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대포집 세째며느리

내 딸 같애서..

황금횃대 2006. 7. 19. 22:10

얼마전에 고스방이 핸드폰 바꿨다고 얘기했쥬.

위로 밀어 올리면 띠리링 소리가 경쾌하게 나고, 터치버튼이라나 아주 씨잘대기 없는 기능이 있는 것인데 생각보다 이게 배터리 소모량이 많아요

한 달정도 썼나? 그러는 동안 매일 배터리땜에 신경을 써요

밤새도록 충전을 시켜도 오후 서너시만 되면 배터리 막대기가 순식간에 사라진대나?

그런저런 이유를 들어서 대리점에 전화를 해 보더니 오늘 서비스 센터에 가지고 가서 고쳐오던지

아니면 배터리를 새걸로 바꿔오라고 얘길해요

아침 먹고 설거지 하고는 아홉시에 출발하는 대전행 버스를 타고 서비스 센터까지 갑니다.

13번 순번을 받아 놓고 기다리고 나중에 순서가 되서 담당수리원에게 가니 아가씨래요

얌전하니 생긴 아가씨가 핸드폰 수리를 한다고 합니다.

여태 핸드폰 서비스를 받아도 아가씨한테 받기는 첨이예요

조근조근 설명을 잘 해줍니다. 나는 잘 모르니까 그냥 알아서 고쳐주세요 하고는 기다렸쥬

한 삼십분 뒤에 배터리가 잘 안 닳아지게 업그래이드를 하면 된다고 하면서 해줘요

그러면서 터치버튼이 잘 안 되는게 있어 그것도 바꿔 놨다구

충전기만 새로 하나 사서는 아가씨의 배웅을 받으며 터미널로 와서는 황간오는 시외버스를 탔어요

한참 가는데 전화가 오는데 아, 이 일을 어쩌면 좋아 벨소리가 전혀 울리지 않는 것입니다

발신번호는 뜨기에 전화를 받으면 전화도 먹통.

서비스 영수증 꺼내서 아가씨에게 전화를 하니까 전화기를 봐야한다네요

아침에 버스 타고 대전 갈 때도 멀쩡하게 잘 울리고 통화가 잘 된게 왜 이러냐고

고스방은 빨리 고쳐서 가져오라고 수십번도 내 전화기에다 전화를 해대지

등때기 식은땀이 화악 나요

가다가 금강휴게소에 좀 내려달라고 해서 건너편으로 걸어가서 지나가는 차를 잡아서 대전을 다시 가야하는데 그게 말처럼 쉽냐는 것이지요

마침 휴게소에서 쉬었다 나가는 화물차를 사정을 이야기하고 얻어 탔는데 복이 까짓껏인가 옥천 휴게소까지 밖에 안 간다네요

할 수 없이 옥천휴게소까지 타고 가서는 다시 그 휴게소에서 쉬고 대전쪽으로 가는 차를 물색해봅니다.

 길목에서 어슬렁거리며 차마다 눈치를 보고 있는데 용달화물차가 서면서 창문을 내려줘요

그래서 대전가시는 길이냐며 물어보니 대전나들목이 아니고 판암쪽으로 간다네요

안영 나들목에서 내려줄테니 거기서 시내로 들어가라구

그래서 아저씨의 이야기를 들으며 가는데 목구멍에서 쓴내가 확확 올라와요

점심도 안 먹었지 마음은 숯처럼 타 들어가지, 고스방은 내가 핸드폰 상황을 설명하며 다시 고치러 간다니 불딱지같이 화를 내며 씨팔조팔하지. 어이구 사람 마음이 한 순간 지옥의 한가운데를 지나갑니다. 나를 태워준 그 아저씨는 익산 방면으로 가신다며 나를 내려주고는 가십니다. 참 고마왔지요

 

고속도로에서 나들목까지 구두신고 얼마나 들고 뛰었는지...근데 요새는 나들목이 한참 돌아서 나가게 되어있잖아요. 그거 다 걸어 나갈래니 한숨이 나오는기라. 그래서 밭둑을 가로질로 가는데 비가 와서 밭둑은 물컹물컹 발이 빠져서 흙디비기가 되었지. 버스를 타니 오십분은 가야한다지...그래도 마음을 진정시킬라고 버스를 타고는 앉았는데 참 몰골이 희안했어요. 요새 신발이며 발에 흙묻히고 돌아댕기는 사람이 어딧다고..거의 새벽녁에 출몰한 무장간첩같앴어요. 왜 그리 서글픈 생각이 드는지..

아침에 돈도 조금 밖에 안 들고 나가서 택시를 타면 또 집에 갈 차비도 없을 것 같고

 

버스 타고 오다가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서 안되겠다 싶어 내려서는 택시를 타고 서비스센터에 도착하니 네시가 다 됐네요

아가씨 앞에 가서 앉으니 어찌나 분통이 터지는지 세상에 고쳤으면 테스트를 해봐야할건데 그것도 안 하고 나한테 핸폰을 넘겨주었나봐요. 이 큰 목소리가 화가나서 어쩔 줄을 몰라요. 핸드폰을 아가씨한테 넘겨주고 고치는 양을 보자니 꼬물딱꼬물딱 만지고 있는데 속에서 천불이 납니다.

아가씨는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옆에 사람한테 물어서 다시 해보고.

생각같아서는 매장을 뒤엎으며 소리 한 번 지르고 싶었지요

근데...그 아가씨가 어쩔 줄 모르며 미안하다고 허둥대며 고치는데 갑자기 내 딸 얼굴이 그 아가씨 얼굴위에 오버랩 되는거래요

나중에 내 딸도 회사에 취직해서 뜻아니게 실수를 해서 고객이 고함을 지르고 난리법석을 지기면 얼마나 난감하고 속이 상할까...하는.

그래서 흙투성이 발을 화장실가서 씻고는 철벅거리는 신발을 끌고는 다시 자리에 앉아 기다립니다.

아가씨가 핸드폰 속에 들어있는 조그만 스피커를 새로 가지고 와서 용접을 하고 붙이니까 핸드폰에서는 이제 울리는 소리가 납니다.

내가 또 잘못 되었을까바 그 자리에서 열번도 더 고스방 전화기에다 전화를 걸어봐요

나중에 아가씨한테,

아가씨 다른 건 몰라도 차비는 변상해조요 이렇게 말했더니 암말 안 하는거예요

다 고치고 내가 나가려니 잠깐 기다리라하더니 안에 가서 자신의 지갑을 가지고 와요

어이구...내가 저 아가씨한테 차비 만원을 받아서 무얼할까...싶은 마음

누구나 일 하면서 잘 못 할 수도 있는데..

 

내가 매장에서 고함을 지르면 나중에 아가씨는 상사한테 또 한 소리 들을게구

이러저러한 생각들이 나를 가라앉히게 합니다.

잘했어 전상순.

그래도 내가 오늘 얼마나 고생했는가를 그 아가씨에게 말하는데 어이구 주책이지 눈물이 막 나는고야요. 눈물이 글썽글썽하니까 아가씨가 민망해서 내가 나가는 뒤에 막 따라나와요

 

택시타고 간신히 차 시간 되어 직행버스 타고 주차장에 오니까 고스방이 기다렸다가 벌떡 일어나요.

이것저것 만져보고 실험을 해보더니 암말 않고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습니다.

집에 걸어와 앉으니 맥이 탁 풀리는게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어요

저녁 앉히고 신문 보고 있는데 전화가 와요

서비스센타 그 아가씨입니다.

 

미안해서요...댁에는 잘 들어가셨는지요...조용조용한 목소리로 그아가씨가 묻습니다

나는 뭐 그 당새 다 기분이 풀어져가지고는

"아이 아가씨 괘안아요. 집에 잘 왔어요. 너무 걱정마세요"

 

벨일은 아니지만, 이제 나도 그 어렵다는 <화를 다스릴 수 있는 나이>가 된 것인가요? 으흐흐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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