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도 안 먹는 고스방

주절주절

황금횃대 2007. 6. 8. 21:58

비가 쏟아져요

울 아덜 딸은 대학생한테 돈 주고 과외를 받지만, 나는 동네 아지매 컴퓨터 갈케준다고 과외 댕기요

오늘 낮에 은행갈라고 오토바이를 끌어 내서 시동을 걸라고 하니까 이놈의 오토바이가 아주 도살장

끌려가는 황소처럼 무겁게 굴러가는지라, 그래도 시동 걸어서 올라타니 느낌이 이상해요. 뒷발통이

빵구가 났네. 어이구, 내가 할리 어쩌구저쩌구 했더니 임마도 골부리 하나벼.

 

옛날 시동생이 영동 씨름판에서 장사 타이틀 거머쥐고 송아지를 타왔잖여. 그 송아지를 고스방이

얼마나 정성을 다해서 먹였는지 몰라요. 살찌와서 팔라구.

겨울이면 뜨거운 물 보일러에서 빼다가 두 빠게스씩 갖다 주고, 볏단이며 사료며 지극 정성으로

소한테 갖다 줬지요. 그렇게 소 믹이다 보니 소하고 정이 들었어.

소외양간은 좁고 황소는 날로날로 커가니 이 황소가 화깝증이 나는가 심심하면 외양간 기둥을 들이

받고 구시통 으로 만들어 놓은 곳의 난간을 들이 받아서 블록 쌓아 놓은 걸 다 무너 뜨리고 그래요

그래서 짐승하고 정들은거야 서운하더라도 저대로 놔 뒀다가는 아랫채 무너지겠다 싶어 소를 팔게

됐재요.

내일 새벽에 소를 가질러 온다면 오늘 저녁에 시동생이 전화를 했어요

"내일 농협 정육점 직원이 새벽에 소 가질러 갈거라요. 살모시 대문 좀 따 놓으세요" 그러는겨

"어머낫! 소 팔으실라구요?"하고 내가 깜짝 놀라 소릴 지르니 시동생이 기겁을 해요

"살살 이야기하세요. 바깥에 나가서 소 듣는데 판다느니 이런 말 절대하지 말구요"

 

알고보니 그렇게 소 앞에서 지가 팔려서 도살장에 갈거라고 떠들어대면 짐승이라도 다 알아 듣는

다는겨. 그러면 소를 몰고 나오는데 이 소가 안 나올라고 몸부림을 친다고 하네. 그 소릴 들으니

어찌나 슬프던지. 요즘 소야 옛날 처럼 멍에 얹어 논밭갈고 무논에 논 고르느라 허우적 거리질 않으니

편하기야 하지만서두 그래도 이 년 가까이 같이 살았으니 특별히 저하고 손잡고 놀지는 않았어도

사료 퍼 주고 난뒤에 소 눈을 가마히 들여다 보면 정이 지절로 들지를. 그 큰 눈이 끔벅끔벅하면서

사료를 먹고, 짚단을 이리저리 굴리며 뜯어 먹고...어디 갔다가 삽짝 들어서면 젤 먼저 고개 내밀어

쳐다보니까.

 

소 팔려가는 날 혼자 부엌에서 울었네.

 

어이고 이야기가 뒷길로 새부렀어.

근데 이놈의 오토바이는 소처럼 귀가 있는 것도 아니고, 눈이 있어 내 방에 와 블로그 들다본 것도 아닌데 왜 빵구가 나고 지랄이여.

낮에 점심 먹으러 들어 온 고스방.

오토바이가 푹 주저앉아 있으니 날 보고 한 마디 한다.

"저거 상순이 작품이지. 뒷발통 새로 사서 갈은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빵구를 내놨어"

"빵구 난게 아니구 저기 동네 입구에 카아브(커브)트는데 길이 울퉁불퉁해서 타이어가 삐글릿나벼"

"참말로 둘러 대기도 잘 한다. 멀쩡한 타이어가 삐끌린다고 저렇게 주저앉나? 어데서 못쪼가리 밟아서 빵구  났지"

 

 

비가 좍,좍 소리내며 씨원하게 내리네

양 사방 창문을 다 열어 놓으니 씨원한 바람이 술술 들어 오네. 저 빗방울 떨어질라고 낮에는 얼마나

후덥지근하게 덥던지, 가슴 골로 땀이 삐질삐질 흘러 내렸네. 이렇게 시원한 바람 앞에서 보송보송하게

몸을 말리면 샤워 안 해도 잘 자겠다. 야지리 식구대로 샤워를 해대니 세수 비누도 감당을 못하겠네.

 

아침에 빨래 돌리다가 잠깐 컴 앞에 앉아서 짧은 글을 썼는데 등록이 안되고 날라갔어.

제목은 <소똥도 층계가 있고, 똥물도 파도가 있다.>라는 것이였는데 후다닥 쓰고 등록 버튼을 누르니

등록이 안 된디야. 그냥 날아갔어. 아침에 소똥 이야기를 해서 그런가 지금도 소 이야기를 하네. 전혀 의식을 않고 주끼기 시작했는데 방금 생각이 나네. 그려, 내가 아침에 소똥이야기를 했지...하고

사람의 의식이란 이렇게 자신히 각별히 기억을 하고 있지 않아도 무답시 생각이 나는 것인가벼

고스방이 퇴근해서 들어오네...차 발통 굴러 들어오는 소리가 나... 계속..

 

 

고스방이 들어오자 마자 1인용 쇼파에 퍼억 앉더니 다리를 쇼파 팔걸이에 들어 올리고는 인사차 나간

날 보고 다릴 주물르라 하네. 똥이 무서버서 피하나..더...이런 말도 있듯이, 거 하루 종일 일 한다고 엑셀레이터에 브레이크 밟는다고 애 묵었다 싶어 다리를 주물러 줄라고 의자 밑에 다소곳이 앉아 다릴 주물러줘요. 그러니 고스방이 양말도 빗기라네. 아, 예 대왕마마 양말도 벗겨 드릴깝쇼. 양말 벗기고 다리를 주무르는데 티비 리모컨을 이리저리 돌리던 고스방, 젊은 아가씨가 아로마 목욕하는걸 보여주는 프로그램을 보는겨. 한참 보니까 뭐 그렇고 그런 내용이야. "내가 딴데 보소  재미도 없구만..."하고 리모컨을 뺏어 다른데 틀라고 하니까 리모컨 잡고 있던 손을 싹 피하면서 "냅둬, 내 맴이여"이러는겨.

에이..그래서 내가 좀 시큰둥해서는 소리없이 강한 레간자 방귀를 시르륵 끼고는 앉아 있었더니 고스방이 한참 뒤에 가스가 위로 올라간걸 감지 했는지 "아이쿠, 너 방구 뀠어?"이러면서 코를 싸자매네

 

어제 내가 제사지내고 딩굴러 댕기던 곶감을 두 개나 그자리에서 먹어 치웠더니 오늘은 그냥 넘어 갈라고하네. 그냥 넘어가면 내일 나오것지 하고 느긋한데 가스는 연신연신 분출이 되는거라. 그걸 참으면 얼굴이 누렇게 뜰거구 그래서 생기는 족족 배출을 하니까 고스방이 기겁을 하지.

"여편네가 옆에 갈라구해도 만정이 다 떨어지게 맹글엇!"

ㅎㅎㅎㅎ 잘됐다 하면서 다시 방으로 들어와 컴 앞에 냉큼 앉았네.

(글 읽으면서 다들 날 보고 참말로 오질없다 그러겠네 ㅋㅋㅋㅋ)

 

이제 쏟아지던 비가 멈췄어.

원래 시원스레 쏟아지는 빗소리를 들으면 제 속에 눌러 놓았던 것들이 슬몃 고개를 들잖아

빗소리가 우리에게 인심좋게 건네 주는 선물이야

뭐 눌러 놓았다해서 돼지머리 눌러 놓았다 썰어 놓은 것처럼 네모 반듯반듯한 모양이 아니고, 아릿하니

갈비뼈 아래 번지수도 없이 짱박혀 있던 그런 감정들 말야. 그런 것들이 형체도 색깔도 없이 그냥 떠 오르는겨. 막걸리 한 되 받으러 갈 때 들고 가던 찌그러진 양은 주전자 색깔 같기도 하고, 기와 공장 마당에 한정없이 비를 맞고 쌓여 있던 쪼대흙같은 그런....아, 뭐랄까 그 찰지고 찐득한 느낌.

 

 

에잉,

또 2% 부족해 나의 표현능력이...쩝.

이상 끝.

 

 

 

 

 

 

 

 

 

'막걸리도 안 먹는 고스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도리깨질 이야기  (0) 2007.06.14
서방과 운동 하는 맛  (0) 2007.06.13
할리 데이비슨  (0) 2007.06.04
그날 저녁  (0) 2007.06.04
문때는 값-부부의 대화  (0) 2007.0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