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랫집 종기아지매 옥상에 차렵이불이 젤 먼저 빨래줄에 널렸다
짙은 호두나무 이파리를 배경으로 하얀 누비이불은 꼼짝도 않고 걸려있다
햇님은 울산발 서울행 새마을열차 꽁무니에 묻어 여기까지 왔다
여태 일어나지 않는 아이들의 잠든 어깨 위에도 햇살이 환하게 들어온다
조금전까지 안개에 젖어 있던 느릅나무 이파리들도 바람 한 오래기 지나가자 고만 마른 얼굴이다
닭구새끼들도 이제 달걀에다 달구똥을 묻히지 않을게고 자주달개비의 꽃잎도 우묵처럼 맑은 웃음일게다.
부모님을 뵈러 휴가차 내려온 집에서는 일찍부터 사람의 소리들로 부산스럽다
담 너머로 오랜만에 아이들이 웃는 소리가 들려오고 쉰 목소리의 노인들이 아이들 뒤를 따라 조심하라는 걱정이 연이어 담을 넘는다
탱탱탱 경운기 돌아가는 소리, 암탉 알 스는 소리, 고속도로 공사장 인부들의 고함소리,개 짖는 소리
빨래 줄에 앉은 작은 새들이 노래하는 소리...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작은 풀벌레 소리까지도 손에 잡힐 듯 하다.
햇님은 이제 빈틈을 보이지 않는다
사나흘 밀린 빨래는 건조대용량을 넘치게 하고, 쉬이 없어지지도 않을 터인데 마음은 바빠 아랫채 마루에서 대문까지 급하게 잡아맨 빨래줄에도 빨래가 널린다. 소 믹일때는 소가 모가지를 빼물면 운동화까지 샛바닥이 올라간다고 소마구간 지붕 위에 신발을 널지 않았는데 그 정겹던 소도 팔려간지도 오래되었구나.. 종일 볕이 가장 오래 머무는 소막 위로 아덜놈 신발 두 켤레가 나란히 올라 앉았다. 햇님은 운동화의 안쪽까지 살뜰이 기웃거리는 눈치다.
어제 낮에는 마지막 발악인 듯 물폭탄이 잠시 퍼부어졌다.
급하게 골짜기에서 만난 흙탕물들이 봇도랑이 미어지도록 치고내려왔다
논둑에 물을 빼고 물꼬를 다독이는 사이에 비가 그쳐 집에 오니 서방은 다시 물꼬를 막아 놓으란다.
이제 비는 그만 올것같아..
그 예감이 적중했는지 어젯밤은 매일 내리던 밤비가 오지 않았고, 어제 저녁 늦도록 이삭비료를 하고 이화명나방 예방 약을 뿌렸던 고스방의 노고가 고스란히 살아남게 되었다.
무엇이든,
오래 못보면 보고 싶다
슬픔조차도 그러하거늘, 하물며 그게 햇님이에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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