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참말로 오랜만에 만년필로 글자를 써 보내요
옛날 글씨체가 나옵니다
중학교 들어갔을 때 잉크라는 걸 알게 되었지요
펜촉을 사서 볼펜 꽁지에 착, 끼우고 책상 우에다가 잉크를 얹어놓고 펜촉에 잉크를 찍어가며 필기를 했으니까요. 요즘 아이들에게 잉크며 펜촉, 이런거 얘기하면 분명 갸우뚱하며 "그게 뭔데?"하고 되물을게 뻔합니다.
책상 위에 잉크 뚜껑을 제대로 닫지 않고 놓아 두었다가 앞자리 안은 애가 걸상을 움지럭하면 작은 잉크병은 제 몸을 한번 풀썩인다는게 그만 동그란 아가리로 잉크를 울컥 토하기도 하지요. 그러면 최소 내 책을 덮치는 사고에서 최대 앞자리 아이의 뽀오얀 교복에 잉크물이 튀는 불상사까지 치뤄냈습죠
쉬는 시간이 되어서야 뒤에 앉은 나도, 앞에 앉은 피해자도 맘놓고 잉크의 범죄에 대한 재구성을 하면서 입씨름을 하였는데, 대개 뭐한 놈이 썽낸다고, 니가 궁딩이를 너무 흔들어서 그래됐으니 니가 원인이야하면, 그 아이는 교복도 그리됐는데 사과는 커녕 뒤집어 씌울라고 한다면서 잉크병뚜껑이나 제대로 닫았으면 이런일 없지않느냐고 핏대를 세웠죠
그렇게 싸우고 화해하고 같이 교복빨러 수돗간으로 손잡고 향하던. 뭐라 걸구칠거없고, 마음에 맺을게 없는 시절이였습니다.
손가락 끝에는 늘 잉크물이 번져서 시퍼리둥둥한 손끝으로 종일 침발라 책장을 넘기고 칠판의 하얀 분필 글씨를 옮겨 적느라 하루해가 섰다가 하루해가 지고 했습니다.
거기만 잉크물이 있는게 아니고, 하얀 하복 앞섶에도 언제나 희미한 잉크자욱이 옛사랑의 그림자처럼 남아 우리의 푸르디 푸른 청소년의 빛깔을 남겨 두었습죠
중학교 국어 숙제중 기억에 남는 것은 사전 찾아 낱말 스무개 혹은 서른개씩의 뜻풀이를 적어오는 숙제가 있었는데, 다른 작문이나 이런 숙제는 대충 장난으로 하고 넘으꺼 조사 몇개 바꾸고 줄바꾸기만 요란하게 해서 제출하곤 했는데, 낱말 숙제만은 성심성의껏 사전 찾아가면서 햇습니다
우리말의 오묘한 의미를 찾아가는게 좋아서 그랬던게 아니고, 오로지 낱말을 쓰고 화살표를 자를 긋고 그 옆에 낱말 풀이를 사전에서 배껴 적으며 한 페이지 분량의 숙제를 펜글씨로 하고 나면, 그렇게 가지런하고 보기 좋을 수가 없었어요. 나는 미학이네 뭐네 이런거 잘 모르는데 노트 필기를 가지런히, 또 내가 아는 점층의 기호를 써서 잘 해놓는게 일종 미학이였습니다.
그 버릇은 지금도 흔적기관처럼 남아 나는 가계부 정리를 예의 그 미학정신을 발휘하며 쓰기도 한답니다. 그렇게 삼년동안 펜글씨를 썼어요. 잉크 쏟아가며...물론 볼펜 글씨도 쓰긴 했지만 잉크로 써서 글자가 잉크물에 약간 종이가 풀어졌다가 다시 마르며 획주변의 종이를 살짝 끌어당기며 마를 때, 글자가 약간 도드라진 느낌을 주던, 그 눈에 띌까말까한 아름다움을 참말로 사랑했습니다.
지금도 컴퓨터 이메일로 편지쓰는 걸 꺼려하는 까닭도 도시 내 취향을 나타낼길 없는 똑 같은 글자체가 맘에 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살림은 대애충 사는 여편네가 택도 아니게 그런것은 좀 까탈시럽게 그럽니다.
이쯤 한 페이지 어지가이 다 되게 써 놓고는 만년필 뚜껑을 닫으면서 종이의 윗부분을 들어 내가 뭘 썼는지 다시 한번 찬찬히 읽어본다지요. 그런 느림의 시간이 좋아서 나는 굳이 이 방법을 고집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광주사는 박씨아자씨가 물매화를 머뜨러지게 찍으셨네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