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대포집 세째며느리

쉽지만 첨 해보는 것

황금횃대 2004. 10. 1. 15:44
마흔 넘어 좀 더 살다보면 세상이 돈짝만해 보인다고
뭔 귀신 씨나락 까묵는 소링고(모 통신회사의 링고가 아니구) 하겠지만
이번 추석 고스방의 경우를 보면 틀린 말은 영 아닐시..그러니까
어쨌던 마흔까지 못 살은 양반들은 좀더 견디보란 말이여.

얼마전 시고모님이 어디서 밤 한가마니에 이만원 주고 샀다고 우리집에 와서
자랑을 허시기에 울 고스방 다시 사러 갈 일이 있으면 나도 좀 사자고 말을 하더니
추석 전에 고모님이 다시 밤나무 단지로 걸음을 하셔서 우리에게 줄 밤도 사가지고
오셨다. 말이 밤 한 가마이지...부어 놓으니 작은 돗자리에 하나 가득이다
졸음을 참으며 벌레 묵은 밤과 그렇지 않은 것을 기껏 골라 놓고 나니
고스방 왈,
한 푸대 더 사서 처갓집에도 줬으면 좋겠는데....
이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울 시고모님 또 다시 밤나무 단지에 가서 한 가마니를
더 가지고 오셨다.
물론 그것도 푸대째 쏟아서 성한 놈과 그렇지 못한 놈을 골라 담아 놓고.

그러구러 며칠이 지나자 추석이 오고, 추석이 오기 전까지 밤을 삶아 얼마나 잘 먹던지
고스방 밤을 까 먹으면서 치매환자 인듯 했던 소리 또 하고 또 했던 소리 한번 더 하는
내용인즉,

"학교 다닐 때 소풍가면 다른 아아들이 밤 삶아와서 까 묵는거 보이 얼매나 부럽던지. 내 그 생각해서 지금 부지런히 먹고 있다 아이가"

잘 밤에도 파먹고, 숟가락으로도 파먹고, 입으로 반을 쪼개서도 까묵고...여튼 부지런히 밤을 파먹는다. 그렇게 파 먹으며 저 소리를 꼭 하는 것이다. 음마나..얼마나 속에 한이 맺혀부렀으면 저렇게 곱씹는디야.

추석날
처갓집에 가져갈 밤을 들여다보고 들여다 보고 하던 고스방.
멀쩡하던 밤까지 슬금슬금 벌레똥이 나오니까 걱정이 늘어졌다
하나라도 성할 때 그걸 갖다 줘야하는데 아직 장가가고 이날 이 때까지 추석이고 설이고간에
명절날 처갓집에 가본 역사가 없는지라. 몇번을 마음으로 잣대를 재어보더니 점심 상을 차리는데 대구가자고 나선다. 마음 변하기 전에 가자고 어찌나 서둘러 쌌는지 우린 입은채로 고스방을 따라 나선다.

세상에 살다보니 이런 일도 있구나!

형제간이 사형제인데 우리는 셋째다. 그래도 부모님을 모시고 사니 다른 사람은 명절날 다 처갓집에 가네 동기간 집에 가네 해도 나는 한번도 친정에 갈 엄두를 못내었다
제사며 많은 식구들 와글 거린 티를 정리해 놓고 가야하니까 자연스레 친정행은 뒤쳐저서 그 담에 돌아오는 토요일을 이용해 친정을 갔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고스방이 점심도 안 먹고 가자하니 아이들도 놀래고 나도 놀래고.
그래도 뭐 놀랜척 할 필요있나 입은 채로 따라 나서는거쥐.

일단 고서방은 집에서는 호랭이라도 나오면 우리한테 참 살갑게 잘한다.
어느 휴게소에서 설 예정이니 뭘 먹고 싶은가 미리 생각해 놓으라고 휴게소가 다 와가면 우리에게 언질을 준다던지, 휴게소에서 이것저것 집어도 많이 샀다구 지청구 하지 않고 집 나와서 이렇게 먹는것도 재민데..하면서 우리보다 더 한 아름 품에 안고 오기도 한다.

자기 말로는 직업이 드러워(영업용 택시 기사) 넘들 놀 때 더 일을 해야하니 식구들과 같이 여행가는 것은 엄두도 못내고, 못난이(=나를 지칭함)가 배끝에 나가는걸 저리 좋아하는데도 그걸 한번 맘 편히 못 들어 준다면서 심경고백을 할 때는 사악한 나도 코끝이 찡해지는데.

그렇게 웃으며 떠들며 넘들은 피곤하다는 추석 친정 나들이를 우린 히히호호 하였던 것이다.
길이 좀 맥히면 어떤가....천처이 가면 되지. 가는기 중요하지 막히는거야 뭐..ㅎㅎㅎ

좀 힘들더라도 걍 살아보라
살다보면 이렇게 존 날도 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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