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대포집 세째며느리

사랑의 몸살, 흔적들...

황금횃대 2005. 8. 13. 08:40



 

 

 

사랑 1.


너는 내게,
잔을 준비하란다
지난 날에 하지 못한 한 잔의 술을
이번에는 기어이 따루어
한 고비 넘어가는 징표로 삼고 싶다고...


너는 내게,
시간을 준비하란다
등 기대어 쏟아 놓지 못한 말들을
이번에는 기어이 퍼내어
깊은 한숨의 끄나풀을 떼어낸다고...


너는 내게,
준비 하란다
대숲에 비바람으로 왔다가는 사랑보다
잔잔한 물 가에 다리 긴 새 한마리
앉았다 날아 가는 몸짓으로.


너는
내게,
사랑을 준비하란다.





사랑 2.


새벽에 이렇게 자주 깨게되니 의심하지 않을 수 없군 왜 다시 잠들지 못하냐면 살아온 날들로하여 숱한 잡념이 많아지거든 그래서 늙음 운운하는 거 알지? 방 안서 느끼는 이겨울 새벽은 참 신선하다 창틀사이로 도저히 참다참다 못참고 비집고 들어와 부르르 몸을 떠는 칼바람들로하여 나의 군더더기들이 모두 베어져 나가는 것 같아.


옛사랑은 십년의 세월을 건너 뛰어도 금방 밭에서 뽑아낸 애기배추처럼 신선하다 만지면 똑하고 부러지는 연두빛 배춧닢처럼 여리고 여려서 조심을 하지만 만질 때마다 그건 부러지길 쉬이한다 아무리 고웁게 흐르는 물에 씻어도 처음색보다 짙어서 -뭉개지기 시작하는- 물이 흐르는 줄기는 드뎌 질겨지기 까지 한다 참 질기고나..


사랑은 번호만 달리할 뿐....늘....'사랑'이란 이름으로 내게 온다
어제 찾아가 열어본 코발트빛 비밀구좌엔 여전한 내 '사랑'들이 꼬리에 번호표를 달고 얌전히....물주름만 만들면서 그렇게 있었다





사랑 3.



바다가 있는 땅에는
가을이 어떻게 와서 어디로 빠져 나가는지 몰라 나는.

낙엽이 달리는 나무가 자라지 않는 바다는,
늘 파란빛인가, 아니 아니 아니 아니 아니 아니
아니 아니 아니 아니 아니 아니 아니 아니 아니
아니 바다의 가을은 그렇지 않을지도 몰라

바다도….꿍꿍 某種의 앓는 소릴 낼거야



속의 오징어 발이
파충류의 다리 같다는 느낌이 나무젓가락을 거쳐
목, 뒷덜미, 대뇌로 찌르르 전해 왔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꿀꺽 먹는다

오늘은 날씨가 저녁 굶은 모모씨 얼굴 처럼
새초롬하니 춥다
태양은 시계 돌아가는 방향으로
비례하여 뱅글뱅글 돌아가고
맞추어 시간도 꽁지바리를 붙잡고
뱅.글.뱅.글 돌아가고 있다

수요일 오후엔
먼데서 온 편지를 읽으며
속눈썹 위에 얹히는 햇살을
느껴도 좋을 듯 하이

내 방머리엔 책보만한 햇살이 闖入(틈입)하고
그대의 방안에도 이 크기에서 한치 減함이 없는
햇살이 살며시 들어앉아 주길 바라면서

그대
당신이 내게 해준 특별한 배려를
나는 저고리 앞섶에 고이 여미어 놓네

늘..
사랑하이..




사랑 4.



오분을 남겨두고
가라앉는 마음덩어리에 줄을 꿰어
어깨에 짊어졌다

그냥 생겨나는 생각의 뭉터기는 이제
빨래감 뭉치듯 둘둘 말아 책상 서랍 속에
넣어 놓는다

잠바 뒷자락으로 삐져 나오는
와이셔츠의 돌출처럼
나도 오늘은 출입문 밖으로
저….차들이 왕왕 바람을 일으키는
신작로로 돌출할란다

역시,
수고 없이도 충분히 받을 수 있는
절망은 결석없이 종류별로 내 옷자락에 달라붙어
나는
자식을 손을 잡고 친정에 가듯
절망을 주섬주섬 챙겨서
길을 나선다

저기..
내 사랑이 있다
아니다
사랑은 내 안에 있다

무엇이 다르랴
저기에 있든,
내 안에 있든….

사랑은 내가 소리쳐 외치지 않아도 늘 그 자리에 있다

 





사랑 5.



깊은 가을 허리춤께서 길어 올린
바람이 불고 있다

가슴에는
쇠깎는 소리가 난다
선반의 바이트가
쇠를 깎아 낼 때의 그 아득한 소리

아픈가?
아프나?
하나는 바람이 내게 묻는 것
또 하나는 내가 나에게 묻는 것

-이것을 보더라도 나는 나에게 호의적이다-

‘아프나….’
나는 나에게 이렇게 다정스런 안부를 건네며
가을을 맞고 있다

“항개도 안 아프다.”
나는 나에게 씩씩하게 대답을 하지만
이미 가슴은 多空症 환자의 모양이다

좀 더 씩씩해져야 한다

“아프낫!!!”
“항 개도 안아픕니덥!”

이만하면 씩씩한 걸까?

음…….




사랑 6.



하룻밤을 호되게 보내고 나면
배경이야 매 일반이라도
느낌이 반 자(尺)씩이나 달라진다는걸
당신은 알고 있소?

하늘이 가라앉아서
가슴 높이께 도착하니
서서히 심장에 압박이 오는구만

숨쉬는 속도야 매 일반이라도
그대가 진하게 술을 마신 그 뒷날처럼
가슴이 갑갑하오

실패작표 포도주를 따뤄
서너 잔 털어 넣으니
진홍의 그림자가 피톨 속으로 파고드누만

몸통을 굵고 넓어서
실패작표가 피부 전반을 물 들이지는 못해도
내 기어이 갑갑한 가슴을 부풀려
발가락의 무좀균까지 붉게
물 들일 참이요

聚簾(취렴)을 걷어라 (취렴:푸른 대나무발)
翠菊(취국) 핀 풍경사이로 (취국:과꽃)
醉게 마시고
醉仙의 경지에 오르리라

아….정말 한 잔 했으면 좋겠다.







사랑 7.




한걸음에너는달려왔다
무수히잔금으로흐릿해진안경을닦아주며너는울었다
괘안타했지만가슴에아픔이적나나하게드러난다

나는본다

폭우로쏟아져길가로타고내리는저물살의빠르기를
강타하는빗줄기힘에어쩔수없이흔들리는잎새의몸짓을
열광하는숲의소리를
도로를질주하는버스바퀴의RPM을
산허리에힛뿌연히갖힌안개를


너의눈물로닦여진안경을통해서본다



사랑 8.



“누구냐?”
하고 내다본 마당에는
보도블럭 닮은 꼴의 누우런 편지 한 통

손끝에 가늠하는 느낌이 어찌 떨림없는 가슴이갔소?
먼 빛 하늘은 하냥 고웁네.. 쳐다보올적 마다 그니는 뼘가웃씩 새록새록 높아지는데.

당신이 보내온 샐비어는 태양만큼 붉게 타고
나는 아침 변소길 나들이에 그 꽃의 꿀종지를 쪽쪽 빨아 먹으니..종내엔 종자 하나 생산치 못나는 슬픔이 아득아득 몰려 올지라도…
샐비어는 우리 아버지 소유의 앞 뜨락에 그렇게 피고지니..



<꽃싸움>

당신은 두견화를 심으실 때에 “꽃이 피거든 꽃싸움하자”고
나에게 말하였습니다. 꽃은 피어서 시들어 가는데 당신은
옛맹세를 잊으시고 아니 오십니까

나는 한 손에 붉은 꽃수염을 가지고 한 손에 흰 꽃수염을
가지고 꽃싸움을 하여서 이기는 것은 당신이라 하고
지는 것은 내가 됩니다. 그러나 정말로 당신을 만나서
꽃싸움을 하게 되면 나는 붉은 꽃수염을 가지고 당신은
흰 꽃수염을 가지게 합니다
그러면 당신은 나에게 번번이 지십니다
그것은 내가 이기기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나에게 지기를 기뻐하는 까닭입니다.
번번이 이긴 나는 당신에게 우승의 상을 달라고 조르겠습니다
그러면 당신은 빙긋이 웃으며 나의 뺨에 입맞추겠습니다

꽃은 피어서 시들어 가는데 당신은 옛맹세를 잊으시고 아니오십니까

<한용운>



요런 애절스런 여인의 사랑은 눈가에 바람기만 줄이면 배울 수 있으련만..
바람기는 ‘EYE OF A TYPHOON’처럼 據點만 확보되면 가차없이 불어 오는…
그러나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로, 캐사르이 것은 캐사르에게로..
女人의 사랑도 그리될 줄 믿으며..

오후 네시의 방안에는 식곤증만 네모진 방모서리를 强打할 뿐이요..

 






오호~~사랑의 몸살, 흔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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