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대구 친정엘 갔어요
사람들 만나느라 밤 열한시 반점이나 되어서 대문으로 들어갔더니 엄니 아부지는 주무시다가 일어나시네요. 아이구 순아 이 밤에 우째왔노
여불때기 터진 원피스자락을 휘날리며 눅눅한 바람을 묻혀 들어오는 딸을 밉게 안 보십니다.
대구에 도착은 낮에 했는데 곧바로 집으로 안 가고 사람을 만났더랬어요
칼국수를 먹고 있는데 엄니 전화가 왔어요
"순아. 집에 아무도 없고 심심해서 니한테 전화해 본다"
"엄마, 내 보고싶재애~"
'으흐흐..그래 보고 싶어서 전화 안 했나"
"그라면 내도 엄마보러 곧 갈게 기댈리요"
말을 이렇게 하며 전화를 끊고는 집에는 훨 늦게 들어갔재요
남산동 도루묵집에서 냉막걸리에
칼국수 집에서 소주 시병에 맥주 두병까지
대애충 시중에 떠도는 술은 다 몇 잔씩 걸치고는 집에 갔더니 열이 확확 나요
늦은 시간이라 씻고 자기 바빴는데 다음 날 아침에는 말짱하게 일찍 일어났어요
수성못 근방으로 이사를 온 후로 엄마 집에 오면 아침에 늘 엄마랑 손잡고 수성못으로 산책을 가요. 엄마와 나는 삼십년도 더 전부터 들어온 엄마의 숏다리 이야기와 엄마는 키가 작아도 딸과 아들은 키가 커서 다행이라는 이야기와 아버지 이야기를 합니다.
운동을 나온 많은 사람들과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못 주변을 한 바퀴 돌았어요
옛날 범어동 살 때, 범어동에서 수성못까지 봄날에는 쑥을 뜯어러 갔어요
대바구니 옆구리 끼고 작은 동강칼 하나 징기고 쑥 뜯으러 들판을 들판을 야곰야곰 걸었지요
그 땐 그 들판이 다 농새짓는 논이고 밭이였어요
황금동의 옛 이름은 황천동이였는데. 황천길..이라는 발음과 같아서 기분나쁘다고 동네이름을 황금동으로 바꾸고 그 뒤로 정말 귀신도 놀라게 황금의 땅으로 변했어요. 엄청나게 개발이 됐지요
쑥을 한나절 뜯으며 수성못 쪽으로 가다보면 어느 듯 못둑가에 도착해서 거기 올라가 아래로 내려다보면 들판이 훠언하니 다 보였재요. 제법 넓었어요. 그런 옛생각을 하며 엄마랑 한 걸음씩 옮깁니다. 그러다 엄마가 뜬금없이 나를 불러요
"순애이.."
"응..엄마"
"젊어서는 뭐든 다 이해가 되고 암시랑토 않았던 일들이 요즘은 점점 받아들이기가 힘들어"
"뭔일인데요"
"느그 아부지 말이다..옛날 일 댕길 때는 한달이고 두달이고 집 비워도 뭐 하는가 의심도 없고 아모 걱정이 없던데 요샌 안 그래"
그러면서 엄마가 근래의 심경에 대해 얘길 하십니다.
아버지는 이제 일을 접으시고 동사무소에서 하는 공공근로를 한나절씩 하시는데 거기서 같이 일 나온 나이드신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술도 한 잔 하시고, 오토바이를 타고 가시니까 일 마치고 올 땐 같은 방향의 할머니를 뒤에 태워주기도 한 모양입니다. 아버지는 별 뜻없이 그냥 가는 방향이니까 같이 타고 온 것뿐인데 엄마의 심사는 그것이 보기 싫었던게지요. 그러지 말라고, 혹시라도 태워 오다가 사고가 나면 그 원망을 어찌 들을거냐고 지청구를 했어요. 그런데도 아부지가 벨로 그걸 귀담아 듣지 않으시고, 할머니들과 어울려 술 한 잔씩 하시는것도 공연히 보기 싫은거라. 며칠 전에는 엄마가 아부지한테 나랑 술 한잔 하자고 상을 차렸는데 아버지가 싫다면서 안 드셨던 모양이예요. 그러니 엄마의 틀어진 심사가 폭발을 해서 술병이며 숟가락통을 식탁에서 화악 쓸어던졌던가봐요. 아...옛날 울 엄마였다면 감히 상상도 못할 일입니다
엄마의 신혼 초,
아버지가 승질이 디게 급하셨어요. 그래서 포기 김치를 잘라서 밥상에 올리면 어쩌다 김치쪽이 싹 안 잘리고 지그재그로 딸려 올라오는 수가 있지요? 그럼 울 아버지 제대로 안 했다고 밥상을 문 밖으로 던졌답니다. 새댁 울 엄마가 그런걸로 마음고생을 어찌나 많이 했을까 짐작이 되고도 남지요. 그런 엄마가 스스로 닫힌 마음의 공간으로 인해 폭발을 한 것이라요. 그 얘길 듣는 순간 나는 또 어찌나 마음이 아프던지. 평생을 가난한 살림 꾸리느라 뭣이든 엄마를 위해 하는 것이라고는 없었지요. 지금도 아버지 간식이라던지 식사를 챙기는걸 보면 참 지극정성인데, 아버지는 다른 할매하고 술을 드시니까 좀 속이 상했던 모양이에요. 그나저나 큰일 났지요. 울 아버지를 자꾸 엄마가 볶아싸면 안 되는데.
그러니까...12년 전쯤에 엄마가 뇌출혈로 입원하셔서 뇌수술을 하셨재요. 큰 동생 결혼하고 한달보름쯤 되었나..그 때 쓰러져 뇌수술을 하고 그 뒤 이년 뒤에 살짝 한 번 더 뇌에 타격이 왔어요. 그래도 치료를 잘해서 별로 생활에는 아무 지장이 없는데 그 밝던 셈본이 좀 흐려지고, 말이 좀 어눌해졌어요. 말과 셈이 마음에는 번한데 실제로는 자꾸 헛으로 나오니까 짜증이나고 서글프기도 했지요, 퇴원해서 회복하고 난 뒤에도 성격이 얼마나 과격해졌는지 아버지든 아이들이든 보면 싸울라해서 한 동안 애를 먹었어요. 고생해서 식구들 먹여살렸는데 니들은 내가 이렇게 아프고 신세가 처량한데 그것도 못 받아 주나..하면서 마구 식구들에게 송곳을 들이댔어요. 나는 시집 간 후라 직접 부딪히진 않았는데 명절 때나 어쩌다 친정가서 그런 엄마의 모습을 보고 내가 얼마나 충격을 먹었던지...새로 온 올케와 큰 동생이 참 고생이 많구나 싶어서 황간 집으로 돌아와 그 날 밤 엄마생각에 동생생각, 올케 생각으로 멀끄댕이를 혼자 쥐뜯다가 밤중에 동생한테 전화해서 이야기를 하는데 얼마나 눈물이 나던지..
엄마의 공격성향을 아버지나 식구들, 동생들이 다 잘 참으며 무조건 엄마편을 들어서 다 들어줬어요. 흔연히 알아서 할 일도 엄마의 지적이 있으면 그 말에 고물 묻을세라 첩보원같이 움직였어요. 아버지도 그 성질 다 죽이시고, 없는 사람이 핫바지가 두 벌생기면 죽는다더니 니 엄마가 그렇다. 이제 고생도 없고 잘 살믄 되는데 저렇게 몸이 불편하게 되었다'하며 엄마를 용알같이 받들고 엄마의 투정을 다 받아주셨지요. 그래서 울 엄마 용알대접을 받고서부터 서서히 좋아지셔서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으십니다. 그러나, 아침에 일어나 스트레칭을 하며 염주를 부지런히 굴리고 계서도 옛날 옛적 마음에 묻어 앙금으로 쌓인 것들을 죄 풀지는 못하셨나봐요. 어이구 울 아버지 큰일 났습니다. 새삼 마누래 시집을 살게 되었으니...
집 근방까지 다 와 갑니다.
"엄마... 옛 일은 다 잊으세요. 그라고 문화센타나 아님 노래 배우는데 그런데 가서 엄마가 몰입해서 할 수 있는 일을 한가지 배우세요. 엄마가 뭘 못하더라...노래, 그래 노래 배우면 되겠네요"
"새삼 어디 나간다는 것도 그렇고 종일 티비보고 집 안에서만 있으래니 아닌게 아니라 답답하고 솔갑증이 나네 그래도 귀찮아..."
엄마 생각
새벽 단칸방,
우풍이 자리끼 물사발에 엷은 살얼음으로 앉은 새벽
눈을 뜨면
두사람이 모자랐다
어젯밤부터 계속 오지 않았던 아버지
그리고 새벽 댓바람에 버선발로 찾아 나선 엄마
졸래리 누운 빨간
엑스랑 내복바람의 남동생 셋은 세상 모르고 자고 있다
머리맡 요강은 다섯식구의 온기를 잠깐잠깐 간직하고 밤새워 식어있고
돌아올 것임을
알면서도 아부지, 엄니없는 방은 썰렁하기 그지없다
그 암담함이란..
미닫이 낡은 창호문짝을 밀어 부치며 쪽마루에 한 발 내
딛이면 그 모든
설움이 물러갔다
힛뿌연히 밝아 오는 아침 앞에 어둠이 물러가듯 그렇게 암담과 설움이
한꺼번에 수채구멍 속으로
사라졌다
팍팍 쌀을 씻어 양은솥에 밥을 앉혀 연탄불 위에 얹어 놓으면
뿌연 쌀뜨물이 허적허적 흘러간 부엌 바닥에 눈물자욱
길이 생겼다
조선의 어느 노름방에 있어도 아버지 찾아 내오던 엄마의 거친 숨소리가
한쪽 찌우뚱 내려 앉은 삽짝에 소란스레
듣긴다
끓기 시작한 밥을 연탄집게로 돋우어 얹어 놓고
매캐한 연탄가스가 맹렬히 뿜어져 나오는 좁은 부엌에 쪼글시고
앉아
뜸을 들였다
시름이든, 밥이든, 슬픔이든, 배고픔이든, 무엇이든 그릇에 퍼 올망졸망 둥근 밥상에 앉아 같이 먹던 시간들
달가닥 거리며 긁어대던 밥그릇 밑바닥에 눈물이 고였어도 끝까지 보듬은 팔을 풀지 않았던 엄니
이학년 동생은 피오줌을 누었다
퉁퉁부은 몸은 아침에 눈이 보이지 않았고, 곽병원 양약에다 신장염에
좋다는 옥수수 수염 삶은 물이 자주 밥상 우에 얹혔다
철없는 동생은 맹탕의 반찬을 도리질하며 밀어 내었고, 자식의 오줌을
받아들고 혼자서 엄니는 핏물의 농도를 살폈다
그런 날에도
아버지는 낯선 방구들에서 화툿장에 인생을 걸었다
오랜만에 전화를 하니..그 단단하니 초겨울에도 반팔입고 다니시던
엄니가
감기에 걸려 목소리가 맹랑치도 않다
문득, 그 새벽 삽짝 밀치며 들어서던 서슬 푸른 엄니 목소리가 그립다
잘 살아 볼라고, 자슥새끼들 밥 안 굶길라고 밤잠을 안자고 일을 하고 그러더만...이제 엄마는 생의 치열한 전투를 접고 마음의 허허로움과 싸우고 있네요. 엄마 손을 다시 꼭 잡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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