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에 양순정님이 우리집에 친구분이랑 포도 사러 왔었재요
너슬포도를 내가 얼마나 비싸게 받아먹었는지 양순정님은 몰라요 ㅎㅎㅎ
그 때와서 점심 먹으러 가는 길에 다 씨러져가는 한옥에 지붕만 멀쩡하게 수리한 집을 지나는데
저런 집은 빈집인가...하고 물어봐요
지붕만 수리 해놓고 주인은 어데 다른데로 이살 갔나봐요하고 대답을 했재요
어제 찌지부리한 포도 따왔는데 포도 알 따다가 그 이야기가 생각났세요
그래서 시동생한테 이야기 물어봤죠
'저 연지 아빠, 왜 있잖아 저 밑에 옥포동에 단발머리 얼음아저씨, 그 아저씨 어데로 이사갔어요?"
"아, 변강쇠(가명)형 그 형 이사 안 가고 여길 살걸요 얼마 전에도 지팽이짚고 벌벌 떨며 걸어가는거 봤는데.."
"그래요? 나는 못 본지 한 이 년은 되가는거 같네"
"아이래요. 얼마 전에도 한의원에 침 맞으러 가는거 봤어요"
그 변강쇠형이라는 사람.
내가 황간에 시집와서 조금 주변 환경에 익숙해질즈음.
그 사람의 머리모양이 얼마나 독특한지.
지금이사 남자들 머리 길러서 뒤에 묶어 다니는 것 많이 보지만 그 때만 해도 남자가 머리 길러 다니는 거 드문 때라, 그라고 이 촌구석에 그런 모양으로 얼굴 들고 빳빳하게 댕기는게 너무 신기해서.
그야말로 얼굴이 까무잡잡 입술이 자줏빛깔이 나는 오종종한 남자가 머리를 클레오파트라단발머리를 해서는 짜드라 직장도 없는 것 같은데 맨날 대우 프린스 시퍼런색 차를 몰고 댕겼재요"
그 때 대우 프린스하면 그냥 중형차로 많이 타고 댕겼는데 집 앞을 지나가자면 지붕 새로 하기 전 대문이란게 우리집 아랫채 변소문처럼 쬐그만하게 만들어서는 절루 사람이 드나들 수나 있나...싶은 생각이 들게 매달아 놓고, 차는 그 집 앞에 맨날 세워져 있거나 아니면 지서 앞 히닥한 사무실에 또래들 모여 다방 커피나 시켜먹는 그 앞에 세워 놓고해서 나는 오매가매 자주 봤재요
얼마나 지난 뒤 궁금해서 고스방한테 물어봤재요
"도대체 저 단발머리 프린스 아저씨는 뭐해서 묵고 살어요? 내가 봉께 벨로 하는 일도 없이 맨날 다방에 죽치고 앉아 있는 것 같던데"
"아..그 강쇠형. ㅎㅎㅎ 그야말로 변강쇠지. 그 형이 꼴은 그래도 대전에 한 번 떴다하면 가스나들이 주루룩 목을 멘다구."
"내가 보이까네 벨로 힘 좋아 보이지도 않드만. 그라고 얼굴이란게 도무지 따뜻한 구석이라고는 눈꼽만치도 없어 보이드만 여자들이 뭐 보고 좋아서 목을 맨디야?"
"어허 모르는 소리, 그 형이 찾아 오는 여자들 한번만 꼬추로 위로를 해 주면 여자들이 돈을 막 주고 간디야"
"어이구, 그럼 꼬추 장사해서 먹고 사는겨?"
"그렇다고 봐야재. 저래도 맨날 옆자리에 타는 여자들 보면 일류신사여 마른 장작이 화력좋다는 말이 빈말이 아닌게비라 몸은 호리호리해도 여자들 껌벅 넘어가게 해 주나벼"
그렇게 옥천댁이 같이 살자고 매달려도 대전사는 여편네와 붙어 먹다가 덜컥 바람을 맞은 강쇠형.
얼마간 강쇠형이 풍을 맞아 대전 한방 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소문이 듣기더니 시퍼런 프린스를 먼지가 앉도록 세워두고 강쇠형은 지팡이에 의지에 한 쪽이 마비된 몸으로 한의원에 침 맞으로 가는 모습을 매일 보여줬다.
"그러게, 꼬추도 적당히 팔아야재 저렇게 있는대로 퍼다내 팔다간 종내 저런 꼴을 당한다구"
지나가는 바람에 은사시나무 이파리는 이렇게 소문을 냈다지요
바람 불 때 은사시 나무 밑을 지나가는 사람은 그 소리를 듣고 빙그레 웃으며 지나갔재요
은사시나무는 키가 커서 이 동네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다 알게도록자주 바람에 이파리를 흔들어댔다지요
어제 양순정님이 또 포도를 사러왔는데 그 집 안부를 또 물어요
그래서 시동생한테 물어봉께 아직 그 씨러지는 집에 산대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어이구 옥천여자가 그렇게 살림 살자할 때 눈 질끈 감고 살았으면 저렇게 병들었을 때 여자가 수발이라도 해 줄낀데.."
내가 한 마디 했죠
"여편네라도 스방이 뭐 잘 해줘야 병이 나도 수발을 해 주지, 지 할 짓 다 하고 돌아댕기다가 저렇게 몸 망가지는데 어띤 여편네가 이쁘다고 니발나발수발 들어주겠냐고요요요요오"
"그래도...."
"그래도는 무슨 그래도여, 내 같으면 그냥 지나가다 미워서 한번씩 꾹꾹 밟아나 주고 말것구만"
그러자 옆에 있던 동서가 한 마디한다
"맞아요 형님!"
동서가 그리 말한 것은 우리집 형제간 인물 중에도 그런 인물이 하나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몸이 안 좋건만 아내를 그렇게 구박하고 멸시를 하니, 늙어 좋은 꼴 보게되나...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지켜볼끼다.
동서와 나는 그렇게 종지부를 찍고는 암말도 않고 일을 했재요
어이구...명절은 다가오는데 그 인간 생각하면 내 집에 발도 들여놓게 하고 싶지 않고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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