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대포집 세째며느리

주워 먹어도 배불러..

황금횃대 2006. 9. 30. 23:23

 

 

아침 나절에 빨래해서는 빨래줄에 가지런히 널어 놓구서는 스쿠터 타고 매곡 작은집에 갔세요

작은집도 포도 농사를 넘의 것 도지내서 짓기는 하지만 거긴 포도를 박피를 먹여서 일찌감치 출하를 하기 때문에 명절 제사 지낼 포도가 없시요. 어제 포도 손질 마지막으로 하고는 포도가 좀 남아서 작은집에도 한 박스 보내는 거래요

 

작은집 아저씨, 그러니까 나한테는 오촌 아저씨가 되네요. 그래도 그 아저씨가 어찌나 경우가 바르고 아버님이 사촌 형님인데도 꼭 부모님 대하드키 깎듯이 아버님께 잘 합니다. 집안 일이 있으면 꼭 들르시구요. 몇 년 전, 아주마이가 친정 동생한테 사채며 농협빚을 어찌나 끌어댔던지 아직도 그 빚을 다 못 갚으셨재요. 아버님은 그 아저씨 얼굴 마른 것 보면 아주 기분이 안 좋아지셔서 걱정을 하십니다.

 

포도 한 상자를 스쿠터 앞에 낑가 넣어서는 매곡까지 갔어요. 들판은 아주 구수한 냄새가 일렁이도록 가을 풍경을 내뿜고 있습니다. 냇가를 끼고 옹색하게 붙어 있는 논들이 점점 매곡으로 가면서 넓어져요.

오토바이를 찬찬히 타고 가면서 꿀밤나무 아래 가서는 스쿠터를 세우고 나무위를 올려다 봅니다. 올해는 농사가 풍년이래서 그런지 꿀밤 나무에 꿀밤이 얼마 달리지 않았세요. 예로부터 꿀밤은 구황 열매라 흉년이 든 해에는 꿀밤나무가 짜개지게 꿀밤이 달리는데 풍년이 되는 해에는 꿀밤이 그리 많이 달리지 않는답니다. 신기하지요. 도토리 나무 아래에 세우고 봐도 도토리가 별루 많지 않은 것 같았세요.

 

길 가에는 뿌연 먼지를 뒤집어쓰고 구절초가 연보랏빛 꽃대가리를 흔들고 있어요. 황간에서 매곡 가는 길은 길가에 가로수가 감나무래요. 삐주리감이 어찌나 큰지...근데 올해는 감도 흉년입니다. 윤달이 들어 날이 어찌나 더운지 감이 꼭지째 빠져버려요. 작년에는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붉은 감들이 정말 탐스럽게 많이 달렸었는데 올해는 전멸입니다.

 

<물망초>식당을 하는 아저씨집에 들러서 포도 상자를 욍겨 놓습니다.

어두운 식당 철재 의자에는 각각 한 테이블 한 사람씩 영감님 두 분이 차지 하고 앉아 마악 비운 듯한 종이컵 커피의 빈컵을 앞에다 놓고 내가 하는 양을 쳐다 봐요.

 

"오매나, 큰집에서 포도를 다 갖고 오고. 이렇게 좋은 걸 팔아서 돈을 하지 말라꼬 갖고 오누"

"어제 저온 창고에 조금 넣어 두었던거 작업을 해서 보내고 남은 것 나눠 먹느라고...많지는 않지만 차례상에 올릴거 몇 송이 내 놓고는 아주마이 잡수세요"

"아구 말라꼬. 내중에 밍절때 알라들 오면 그 때 같이 먹지"

"삼촌들은 좋은 거 즈그집에서 많이 사 먹고 하니까 걱정하지 말고 목 마르고 힘드실 때 한 송이씩 잡수세요"

"아하하하..그런가. 그래도 큰집 포도는 알이 굵고 맛있는데 잘 놔둤다가 아아들하고 같이 먹어야재"

 

부엌으로 들어가신 아즈마이는 손에 오렌지 음료수 두 병과 지고추 담은 음료수 병 두 개를 손에 쥐어 줍니다. 봉다리가 무거워요. 오토바이에 싣고는 다시 돌아 오는데 길에 커다란 감이 떨어져서 저렇게 퍼들어져 있세요. 떨어진 감을 볼 때마다 아까와서 스쿠터를 세우고 감을 주워 담아요

잘못해서 하나는 밟았는데 반틈은 성한 거 같아서 주워 먹었세요. 한쪽 귀퉁이는 발에 밟혀 뭉그러져도 한쪽 귀퉁이 주워 먹는데 아모 거리낄게 없어요. 촌에 살면 그렇게 일년 내도록 견뎌서 여문것들이 저리 떨어져 무참하면 아깝고 아까운 법입네다.

 

지나가는 차들이 저 여편네 뭘 하나 삐꿈 치디어보고 가요

결실의 계절에는 배끝에 나가면 떨어진 것만 주워먹어도 배가 불러요

그래서 가을은 풍요의 계절이라고 하나봅니다.

스쿠터 바구니에 가득 감을 주워서 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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