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니까 마음이 빗물에 푹 젖은 듯 무겁다
마치 마이너스 통장 잔고를 협박하는 세금고지서들의 낱장들처럼
들에 나가 볕 아래서 푸닥닥거리면 덜 무거운데
이렇게 죙일 창 밖으로 어수선히 오고가는 빗방울만 바라볼라치면
마음이 괜시리 납뎅이처럼 무거워지지
넘들한테 편지 쓸 때는 맨날천날 생기발랄 유쾌허시라고 빌고 빌지만
정작 내 마음은 젖은 나무를 끌어댕겨 불 지펴야 할 상황처럼 살짝 암담이여.
며칠 동안 쏟아붓더니 논둑도 두어군데 나갔다 그러지
올자두로 돈 좀해서 벼농사에 들어간 돈을 좀 메워볼랬는데 그것도 장마땜에 망쳤지
서방은 일 나가서 하루종일 버둥거려도 벌이가 신통찮다고 하지
딸년은 얼마간 약을 계속 먹어줘야한다지
나날이 가계부에 지출 내역을 적다보면 낙천의 극치를 달리는 나라도 실쩌기 걱정이 되는거라.
그래도 오늘은 오전에 햇볕이 쨍쨍나서
오가는 스님 머리 벗겨먹을 만큼 더웠는데
일찌감치 서둘러 세탁기 돌려 빨래를 햇님 아래 널었지
최고치로 뽀송뽀송 말랐을때, 손가락 끝에 그 까슬까슬한 면사들이 올올이 서 있는걸 느낄려구
얼른 걷어와서 귀잽이 맞춰 수건을 개고, 속옷을 개고 했네
그렇게 빨래를 차곡차곡 개다보니 빗방울이 또 후두둑거려.
오늘 하루 볼따구니가 미어지도록 참았던 빗방울을 와장창 뱉어내네
하루 일 중 젤 잘한 일이 그 타이밍에 빨래를 걷어 온 일이야
각자의 서랍 속으로 세탁물을 갖다 넣는다
딸아이, 아들놈, 서방 것, 내것, 어머님방....
살림이란, 이 복잡한 구분들을 터럭만큼의 의심도 없이 척척 구분해 놓고
그것들이 들어 앉을 서랍의 칸들과 그 칸 안에서도 세분되어 있는 구획 속에 차례로 넣어 주는 일.
그것을 살림이라 한다.
자두 딸 때는 상자 속에 일명 <다마사리>를 하며 자두를 넣는 서방 옆에 앉았노라면
밭구석 헤매며 자두 딴다고 돌아댕기는 피곤이 한꺼번에 몰려와
등때기 모기가 물어 뜯어도 꾸벅꾸벅 잠이 오더만
이렇게 비가 쏟아져 꼼짝도 못하고 방구석에 앉았으면
책도 손에 안 잡히고 티비를 틀어도 컴퓨터를 들여다봐도 답답하기만 하다.
잠을 청해 보지만 잠도 안 오고, 앉은 자리 누운 자리 기댄 자리가 하냥 불편하기만 하다.
뭘더 어째야하나...
(뭘더는 X-file 주인공이지만...ㅎㅎ)
저녁이 되고 아들놈이 비를 맞으며 헐레벌떡 문을 열고 들어오면 그제서야 활기가 돈다
물에 젖은 양말을 현관에서 벗어 던져놓는 아들놈에게 잔소리를 하고
실쩌기 배고픈 놈 뒤통수에다 고추잡채를 해줄까? 하고 넌즛 물어보기도 한다
물을게 뭐 있나 바로 해 주면 될것을
하루 죙일 눈물나게 심심했다는 티를 내 스스로 내고 있다.
늦은 밤
야자를 마친 딸이 들어서고
군부대 군바리들 외출 나온 일행을 다시 군부대까지 태워주고는 고스방이 퇴근을 하고
샤워하러갈 때 함부래 속옷 가지고 가라고 입이 닳도록 말해도
이날 입때까지 한번도 들어처먹질 않는 스방 안전에 속옷을 갖다 엥기며
하루..
그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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