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대포집 세째며느리

삶이란건 말이야...

황금횃대 2005. 3. 27. 14:50
한 달전에 대전 올 일이 있어서
황간에서 완행열차를 탔더랬지요

8시 30분에 출발하는 그 완행열차는 지금
통일호란 명칭이 되었지만 예전에는 비둘기호였습니다

마주보는 좌석이 반쯤, 그리고 가로로 길게 앉을 수 있는
좌석이 반쯤 있는, 그리고 냉방은 선풍기가 돌아가는 것으로
머리가 흩날리는 기차입니다

기차에 올라가 마주보는 의자에 앉았지요
만들어질 때 이미 마주보아 억지로 돌릴 수도 없는

나 혼자 앉아서 가는데 영동에서 68살이라는 할머니가 타시고
그리고 맞은 편에 그 분보다 한 살 적은 할머니가 타셨지요

의례껏 할머니들은 눈에 보이는 사물부터 묻고 가정사로 들어갑니다

한 할머니는 모시옷을 입으셨고,
한 할머니는 그냥 모시처럼 생긴 옷을 입으셨습니다

모시옷 할머니께서 맞은편 할머니께
"하이고, 그 가방 참 규모가 있게 잘 만들어졌네요"
"예, 며누리가 사다 준 건데 돈을 많이 주고 샀데요 십만원도 더 주고 샀데네요"

나는 흘깃 보았습니다
십만원이 넘는 가방을 저는 확인하고 싶었던거지요
아....닥스 마크가 있데요
그건 비싼거 맞지요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습니다

그런 이야기는 참말로 재미와는 별개의 이야기지만 할머니들은
진지하기 이를데가 없습니다

67살인 할머니가 머리가 하얗더군요
맞은편 할머니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머리를 염색을 하시면 훨씬 젊어 보이실텐데...하고
그랬더니 머리카락 하얀 할머니가 이렇게 말씀을 하셨어요
지금부터는 그냥 숨도 안쉬고 쓸게요


"내가 젊어서 재취로 들어갔어요 울 영감님이 나보다 연세가 열두살이 많아요 젊어서는 내가 미장원을 해서 맨날 다듬고 살다보니 내 나이만큼 얼굴을 보지 않아요 그래서 누가 봐도 내가 첫부인이 아니라는걸 알지요 이젠 머리가 이렇게 하얗게 쇠고 나니 우리 영감님과 어딜가도 그런 의심을 하지 않데요 나는 그것이 좋아요 내가 머리카락을 검게 염색하여 젊게 보여서 무엇하겠어요 나는 영감님과 나란히 나이차이 별로 나지 않게 늙어가는 것이 좋아요 영감도 그런내가 편한가봐요"


나는 띵~~~~~머리 속이 울리는 소릴 듣습니다
삶이라는건 말이야....
혼자 중뿔나게 잘나고 잘생기고 똑똑한게 아니고
사랑하는 사람과 더불어 아름답게 동화되어 간다는거..

나는
몇백권의 책을 읽어서도 알아내지 못할 삶이란걸
그 완행열차 의자에서 그 할머니의 단순한 몇마디에 느꼈습니다

그 할머니께서 철학이니, 시니, 문학이니, 과학이니...이런 것들을
다 읽거나 공부해서 그걸 알았겠습니까?

"하얗게 쇠어도 같이 늙는거 나는 그게 좋습디다.."하던 그 한마디

난 아마 오래오래 기억할 것입니다



'왕대포집 세째며느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죄송!  (0) 2005.03.30
옷 한 벌  (0) 2005.03.27
새벽 독서  (0) 2005.03.27
고물도 묻기 전에  (0) 2005.03.27
개떡같은 생각  (0) 2005.0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