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슬 포도일이 시작됐시요
어제는 비가 와서 포도밭에 갔다가 육손 지르는 일은 못하고 고사리만 한 봉다리 꺾어왔재요
첨에는 동네 임씨들 공동묘지 쪽으로 고사리를 꺾으러 갔세요
비는 부실부우~실 오지, 하늘은 내려앉아 껌껌하지..나는 길다란 우의를 입고 갔는데 그 모습이 좀 기괴해요 내가봐도. ㅋㅋ
손에 비닐봉다리 하나 들고 묘지 뒤를 돌아 고사리를 꺾는다고 오만 구석을 다 헤집고 다니는데, 갑자기 무덤 쪽으로 돌아보니 시커멓게 뭐가 보이는거라 속으로 깜짝 놀래서 다시 보니 망부석이래요.
산 속은 빗소리와 더불어 더욱 적요하지..하여간 공포 지대롭니다.
그래도 내가 누굽니까. 귀신보다 풀이 더 무섭다는 농사꾼 여편네 아입니껴.
계속 고사리 꺾으러 산을 헤집고 다녀요.
옷이고 뭐고 흙이 튀어서 몰골이 말이 아니래요. 그래도 그녀르꺼 고사리가 뭐라꼬.
참 간도 큰 여편넵니다. 한 시간쯤 비 오는 공동묘지 산 속을 헤집고 다닙니다.
무덤은 아모 말도 없이 단비를 맞고 있어요. 내가 간이 쪼매만 더 커서 난닝구 배끝에 나올 정도가 됐으면
그 고요한 무덤 가에 앉아서 오랫동안 이런저런 생각을 했을 건데, 그 정도는 아니구. ㅎㅎㅎ
돌아 다니다보니 어제 누가 꺾어갔는가 고사릿대 남은 끝은 겨우 물이 마른거라, 에잉 누가 먼저 꺾어 갔구만..하고 산을 내려옵니다.
오늘은 날이 화창허니 좋아서 아침 먹고 치우고 단단히 햇볕을 막을 장비를 둘러매고는 밭으로 갔세요. 마스크, 목도리, 모자에 머리수건, 장갑에 팔토시까지 장비가 한 웅큼입니다.
몇 년전만해도 긴팔 옷 입고 일 잘했는데 이제는 갑꾸바서 그렇게 입고 못해요. 속에서 열이 치받쳐 올라오는거 같애. 그래서 얇은 반팔 티 입고 가제 수건 목에 두르고 일해요. 하루 종일 햇님은 내 머리 위에서 반원을 그리며 지나가요. 나는 서서히 내 몸에다 햇님이 걸어갈 통로를 내주지요. 대단하지 않나요? 햇님이 걸어갈 통로를 몸에다 내주는 여편네.. 벨로 안 대단하다구요? 그러시기나말기나 나는 참 대단하다고 내게 칭찬 한 마디 날려요. 자뻑의 대가입네다.
포도순이 잠깐 사이에 많이 자랐어요. 팔을 치들고 순을 질러야하니 어깨가 아퍼요. 그래서 꾀를 낸다는게 고구다라이를 엎어 놓구 그 위에 올라가서 포도 순을 내려다보며 지르는거예요. 일 미터 간격으로 다라이 들고 옮기는 것도 만만찮지만 또 그 위를 (다라이 깊이가 육칠십센티 될려나?) 오르락내리락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래요. 그래도 팔 치켜들고 하는 것보다 나은거 같어. 열심히 한 구간을 하면 고무다라이를 발로 툭툭 차서 다음 구간으로 옮겨 놓고, 포도나무를 붙들고는 여엉차~ 소릴 내며 다라이 위에 디고 섭니다. 근데 참말로 희안한게 그거 칠십센티쯤 올라섰다고 그 위에서 둘러보면 넓디 넓은 포도밭이 한 눈에 들어와요, 휘 둘러보면 저 끝에서 대각선 방향으로 저쪽 모팅이까지 확 보여요. 땅에 발 딛이고 깨금발을 해서 그저 포도순만 게우 건너가며 순 칠때는 밭의 규모고 뭐고 보이질 않아요 그냥 눈앞에 보이는 순에서 다음 순으로 손이 옮겨 갈 뿐이죠. 근데 다라이 우에 올라가니 시야가 달라져요. 눈치 빠른 분덜은 내가 뭔 말 할려는지 벌써 감이 오지요.
ㅎㅎㅎㅎ
숙제입니다.
제가 뭔 깨달음을 얻었겠습니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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