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 동맹 상순이

아쿼마린

황금횃대 2004. 4. 12. 17:57
예전에도 아쿼마린이란 제목으로 사설을 늘어 놓은 적이 있다
아쿼마린은 아쿠아마린이라고도 하는데, 깊은 바다물색을 간직한
보석의 한 종류이다.
나는 보석이나 귀금속에는 털끝만큼의 욕심도 가지지 않는데
유독 이 아쿼마린이란 보석에 대해서는 흥미가 깊다
그래서 사이트를 뒤져 아쿼마린이란 보석에 대해 알아 보기도 하고
실제로 거제도 어느 귀금속상인이 올려놓은 반지의 샘플링을 보고는
못난 고서방과 푼수 여편네가 한나씩 거 뭐나 커플링으로 해서 찌고
댕기면 없던 폼도 나지 않을까 심각하게 생각한 적도 있고, 그 상점에
메일을 넣어 아쿼마린이 조그맣게 박힌 커플링의 실제 가격을 견적
받아 보기도 하였다.


내가 아쿼마린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동기라는 건 별것 아니다.
어느날 일곱개의 모자로 남은 남자? 라는 박완서씨의 소설책을
옆구리에 끼고 방앗간에 나락을 찧으러 갔는데, 나락의 피댓줄이
돌아가며 등겨가루를 사방천지에 날릴 때 나는 그 거미줄 치렁치렁한
처마 밑에 앉아 이 소설을 읽고 있었던게다. 거기에서 단편의 주인공
여자가 친구로 만난 교수의 손가락에 제법 큰 아쿼마린 반지가 끼여있었다
라는 표현을 읽은 것 뿐인데, 어느 순간 아쿼마린은 내게 소녀적 백마 탄
왕자 컴플렉스처럼 가심에 벡혀 버렸던 것이다.


그래,
언젠가 내게 고서방말고 사랑이란 이름으로 다가올 또 다른 남자가 있다면
아마 그의 손가락에는 깊은 바닷색 아쿼마린 반지를 낀 사람이 아닐까 하는.
허황되기로 친다면 이것보다 더 값싼 허황이 없건만, 그 때 속내 한 가운데는
아쿼마린에 대한 열정이 가득했으므로 그것이 결코 황당무계한 일로 생각
되지를 않았다.


얼마전, 아는 언니가 가입해 달라고 카페를 소개한 적이 있어 거기에 가입을했다
4,50대 아줌마 아저씨들이 일상을 편하게 누리는 공간이라 나도 뭐 날리는 이빨로
가끔 주접을 떨기도 했는데, 거기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프르에 계시는 분이 간혹
꼬리글을 달아주셨다. 어느날 카페온 창으로 연결이 되어 이런 저런 이갸기를
나누다가 그니가 지금 서울이며 내일 부산 본집으로 간다는 이야기를 한다
얼래? 나는 내일 인천가는구만..그럼 한번 뵐까요? 서울에서
이렇게 이야기는 급진전되어 약속을 하고 다음날 인천으로 갔다
황간에서 인천 송도까지는 솔찮게 먼 거리여서 아침나절 나선 걸음이 점심때가
되어서 간신히 예식장에 도착을 하였고, 밥 한 끼 먹고는 아는 언니를 만나
차 한잔하고 서울로 향했다.
두번인가 전철을 갈아타고 고속버스터미널에 도착했을 때는 약속시간보다 두어시간이 훌쩍 지났었다.


미안하고 첨 보는 사람에게 결례가 이만저만이 아닌데 경부선 매표소 앞에 자리에 앉아 있다고 말하면서 보면 금방 알거라고 한다.
헐레벌떡 전철역에서 내려 매표소 앞에 가서 두리번 거렸는데 단번에 그를 알아 볼 수 있었다. 그는 새파란 아쿼마린의 잠바를 입고 열이면 열 사람이 모두 헐레벌떠 시간에 �겨 움직이는 눈동자를 보여주는데 그만이 고개를 아쿼마린 속에 푸욱 묻고는 팔짱을 끼고 앉아 있었던거다.


사이버에서의 호기심이란 별거 아니다.
저 인간이 뱉어놓은 글과 생김새와 꼬라지가 대충 맞아 떨어지는가 아니면 영판 딴 배경과 포옴으로 돌아댕기는가 하는 확인의 과정이다.

차 한 잔 하면서 쿠알라의 이야기를 듣고 나는 뭐 집구석 이야기나 하고 그렇게 헤어졌지만, 속으로 내 병도 참 깊구나...생각하였다


세상에나! 아쿠아마린 반지랑 잠바랑 뭔 상관이 있다는거야?




살아가면서 생은 이렇게 심심찮은 반전을 주기도 한다.




상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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