 마음만은 봄날 부풀어 오르는 꽃망울처럼 부풀어서는 하는 말이.

"나, 가만히 생각해보니 역동적 대화를 해 본지 꽤 오래 된거 같아. 손짓 발짓 섞어서 침 튀기며 하는 대화 있잖아. 사는기 그렇지 뭐..하면서 피식 웃음 한 오래기 흘리고 그려,그려, 하며 수긍하는 대화 말구, 그게 아니지..혹은 이렇게 하면 어떨까..하며 끊임없이 가슴으로 끓어 올라 그 벅참을 어떻게 할 수 없어 쏟아 놓는 그런 대화말야. 서방하고 얘기해야 맹 떡 치는 이야기에 서로의 숭이나 봐쌌구. 그런거, 그런거 말구 말이야. 이 대화를 마치고 돌아서면 일기장에 뿌듯하게 기록하고 바로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그런 역동적 대화말이야..."주절주절.

 

허기사 이런 이야기하면서도 내가 어휘가 막힌다. 내 생각을 딱 들어 맞는 찰떡궁합 어휘로 표현을 했으면 좋겠는데 그게 안 된다. 아뿔사.

 

비 온 후 꽃샘추위라더니 눈 앞에 아직은 봄의 낌새를 보이지 않는 느릅나무 가지가 바람에 마구 흔들린다. 저렇게 봄바람에 온 몸을 흔들어야  나무도 수액순환이 원활하여 고루고루 잎눈을 틔우고 우렁우렁 무성한 잎들을 매단다고...저어기 모 님의 블로그에서 읽은 것 같은데.

자연은 저리도 역동적 생존을 위해 서로가 도와주고 노력을 하는 중인데...나는 어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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