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도 안 먹는 고스방

도리깨질 이야기

황금횃대 2007. 6. 14. 08:30

 

포도낭구를 첨으로 심어 놓으면 포도나무가 클 때까지는 그늘도 없으니 골골이 다른 곡석을 심잖여요
그 첫 해 수박을 생전 첨으로 심어 놓고는 순지르러 다니는데 아주 진저리를 쳤네요.
밭이 좀 가까우면 그냥저녁 아침저녁으로 다닌다하지만, 밭이 집에서 머니까 거기 가서 살 수도 없고
왔다갔다하자니 바빠 죽것고...그래도 처음 지어 보는 수박 농사라고 어찌나 정성을 들였는지.
근데 수박 밭뙈기로 넘기는데 백만원 받았세요.
팔백평 정도 심었나벼. 왔다갔다 지름값도 안 나오겠다 그랬재요
한 이백평 남은 땅에도 서리태검은콩은 심었세요. 그 해는 어찌나 비가 잦던지, 수박도 비 오고 난 뒤
물기 거둘 여가 없이 모종을 심었는데 콩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심었세요. 그라고 그 포도밭이 원래
고논이라고, 메기가 하품만 하면 땅이 먼저 젖어 오는 그런 곳이여.

서리태콩은 서리를 맞고도 여물어요. 첨짓는 농사를 몰랐재. 벌써 다른 콩은 다 수확하고 아직지녁으로 쌀쌀한 바람은 불어 쌌는데 이 콩은 영 시덥잖어. 그래서 어이쿠 서리태 농사는 틀렸구나 하고 냅두었어요. 그러다 나중에 포도밭 청소하러, 그녀르꺼 공도 없고 용만 쓴 콩 뽑아 버린다고 갔더니 세상에나 그 사이에 콩이 통통하게 살이 찐거라. 버릴려고 한게 그렇게 여물었으니 얼마나 좋것어. 신나게 낫으로 찍어와 마당에 부려놓으니 콩대가 산 같에요.

지금은 이런거 있는 집 잘 없을거라요. 우리집은 일제강점시기에 사서 쓰던 탈곡기가 있어요.,

아직도 있어요. 콩대를 갖다대고 발로 패달같은 나무바를 밟으면 철사 벡힌 커다란 통이 돌아 가면서

콩꼬타리를 훑어내요. 그럼 콩대는 버리고 콩꼬타리를 멍석 위에 모아 놓구선 도리깨질을 하는데.

내가 시집와서 얼마 되지 않았으니 도리깨질을 할 줄 알아야지
옛날에 손으로 만든 도리깨는 싸리나무로 만들어서 어쩌다 사람 몸에 맞아도 덜 아플 것인데, 요새 도리

깨는 탁, 탁 후려치는 부분이 철사(강선)으로 되어 있어요. 처음 해보는 도리깨질이 잘 하면 얼마나 하겠냔말이지. 어깨 뒤로 도리깨를 휘윅 돌려 메칠려하면 이놈의 도리깨가 사람한테 달라 들어요. 기겁을 하고 도리깨 자루를 놓아 버리재. 그러나 세월은 무섭고 사람의 일이란 하면 할 수록 느는 것.

이제는 왠만한 콩타작은 도리깨질로 팡팡 잘 해대는데, 처음 미숙할 때야 그거 돌려 메칠 때 사람한테 안 달라들면 그것으로 족하지만, 슬슬 프로가 되어 가면 몸은 몸대로 생각은 생각대로 노는겨. 그거 할 때 속으로 미운 것을 생각하지. 아무리 미워도 실제로야 그렇게 감정 실어 어금니 옹실 물고 투드려 팰 수 있깐? 도리깨질 할 때 그 미운 것 생각하며 도리깨질을 하면 도리깨 살이 바람을 쉑,쉑 가르며 땅에 털어져 곡식이 탁, 탁, 못 살긋다고 튀지.
몸 피곤한거 보다 그 <복수혈전>이 더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는겨. ㅎㅎㅎ

이젠 도리깨질 하는 거 그거 하나도 안 무서워. 그런 생각하는 내가 더 무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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