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 동맹 상순이

저녁

황금횃대 2007. 3. 13. 20:14

 

아침에는 컴 앞에 앉아서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게끔 웃음 한 자락까지 맹글어서는 아흐! 아침 이럼씨롱 억시기 기운 펄펄 유쾌상쾌통쾌한 하루를 살 것 같이 시작했는데,막상 지금 저녁 시간이 되어 앉았으니 왜 이리 또 기운이 축 빠지는지 몰것다.

 

아침 설거지 끝내고는 조금 앉아 쉬다가 요가하러 갔재. 시간에 딱 맞춰갔는데 요가 하러 아지매들이 얼마나 많이 왔는지 면사무소 작은 강당에 꽉 찼어. 바닥에 까는 매트가 없어서 두리번 거리고 있응께롱 강단 위에 요가 새임이 깔고 있는 걸 날 갖다 주네. 어찌나 미안턴지. 안 틀어지는 몸을 용을 써서 틀고 들어 올리고 세우고 내리고 ..하면서 하여간에 굳은 근육을 다 풀어주고는 집으로 왔지.

 

어제는 대전 산부인과에 검진 받으로 간다고 하고는 냅다 청주로 뛰었지. 공주언니랑 제천에서 온 언니와 서울에서 온 또 다른 언니, 이렇게 너이서 뭉쳐가지골랑 공주 언니 집에서 대게 두 마리 내 혼자 다 뜯어 먹고 다시 나와서는 아주 분위기 좋은 식당에 가서 밥도 한 그릇 너끈히 털어 먹고 집으로 오니 저녁 여섯시여. 고스방은 내가 그렇게 놀다 온지 꿈에도 몰르재. 한참 언니들이랑 수다떨며 이야기하고 있는데 고스방이 전화가 왔네. 어디냐고. 대전이지. 아직도 안 끝났어? 이제 다 끝나갈려구 하네 어쩌구 저쩌구.

그렇게 하루를 땡땡이 치고 왔으면 오늘은 기분이 아조 좋아야하는거 아니냔 말이지.

 

오늘이 말날이래요

엄니께서 장을 담아야 한다고 며칠 전부터 말날을 잡아 놓고 비가 오면 안 된다고 내처 말씀을 하시네

어제 청주 가기 전에 메주를 쪼개 보니 작년에는 떡치 한치 만큼 떳던데 올해는 날도 따뜻해서 그런가 속에 까지 폭 떴어요. 작년에 담은 간장은 작은 독을 씻어서 옮겨놓고 또 햇장을 담어.

장단지가 얼마나 큰지 머리를 장단지 속에 집어 넣고 깨끼발을 해서 장독을 수그리가지고 씻었네

휘휘 팔을 저어서 수세미로 장독안을 씻다보면 뭔 생각이 나긋어. 어휴 내년에는 좀 작은 독을 장만해야지..하는 생각밖에 안 나제. 씻은 물은 또 바가지로 퍼내고 헹구고..

 

메주 석장 반에 물 두말 잡았지. 해마다 서말물을 잡아 장을 담았는데, 장물 재고가 너무 많으니까 부엌에서 꾸부리고 내다보던 엄니께서 고만 두 말만 물 잡으라 하시네. 물 한 말에 소금 서되 잡으면 딱 맞다고 엄니께서 또 이야기하셔. 장 담을 때마다 이야기 하시는데 나는 그걸 안 까먹었걸랑. 그런데 엄니는 내가 모르능가 싶어서 또 얘기하셔. 속으로...아이고 작년에 말씀하셨으이께롱 어련히 알아서 물 잡을까 또 말씀 하시네..그랬지. 맨날 엄니  그러려니 하면 되지 하면서도 나도 참 속으로 꼬장꼬장혀. 그걸 편하게 못 들어주니 말이야.

 

장을 다 담고는 고추, 통깨, 숯을 넣고 뚜껑을 닫았네. 작년같으면 어머님이 밖에 나와서 허셨으니 새끼 꽈다가 고추 끼우고 숯도 끼워서 장독 테두리에 감아 두셨는데 올해는 그거 할 힘도 없으신가벼. 그런데 내가 그런걸 또 척척 꽈다가 이뿌게 해 놓으면 좋은데 나는 또 그런걸 잘 안 해요. 고것을 봐도 내가 참 못 땠다는거를 알 수 있지를. 나는 무엇이든 간편하게 편하게 하자는 주장이고, 울 엄니는 뭣이든 격식에 맞게 정성을 들여서...하는 걸 좋아하싱깨로 잘 안 맞네요.

 

집모퉁이 돌아가서 세차할 때 쓰는 호스 가져와서는 뒤안 수도에 꽂아 놓구선 장독을 씻어요.

좀 있으면 황사가 덮쳐서 또 뿌옇게 될지언정 소금물이 묻어서 허옇게 말라 있는 걸 보면 쫌 보기가 거시기 하재요. 장독이 전부 워낙들 한덩치 하는 것이니 한 손으로는 물 나오는 호스를 들고 한 손으로는 수세미로 장독 배통이며 아랫도리며 박박 씻어야하니..옷이고 발이고 다 젖었네. 거기다 바람은 불지 머리는 휘날려 사자갈기처럼 부풀어 올랐지. 힘 들게 씩씩거리고 퍼뜩 해 치울라고 하다가 쪼맨한 장독 뚜끼 하나 털썩 깨묵었네 에이씨.. 

 

그렇게 장꽝 청소하고 들어와 좀 누웠더니 아주 몸이 땅 속으로 꺼져들어가는거 같애. 한숨 자고 일어나 저녁할 때여. 낮에 고스방이 잡채 먹고 싶다고 해서 요가갔을 때 재료를 사왔는데 그걸 끌르지도 않고 박스에 담아 놨는데, 부엌에 들어가니 참말로 손도 까딱하기 싫네

그래도 돈 번다고 새벽부터 용쓰고 댕기는데 그깟 잡채 해 주는게 뭔 큰일이라고 안 해주겠냔 말이지

억지로 시금치 단 풀러서 다듬어 삶고 당근이며 양파며 껍질 벗겨 볶고 무치고 했어.

하면서도 곧 울음이 터져나올 것 같아. 왜 그런가 몰러. 까잇꺼 좀 몸이 무거워도 여사로 여기고 마음 풀고는 척척 해 내면 될 것인데 순간 아찔허니 살기가 싫은 생각이 드는겨. 채 썰던 칼도 집어 던지고 싶고 끓는 물을 어데 때바리나게 솥째로 엎어뿌리고 싶은 심통도 나고. 참말로 종 잡을 수 없는게 여편네 마음이여. 아니아니 마음이 아니고 심뽀여.

 

저녁을 느즈막히 혼자 앉아서 먹는데 밥 숟가락 들 힘도 없네 꾸역꾸역 몇 숟갈 떠 먹다가 냅다 생각나는 사람이 있어 숟가락을 던졌네. 왜 그럴 때가 있잖여. 이런 억장 무너지는 심사를 그 사람한테 말하면 너그러이 다 받아 줄 것 같은. 한 없이 눈물 그렁그렁 매달고 투정을 부리면 그 사람이 특별히 뭐라 위로의 말을 건네지 않더라도 대답만 넙죽넙죽 해줘도 내 속에 응어리가 풀릴 것 같은 그런 사람 말여.

 

전화를 했지..따르르르릉..따르르르릉...여보세요...

한 뭉테기의 사연을 와르르 치마 폭에 싸온 소꼽을 쏟아내듯 그렇게 부어놓으니 그가 껄껄껄 웃어

그 웃음 소리에 나는 풀었네. 산고 끝에 해산한 여편네처럼 시원하게 풀었네.

 

 

그런데 당신에게 전화가 안 왔다구?

ㅎㅎㅎㅎ

그럼 당신은 내가 생각하는 그가 아닌가벼

나는 분명히 전화를 해서 그의 목소리를 듣고 한바탕 내 싸나운 심사를 털어놓았걸랑

 

 

옛날 츠자적에 오늘같이 기분이 천만길 낭떠러지로 떨어지면, 회사고 뭐고 고만 핸드빽 주섬주섬 챙겨서 삼천포를 샜지를.   세월이란...참.

 

 

 

<옛날 고마님이 내한테 찍어보낸 벚꽃사진이네. 상순아 이제 고만 지랄떨고 꽃처럼 피어야지 하며 주문을 건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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