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침에는 해도 나오지 않고 구름이 잔뜩 쳐발린 하늘에서 바람신이 하강을 했다. 설핏 물기에 제 껍대기를 한 바퀴 뚜르륵 굴려 수분을 김밥 두께로 말고 나온 듯하다. 색은 뭐랄까, 그래 탁한 색이다. 바람은 내려 오면서 느릅나무에도 올라 앉고, 닭장 지붕땀말래이에도 올라 앉고, 양철 지붕에도 걸터 앉고 하더니 색깔이 형형색색 바뀌었다. 창문을 열어 바람의 색이 갈래갈래 흩어지는 것을 보다가 한 생각을 떠올렸지. 이렇게 바람이 설렁 설렁 부는 날 필요한 것은 무엇?
2.
서둘러 몸빼이를 갈아입고 밭으로 달려간다. 산골짝 밭모퉁이에는 잠이 덜깬 바람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옥수수대궁 밑에서 수런수런 이야기를 한다. 있잖아, 그저께 선길이 할무이가 돌아가싯다네..
선길이 할무이는 일명 뚱뚱한 할머니였다. 신경통 약을 매일 먹어서 몸이 퉁퉁 부어 있었다. 덩치와는 상관없이 목소리른 앵앵소리였다. 내가 임신을 하고도 몰라서 자주 체한다고 그 할머니가 내 배를 엄청 쓸었었다 평생 농사일로 굵어진 뼈마디가 내 배를 누르며 쓸어내릴 때 나는 죽는다고 아구구 소리를 내었다. 아주 바깥 출입을 못 할 때까지 앙금앙금 기어서라도 농사일을 놓지 않았다. 할머니의 하나뿐인 아들은 이장일을 보다가 교통사고로 죽었다. 며느리는 제 남편이 할머니보다 먼저가서 할머니를 바로 보지 않았다. 그리고 식당을 개업해서 할머니의 손자와 같이 일하며 할머니는 혼자 우리 동네에서 살았다. 동네 경로당에서 밥을 해 먹거나 행사가 있으면 꼭 상을 차려 할머니 집에 갖다 드렸다. 할머니는 그 좋은 부엌에는 걸음도 안 하지고 마루에 몇가지 그릇을 갖다 놓고는 가져온 음식을 비워 놓고 가라고 했다. 그릇은 기름때가 새까맣게 끼여서 차마 눈뜨고는 볼 수가 없었다. 부엌에 가서 그릇들을 쓸어 놓고 세재를 묻혀 한참을 닦아서 다시 마루로 내다준 기억이 난다. 그러고도 할머니는 삼년을 더 사셨다. 뒤안 살구나무 위를 까마구가 까악 울고 가면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다가도 그 할머니 집으로 고개가 돌아갔다. 한 달이나 되었나? 집에 불이 날 뻔 했다는 소리를 들었고 그 후에 할머니는 요양원으로 옮겨졌다.
삼일을 꼬박 초상집으로 갔다. 첫째날은 이백쉰통쯤 되는 부고장의 주소를 써주고 집으로 왔고, 둘째날은 들렀다 동네 아지매들 돌아오는 차에 편승해서 밥만 한 그릇 축내고 집으로 왔다. 장삿날은 잠깐 밭에서 콩밭 한 골 풀을 낫으로 베어내고 산으로 갔더니 포크레인 소리가 요란하다. 할머니 살아 있을 땐 그렇게 장대비가 아침 저녁으로 쏟아졌는데 할머니 돌아가시고는 날씨가 삼일 동안 계속 맑았다. 그리 덥지도 않고 선선하여 상여꾼들이 돌아가신 할머니가 날씨 한 부조 하고 가셨다고 입을 모아 이야기 했다.
내가 이장이 되고 우짠셈인지 초상이 잦다. 우리집 초상 치른 것까지 치면 여섯건이나 발생을 했다. 이누무 이장 팔자가 왜 이러냐. 어떤 이장은 재임 중에 초상 한 번 없이 곱게 지나간다고 하는데 나는 팔자가 드세냐 어쩐것이냐..
3.
오늘은 먹고 싶던 소주를 양껏 먹었다. 중복날이라고 모여서 물가에 앉아 개다리를 뜯고 닭다리를 찢었다. 여자들은 나가나드가나 그놈의 음식을 차리고 치우고 하니라고 닭다리 하나 못 먹고 멀건 국물에 풀대죽 한 그릇만 먹었다. 속으로 심기가 싸나와 소주나 마시자했는데 먹고 나니 내가 정신을 못 차리겠다. 그 동안 소주 내공을 쌓지 않아 많이 약해졌다. 이걸 바로 잡으려면 수시로 알콜로 피를 적셔줘야하는데 이젠 그렇게 할 힘도 없다. 나도 이제 늙.....구나.
4.
콩 심은 골 옆으로 장마통에 우거지 풀사역을 했다. 왼손의 손모가지로 뒤쪽으로 꺾어 틀며 풀의 머리채를 낚아챈다. 그와 동시에 낫대가리가 15도 방향으로 비스듬한 곡선을 그리며 풀모가지를 끊어냈다. 굵은 피는 그 잘려나가는 소리가 적나라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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