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대포집 세째며느리

호박 나물

황금횃대 2006. 7. 24. 13:25

 

 

비가 그렇게 쏟아졌는데도 소똥거름티미 호박 넝쿨에는 꽃이 피고

꽃이 사그라들기도 전에 개롬한 애기호박이 달렸다

한 사나흘 컷을까? 반짝 해 나고 호박은 씻은 얼굴로 말갛다

 

 

 

저 여린 호박을 가져와서 반달썰기로 또각또각 썰어보면

요리라는게 특별한 재주를 부리고 맛을 낼라고 작정을 하지 않아도 즐거운 것이

칼날이 호박몸을 슴벅슴벅 저며가는 듯한 그 날렵한 느낌이

참말로 사람의 오금을 저리게 할 만큼 싱싱한 소리로 귓가에 안착한다

저 몸이 베여서는 아모 저항없이 맑간 즙같은 진을 뽀요히 내놓는데

그걸 보면 뭐라 말은 못해도 생각은 한정없이 깊어지재를.

 

 

 

 

재주많은 이는 호박 한 삼태기에 요리가 열두가지라더만

나는 그럴 재주는 아예 피울 요량도 않고

그저 딸래미 좋아하는 방식으로다 소금넣고 들기름 넣어 들들 볶에 주는데

 

 

 

붉은 고추, 푸른 고추야 뭔 맛을 내것냐마는

살짝살짝 드러내는 붉은 기운이 초록호박하고는 기맥히게 어울리는 색깔이라

사는 일이 노상 뻘밭에 발 담그고 허우적대는 꼴이라도

호박나물 속 저 붉은 고추가 살짝 드러나듯이

삶 속에는 더러 아름다운 날들도 살짝살짝 있을거라

 

 

짜드라 덥지도 않는데

아들놈하고 둘이 가는 국수 삶아 콩국말아서

호박나물과 같이 먹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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