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대포집 세째며느리

"미쳤다해도 나가야지"

황금횃대 2006. 7. 18. 15:44

울 아버님 올해 여든 다섯이시고, 울 시어머님 올해 여든 넷이라요

장마 전에 육실허게 더웠잖여. 영감님 덥다고 하고 헉헉 거리시니 엄니께서 모시 적삼을 드렸재요

시원하게 한 이틀 입으셨는데 고만 비가 내리니 또 춥다 하시네요

그래서 엄니 긴 팔 와이셔츠를 드리고는 날이 궂어 모시 적삼을 그냥 옷걸이에 걸어 행거에 걸어놨쥬

어제 아버님이 퇴근해서 들어오시더니 그 모시 적삼을 보고 하시는 말씀

 

"노는데 미쳐서 옷도 안 빨았네"

그러자 울 엄니 아버님 드실 물을 챙기시다 발끈 하셨세요

밥을 차려 놓고 살며시 어머님 방에 가서 무슨 일이냐고 여쭈었더니

"아이, 날더러 노는데 미쳐서 빨래도 안 했단다. 날이 궂어 빨 수도 없고 저건 빛이 나야 빨아서 풀을 먹여 말리는데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날 보고 노는데 미쳤단다"

말씀하시는 엄니 음성에 분노가 끓어 넘쳐 가히 원더풀하이타이수준이다.

 

엄니야 말로 시집오고 육십 오년간을 오로지 아버님 수발에만 매달리셨는데, 적삼 그거 바로 빨지 않았다고, 아버님 말씀하시는걸 분석해보면 가히 있던 情도 빼앗아 쓰레기 통에 처박아 넣고 싶은 심정일게다

 

아침에,

가만히 눈치를 보니 어머님 아침도 드시기 싫은 기색이시다

아버님 아침 드시러 식탁에 앉으셨는데 다른 때같으면 냉큼 나오셔서 내가 덜 내놓은 반찬이 있나

밥상 점검을 하시고, 아버님 잘 드시는 반찬은 옹기종기 아버님 앞으로 위치바꿈하시기 바쁠 텐데.

안 오셔서 방에 제차 어머님 진지드시라고 말씀드리니 그제야 "알았다"하고 대답하신다.

 

진지 드시는 도중에도 아모 아버님에 대한 배려가 없다

아버님도 말씀 한 마디 안 하시고 아침을 드신다.

아침 드시면 또 약을 드셔야하니, 어머님은 식사를 덜 마쳤어도 숟가락 걸쳐놓고 아버님 뒤 따라가

약을 챙겨드리고 다시 드시는데 오늘은 그러지도 않으신다. 어이구 엄니께서 단단히 화가 나셨군.

 

점심 때,

고스방이 먼저 와서 엄니, 나, 고스방 이렇게 서이서 점심을 먹고 마악 치우고 나니 어머님이 옷을 갈아 입으시고 회관에 나갈 준비를 하신다.

"노는데 미쳤다고 해도 나가야지"

톡 쏘시듯 내게 말씀을 하시고 현관 문을 여시는데

내가 하도 우스워서 아하하하하 하고 웃는 소리가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위잉? 차 엔진 소리가 나며 아버님차가 대문에 들어 선다.

'어이구 호랭이도 제 말을 하면 온다더니'

이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걸 꿀꺽 삼키고.

 

아흔 바라보는 나이라도 남편이 아내에게

혹은 아내가 남편에게 함부로 하는 말은 상처를 남긴다.

 

아버님, 옷을 안 빨아서 그자리에서 모시적삼이 몽창 삭아 없어지더라도 어머님한테 그런 말씀하시면 안 되지유

 

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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