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대포집 세째며느리

나 시집와서 6

황금횃대 2005. 5. 26. 17:35

논둑 깎기

 

 

 

우리는 논이 두다랑지 있었다

수리조합에 속해 있는 경지 정리가 된 논과 그렇지 않는 골

짝논..

둘다 일곱마지기씩 각 1400평 짜리인데 합하면 이천사백평

이 되니 음.. 부동산 재벌 소린 못 듣더래도 땅 한 평 없

는 도시 사람에 비하면 가히 땅부자인 셈이다

거기다 밭이 한 천 평쯤 되니 도합 삼천 사백평이다


골짝 논으로 말하자면 경지 정리가 되지 않아 조그만 다랑

지가 열 한개나 다닥다닥 붙어 있는 그야말로 층층계단 논

이였다

논 둑을 깎으려면 도시락을 싸 가지고 남편과 내가 자장구

를 타고 일찍 길을 나섰다


산 중에 있는 논이라 자장구 삐그덕 거리는 소리 외엔 전

혀 기계음이 없는데

털털거리는 농로를 자장구 끌고 가다 보면 다람쥐가 쪼르

르 달려가는 골짝이다

그만큼 조용하고 한갓진 풍경이다


논둑을 깎으면 그야말로 그 사람의 개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나는 낫질도 서툴거니와 일의 요령도 몰라서 논둑 서너개

깍으면 낫의 이가 빠져서 나중엔 얼마나 힘이 드는지 모른




남편은 그 승질대로 논둑에 앉아서 이를 잡았다

남편이 깎고 일어 선 논둑은 정말로 깨끗하고 뒷손 볼 것

이 없었다

반면 나는 처삼촌 벌초하듯 풀대가리만 대충 날린 꼴이다

그러면서도 왜 낫의 이빨은 그리 빠지는지..(일도 못하면

서 낫 날만 다 조져놓는다는 잔소릴 듣는다…)


껍데기가 터실터실 오랜 된 미루나무 그늘에 앉아 점심을

먹는다

점심 먹으며 웃다 보면 옆에 껴앉은 햇살도 자글랑자글랑

소릴 내며 같이 웃는다



산꿩 희롱하는 소리가 앉은 바닥 바로 옆에서 들린다

바람에 미루나무 잎새가 와사삭 소릴내고, 농로 옆을 끼고

도는 봇도랑 물도 그 섞임의 소리가 분주하다

남편이 한 대 피우는 담배 연기도 바깥에서 보면 여유롭다



열 한개의 논둑을 다 깎으면 허리는 끊어질 듯 아프다

그러나 말끔한 논둑을 석양 아래 쓰윽 훑어 보는 일은 생각

만 해도 서늘한 풍경이다



어둑어둑 해거름이 내리면 자장구 뒤에 타고 집으로 온다


이젠 정말로 아득한 풍경이지만 남편 뒤에 자장구 타고 오

는 모습은 한편 영화 속에 나오는 풍경과 손톱만치도 다를

바가 없다


그렇게 영화를 찍던 시절은 이제 다 지나가고, 그 논은 포

도밭이 되었고 남편은 그 논과 결별을 하였다



포도밭에 마지막 농약을 치고 오면서.. 이젠 내년이나 되어

야 다시 돌아 볼 그 골짝논을 고개 돌려 자꾸 쳐다본다


혹….그 때 그 모습…

자장구 타고 남편과 되돌아 오던 모습이 뒤따라 올 것 같아

서….

 

 

 

 

200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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