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대포집 세째며느리

나무가 전하는 말

황금횃대 2004. 4. 19. 22:54
나무가 전하는 말



이백년이 넘은 집터에 사는 나는 참말로 부자다.
집이야 십 수년 전에 벽돌로 새로 지었어도, 아래채 흙 집은 비가 오면 골골이 빗물이 타고 내리는 낙숫물을 볼 수가 있고, 맞은 편에는 언제 매달려 있었는지 기억조차 까마득한 하늘수박 덤불과 열매가 껍데기만 남아 걸려 있는 아래채를 또 한 칸 지녔으니, 도시에 방 한 칸 징기고 살기 힘든 사람에 비하면 얼마나 부자인가.

그런 쓰러져가는 삼간에 마당조차 착착 다져진 황토 마당으로 방금 빗자루로 쓴 듯이 환하였으면 좀 좋으련만, 요즘 시절이 시절인지라 마당은 시멘트로 포장이 되었으니 세상일이 어디 물 좋고, 정자 좋을 수가 있으랴.

그렇지만 우리집 뒤 안은 빽 둘러쳐진 나무들이 있어 자랑을 아니 할 수가 없다.
도시의 세련된 정원처럼 말끔하게 다듬고 가위질 된 나무들이 아니라, 오로지 자연이 주는 생명을 곧이 곧대로 받아 들여, 제 숨통 가 닿는 곳으로 뻗어 나간 소박하고 건강한 나무들이다.

이렇게 나무 자랑을 하면, 비틀어진 나무 한 그루 박아 놓을 데가 없는 도시 사람들은
“흥, 까짓 거 몇 푼이나 된다고 자랑이냐”고 타박할 지 모르지만, 원래 촌 살림이란 것이
앞 논, 골짝 밭 다 팔고, 그 비싸다는 황소에 암소 두어 마리까지 팔아 치워도 도시 사람 안방에 들어 앉은 값어치만 못하다는 거 알고는 있지만, 그것들은 닭장 같은 집 안에 똑 같은 모양으로 들어박혀 있는거라, 어찌 우리집 뒤 안에 둘러 쳐진 이쁜 나무들과 비교를 하겠는가.


옛날 우리 집 앞에는 아름드리 대추나무가 두 그루 있어서 동네에서 우리집을 부를 때는
‘대추나무 집’이라 했다, 지금도 여전히 어머님은 대추나무집 할무이요 나는 대추나무집 며느리로 불려진다. 그 오래된 나무가 집을 새로 지으면서 저사리가 피는 바람에 베어지고 우리는 이름만 남게 되었으니, 대추나무는 사라졌지만 그 이름은 우리집이 계속 되는 한 불려질 것이다.

가을이면 나락 차곡차곡 쌓아 두는 나락창고 옆에는 오래 된 돌감나무가 있다

다른 감보다 돌감은 자잘한 것이 꼭 없는 집 나무팽이 깎아 놓은 것처럼 빼족하니 없어 보이는데, 체구가 작아서 그런가 가을 바람 스산히 불면 남 먼저 익어 푸른 하늘에 붉은 낯빛을 내 놓는다.
나락창고 지붕에 올라가 감 전지로 따서 입 안에 넣어보면, 꼴 보다는 맛이라고, 그 달콤한 맛이 혀 끝을 황홀하게 한다.


돌감나무 옆에는 느티나무가 있어, 굵기를 보거나 이 집의 역사를 보거나 백년은 족히 넘었으리라. 우리 시어머니께서 지금 여든 하나신데, 열 여덟 시집 올 때에도 저 만큼 컷다 하니 저 나무가 언제부터 우리집 마당 한 귀퉁이에 제 뿌리를 내렸는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한 번은 벼락을 맞아 작신 허리가 부러졌어도 세월 만큼 땅으로 내린 뿌리의 힘들이 어디로 가겠는가. 울울한 가지는 하늘을 향해 쉼 없는 가지 뻗기를 하여 봄이면 분봉하는 벌들의 높고 아늑한 기지가 되기도 한다.


어머님 꽃다운 새댁시절, 시할머니와 같이 캐와서 심었다던 석류나무.
그 나무는 육십년이 넘었겠지. 봄 날, 잘 익은 꽈리색 꽃을 피워 물었다가 가을에는 검버섯 잔뜩 핀 석류를 주렁주렁 매단다. 아무도 따는 이 없어 그대로 매달아 두면 저 혼자 벌었다가 사그러져 겨울 바람에 풍장이 된다.
“석류나무는 말이야, 캐온 사람이 죽으면 나무도 따라 죽는디야, 시어무이 돌아가셨을 때 저 나무도 시들시들 곧 죽을 것같이 꺼치름하더만, 같이 캐온 내가 살아서 그런가 다시 살아나 저렇게 열매를 맺네”

어머님이 들려주시는 석류의 전설은 공연히 애절하다.
봄이 완연해도 쉬이 잎을 틔우지 않는 석류를 애잔한 눈길로 가끔씩 바라보는 어머님의 마음을 먼빛으로 나는 본다.

석류와 어깨 동무를 하면서 감나무가 서너 그루 더 있고, 감은 얼마 달리지 않아도 그 잎만은 푸르고 무성하여 한 여름 깊은 그늘을 만들어 뒤 뜰에는 이끼식물이 잔디처럼 자란다.

못생긴 가죽나무는 봄이면 들쭉날쭉 붉은 새 순을 내밀고, 여린 잎을 따다가 장아찌도 만들고 찹쌀 부각도 만들어 밑반찬으로 쓰고, 가죽 나무 옆에는 골담초나무가 있어 담벼락 아래 노란 꽃들을 종처럼 매달고 쏟아 질 듯 고개를 숙이고 있다.
예전에는 먹을 것이 없어서 골담초 꽃을 가루에 묻혀 쪄 먹었다며 지금도 그 맛이 있을까 하고 어머님은 꽃이 피면 말씀을 하시지만, 세상이 변해서 입맛도 예전 입맛이 아니니 그 때만큼 맛있는게 어디 있을라구 당신 스스로 답을 내리시고.

내 시집 오던 해나 지금이나 나무 굵기가 여전히 회초리처럼 낭창낭창 몸 관리를 잘 하는데, 나는 나무만도 못하나 두 배나 굵어진 몸통이라니.

겨울이면 붉은 열매를 꽃처럼 피우는 사철나무와 노란 꽃이 피는 박하, 접 붙이려다 시기를 놓쳐버린 개암나무, 딸처럼 이쁜 앵두나무, 배 하나 매달지 못해도 사월이면 꽃을 피워 달밤에 배꽃 떨어지는 풍경이 아름다운.


그 울타리 안에 사는 사람들은 더러 큰 소리 내며 싸우기도 하고, 미워하기도 하며, 살림도 내동댕이치며 살지만, 나무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어깨를 겯고 해님이 걸어 가는 만큼 햇볕을 양보하고, 바람을 나누며, 다툼 없이 꽃이 피고 장꽝 아래 나뭇잎을 떨구며 조용히 살아간다.
나무가 사시사철 전하는 고요한 메시지를 몸으로 읽으며 나는 문득 서늘한 눈빛을 그들에게 던져 보기도 하고.




전상순

'왕대포집 세째며느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촌지 없이 자슥놈들 키우기  (0) 2004.04.19
서방 등 처먹고 사는 일  (0) 2004.04.19
모텔 '보리밭'  (0) 2004.04.19
짚 한 단  (0) 2004.04.19
전희에 대한 단상  (0) 2004.04.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