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까닭없이 영감은 짜증이다
어제밤 샤워하고 머리를 말린다고 옥수수 뜯어 먹고 있는 고서방 방향으로 바람이 가는 선풍기 대가리를 돌려 잠시 머리를 말리고, 아이들 방에 가서 뭘 잠깐 가지고 다시 나오니 옥수수를 입에서 떼며
고스방이 눙깔을 치켜뜨고는 날보고 한 소리한다
"니는 정신을 엇다두고 사노 엉!"
"뭐요? 내 정신이 와?"
직감적으로 선풍기 대가리를 자기 쪽으로 돌려 놓지 않았다고 그러는걸 알았지만 시침을 뚝 떼고
"뭐 때문에 그란디요?"하고 재차 물으니
긴 서술도 필요없다 "선풍기!"하고 찔러박듯 말하고는 돌아간 눙깔에 흰자위를 더 깔아서는 입술을 칼날같이 갈아서 뭐라뭐라 지청구를 한다. 쳐든 고스방의 모가지는 독기가 바짝 올라 뭐라 한 마디하면 당장 날아와 독새처럼 콱 깨물어버릴 눈치다.
'더러바도 참아야재'
"미안해요. 내가 방에 잠깐 갔다 오니라고......"
'그놈으 선풍기 바람 잠시 안 쐬면 사타구니가 꿉꿉해서 곰패이가 쓰나...디기 벨라게도 캐쌌네.'
속으로 이렇게 궁시렁 거리지만 아닌게 아니라 고스방 사타구니에 곰패이 쓸게 생깃다
내가 일주일째 마술에 걸려 부적을 차고 댕기니 사내라믄 뒷골에 무엇이 가득 차 올라 입으로는
저절로 짜증이 엉기게도 생겼겠다. 그렇다고, 아무리 그렇다고 치나 건건이 싸울라고 으르렁거릴게 뭐 있노 말이다.
2.
딱히 그가 그러는 것은 마술 때문만은 아니리라. 돌아오는 카드대금에 세금에 보험료에 구멍은 아가리를 쩍쩍 벌리며 달려드는데 하루하루 벌이는 영 신통찮다. 마누래 동호회선배가 옥수수를 한 자루 보내와서 저녁마다 뜯어는 먹는다마는 늦은 밤 벌이를 마치고 집구석 들어 오기 전에 집에 전화해서 얼라들 안 자는가, 뭐 먹고 싶은거 있능가? 하고 살갑게 물어보고 덥석덥석 사다 엥기면 기분이 데낄일건데 그걸 맘대로 못하니 속이 상하는게다. 참외 한 봉다리를 사면서도 벌벌 떨어야하고, 여편네 좋아하는 빵도 좀 사다줬으면 좋겠는데 그도 여의찮고...이런 저런 심사들이 고스방의 가심에 염장을 지러대는것이다.
사람 사는기 뭔지 맨날 돈, 돈, 하다 숨 넘어가면 그길로 끝인데, 그렇게 외우고 쫒아댕기도 돈이란건 맘대로 내 꽁지에 따라 붙는기 아니라. 생각하믄 할 수록 한숨만 나오고 어떻게 살아갈까 싶어 등때기 땀이 빠작빠작 난다.
3.
늦게 잠자리에 들어도 새벽 다섯시가 조금 넘어 창문이 희뿌욤하면 고스방은 뭣에 홀린듯 고만 일어난다.
옆에 누운 사람이 일어나든 말든 나는 잠을 좀 더 청하자 싶어 눈을 질끈 감아보지만, 보기보다 또 무디질 못해 뒤따라 일어나 이불을 개고 방문을 나와 마루에 흩어진 파리채며 수건나부랭이를 치워본다. 어제 배달된 신문은 띠지도 끌르지 않고 접혀져 있다. 영동 한겨레 신문 지국장 이주형씨가 알믄 난리나겠다. 어떻게 하루종일 신문을 안 펼쳐보고 살 수 있느냐고.
첨에 한겨레 신문을 받아 볼 때는 신문 면면을 꼼꼼히도 읽었으나 이제는 그도 안 읽고 신문 포개놓은 통으로 직행하기가 여러번.
저 신문 하루치 맹글라믄 몇 백사람이 발로 뛰고 손가락에 머리를 굴려야할텐데...참 나도 그걸 날짜 확인도 안 하고 신문뭉치 속에 던져넣다니. 열정은 식고 식어 신문을 보는 태도에도 찬물같이 냉랭한 마음이 떨어지니...사람의 일은 맨날 보아도 또 모를 일이라.
4.
여름 휴가철을 맞아 하나로 마트에는 매장 앞마당까지 물건을 차려놓고 여름철 세일을 한단다.
어제는 계란을 세일하고 오늘은 수박을 세일하고, 전구지에 일회용 커피와 오징어채를 세일을 한단다. 모두 다라이에 물건을 사서 머리에 이고 길을 가고 있다.
이것저것 나도 눈에 띄는대로 주워 넣으면서 한숨이 폭폭 나온다
어머님은 내가 설거지를 하고 나오자마자 낮에 먹을 국수를 삶으시겠다고 들어가신다.
고스방이 언제부터 잔치국수, 잔치국수 해쌌는데 여편네는 그냥 약식으로다 다시 물에 호박볶고 계란만 얹어주고 마니 자연 맛이 없을 수 밖에. 그러니 어머님이 또 별르고 별러서 날보고 고기를 사오라 하시고 호박이며 버섯이며 계란, 고기 고명을 하느라 부엌에서 바쁘시다. 홀로 바쁘시다
나는 어머님 부엌에 들어가시면 일체 들어가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호박을 볶아도 계란부침을 해도 다시다며 미원을 듬뿍넣어서 만드니 볼 때마다 그걸 뭐라 인상쓰며 할 수 도 없고 안 보면 상책이라 고만 체념을 하고 만다.
그냥 어머님 해 놓으신 반찬을 내가 멀리할 밖에. 그러면서 당신 아들인 고스방은 먹어도 할 수 없지만 내 아들. 딸 만큼은 조미료 든 음식 먹이기 싫어서 실쩌기 그 반찬은 미원이 많이 들어갔데이 하고 이야길 하지만 그것도 어쩌다 한 번이지 매번 그럴 수도 없는 일이다. 고만 오기가 나서 이녀르꺼 세상 오래 살믄 뭐하겠나, 나쁜던 좋던 먹을 거 다먹고 후딱 살다 가는거지..하는 독한 말도 속으로 씨부렁 거리게 되는 것이다.
5.
조선천지가 우르릉꽝꽝 무너져도 내 심사만 튼튼하면 이렇게 앉아서 꼬장부리지도 않을건데, 나 역시 볕이 나는 것도 귀찮고 비가 오는 것도 짜증이다. 모다 고스방 때문이야. 하고 몰때려서 갈아부치기엔 뭣한 이유가 남았는데 그 이유를 나도 모르겠다. 은근히 조여오는 살림 때문에 그런가. 딸년 아플 때는 이 아이만 괜찮으면 뭣이든 감사하고 아모 욕심도 부리지 않으리라 다짐을 했건만. 참 그게 오래가지 않으니 간사한게 사람우에 더 있을게 있나.
책이나 들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