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도 안 먹는 고스방

서방과 운동 하는 맛

황금횃대 2007. 6. 13. 10:52

 

 

 

결혼 20년이면 스방도 이렇게 변한다는 목록에 운동이 있다.

고스방은 요새 엥간하면 운동을 빼먹지 않으려고 용을 쓴다.

일 마치는대로 학교 운동장 열바퀴 돌러 가는데 혼자는 절대 안 가지를.

꼭 여편네 앞세우고 운동을 하러 가는데 운동장 열바퀴 돌 동안 이 오래된 부부는 여러가지 이야기를 한다.

아이 이야기도 하고, 살림 이야기도 하고, 이것저것 닥치는대로 이야기를 하는데, 집 안에서 이야기하면 왔다갔다 세 마디만 오가면 큰소리가 나오는데 까만 밤 하늘 아래 트인 공간에서 하는 이야기는 싸움이 없다

이야기하다보면 왜 심정 긁어 놓는 소리가 안 나올까. 나도 그러하고 고스방도 살짝살짝 그러는데 이상하게도 서로가 그걸 꼬투리 잡지 않고 넘어가게 된다. 그거 참 희안하다.

 

처방을 내리노니

요즘 부부사이가 좀 소원하다던지, 재밋대가리가 하나도 없다고 생각이 든다면 같이 운동을 해보시라

고스방같이 콩 심은데 콩 안 나면 돌아삐리는 사람도 슬슬 여유가 생기고 속에 넣어 두고 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풀어 놓는다. 쑥쓰러워 하지 못하던 이야기도 하게 되고.

 

어제는 주차장 아줌마가 인터넷으로 티셔츠를 주문하는데 자기도 아이들 줄려고 똑 같은걸로 두 장을 더 주문해서 집으로 가져왔다.

검은색에 그냥 하얀 토끼(플레이보이 마크와 똑같은)가 커다랗게 찍힌 것 한 장, 그리고 알파벳 M 모양이 찍혔는데 모양 속에 얼룩말 무늬의 물결 모양이 찍힌 아주 단순한 티셔츠다. 집에도 까만색 티셔츠가 넘쳐나는데 또 사왔냐고 이런 말 하면 절대 안 된다. 집에 까망이 넘쳐 넘실넘실 넘쳐 흘러도 스방이 뭘 작정을 하고 식구를 위해서 사온 것은 무조건 잘 사왔다고 얘기하고 고맙다고 인사를 해야한다.

 

그냥 있는 자리에서 입고 있던 옷을 훌떡 벗고 M모양이 찍힌 티셔츠를 입고는 운동을 갔는데, 뒤쳐저 걸어 오던 고스방 내 옆에 따라 붙어 하는 말.

"못난이도 이 티셔츠 입으니가 허리가 잘룩한게 이뻐 보이는걸"하며 응근한 눈길을 보내며 허리로 손을 감을 오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 내가 보답차원에서, 그냥 기분 좋게.

"여보 우리 참 옛날에 많이 싸왔는데, 요새는 별로 안 싸우고 참 신통하지?"하면 고스방,

그냥 "그려"하면 될걸 갑자기 고개를 홱 돌리며 눈을 까꾸장하게 뜨고는

"이놈으 여편네 말하는 것 좀 봐. 우리가 뭘 그리 많이 싸웠다고. 우리처럼만 안 싸우고 살라지"

아이씨, 내가 그런말 넌즛 하면 동조를 해 주면 얼마나 좋아 동네 소가 들어도 웃을 이야기를 꼭 아니라고 우긴다. 그럼 좋았던 기분이 순간 팽 돌아가는데, 거기다 내가 좀 삐딱선을 탄 어조로 이야기를 하면 바로 싸움난다. ㅎㅎㅎ(옛날 과도 던지며 싸운 기억을 모조리 잊었단 말인가?)

 

참말로 스방이란 작자는 맞춰주기 어려운 인물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큰 소리로 웃기도 하고 스방한테 쥐어박히기도 하면서 운동장 열 바퀴 돌고 나면 개운하다.

걷고 난 뒤 장단지가 땐땐해졌다고,굳이 만져보라고하며 자랑하는 스방

며칠 걸었다고 똥배가 화악 줄어든 것 같다며 아랫배 힘주어 집어 넣고 자랑하는 스방.

걷고 난 뒤에 변을 보면 활발한 장운동 덕택인지 아침에 변기통이 X으로 넘칠까바 걱정이 된다는 스방.

그러면서 낄낄낄....웃는 스방.

나이 오십인데 고스방은 더 순진해지는것 같다. 이 일을 우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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