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대포집 세째며느리

갱년기 준비

황금횃대 2006. 11. 29. 23:16

작년 이맘때쯤 동네 웃뜸에 사는 쌍둥이 아짐마가 병이 났다.

이름하야 갱년기 우울증.

아들 셋에 늘씬빠꼼한 아저씨가 있는 쌍둥이 아짐마는 부지런하기가 말로 다 할 수가 없다

옛날 오리표씽크 공장에 다닐 때도 퇴근 후에는 삐얄밭에 들깨를 심네 자두를 따네 하면서

쌍둥이 아들 둘 앞세워 리어카를 끌며 밀며 농사를 지었다.

그러면서도 집 안에는 티끌 하나 안 날리도록 깔끔하게 청소를 하고  빈터에다 황토를 방을 넣어

겨울에는 나무를 해다가 불을 땠으니 알뜰함에 있어서도 누가 따라 나설 사람이 없었다.

우리집에는 이십일이면 프로판 가스 한 통을 다 썼는데 그 집에는 가스 한 통으로 육개월을

지낸다는 전설이 동네에 떠돌기까지 하였다. 그러니 얼마나 필요한 것만 가스로 썼겠냔 말이다.

 

우리는 그런 소리만 들어도 지레 질려서 슬금슬금 꽁무니를 내리며 본받기보다는 여전히

살림을 칠랄레팔랄레 사는데, 그런 아짐마가 갱년기 우울증으로 반짝반짝 윤나게 쓸고 닦던

빗자루와 걸레를 집어던진 것이였다. 그러고는 혼자 앉아서 우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 집 아들로 말할 것 같으면 과외가 다 뭐다냐. 둘이서 영어는 새벽에 라디오로 듣고, 그 흔한

카셋도 하나 없이 영어 공부를 하고 엄마 도와 농사일 다 하면서 공부를 했는데도 둘다 국립대학

들어가서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을 하고, 그렇게도 취직이 어려워 이태백의 장탄식이 쏟아져

나오는 시절에도 국영기업과 포철 대학원을 끙 소리 한 번도 안 내고 들어갔다. 그런데도

그 아짐마가 날이면 날마다 우는 것이다.

 

저렇게 놓아 두다간 사람 일 나긋다 싶어서 동네 사람들이 교대로 그 집에 가서 아짐마를 동네회관으로

델고 나왔다. 거기서 사람들하고 같이 민화투도 치고 옛날 깔끔받던 기질이 되살아 나서 움직이면

좀 나을까 싶어 회관이 어질러져도 아무도 안 치웠다. 그러면 그 아줌마가 빗자루를 들고 회관 마당을

쓸고 쓰레기를 태우고, 할매들이 뭘 해 드시면서 가스렌지 주변 비릉빡에 튀겨놓은 찌개 국물과

기름방울을 혼자 닦고 치웠다. 그러면서 평생 집 밖에 모르던 사람이 면사무소 요가도 가게 되었다.

 

그 때는 아짐마 그러는게 이해가 되지 않아 왜 그러실꼬....아덜놈들이 애를 믹이나 스방이 꼬장을 부리나 만고에 아짐마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댕기면 무엇이 그리 인생에 우울한 그림자가 있을까 생각을 했지만 나는 통 알 수가 없었다.

우울할래면 그 아짐마가 우울 할끼 아이고 맨날 집구석에서 밥상 채리다 해가 뜨고 해가 지는 내가 우울증에 걸리도 걸리야할낀데 우째 아즈마이가 걸린단 말가..하면서 고개를 갸우뚱 했다. 그러나,

 

지난 금요일과 토요일에 걸쳐 서울 갔다 온 일이 너무 힘들었나보다.

조금 우선하던 하혈이 다시 시작되어 감당을 못하겠다. 세수하고 거울 보면 허걱, 얼굴이 쪼매 창백한 것 같기도 하다. 고스방도 짜증이 났다. 이놈의 장마가 무슨 두 달 씩이나 계속이 되니 뒷골이 싸납게 땡길만도 할 것이다.  속으로 겁도 시르륵 나고 하니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병원을 가 봐야 할 일이다.

 

지난 달 계모임에 나가 내 사정을 이야기 했더니(병은 자랑하랬다고) 친구 중에도 하나가 그런 증상이 있어 병원을 계속 다니면서 속을 끓였는데 어찌어찌해서 이제 나았다고 하였다. 그 친구에게 전화해서 방법을 물어 보고는 일 나간 고스방한테 친구 이야기를 하면서 그 병원에 가 보는게 어떻까 하고 물었더니

 

"그걸 와 나한테 카노!"하면서 화를 버럭 낸다.

순간 열 뻗침.

이리저리 치워놓고 직행버스를 타러 나갈려니 또 전화가 왔다

"어디여?"

"집에서 나갈라구 하는데요"

"차 시간이 몇 분남았다고 이제 나오는겨 빨리 나왓!"

후다닥 뛰어나가니 차를 휙 돌려서 내 앞에 갖다댄다

앞좌석에 타니까 앞이 터진 스커트를 입었다고 눙깔을 부라리며 한 소리 한다.

'남자가 여자 치마 입는 사연을 알라면 석달 열흘 공부해도 다 못하지를..'

열뻗친 나는 입을 앙 다문다. 말을 안 해야지.

주차장까지 태워 주면서도 궁시렁 거린다.

"아니 어느 병원에 갈 것인가는 니가 알아서 가야지 내한테 말하면 내가 장화 신고 그 안에 들어가보나 어쩌나 응? 니몸 니가 알아서 해야지 버럭버럭..."

"아니 친구가 그렇게 해서 좋아졌다항께 당신하고 의논을 해본거지 그걸 가지고 뭘 그리 화를 내욧"

"화 안나게 생깃나 이핀네야. 요즘 같으면 니하고 말도 하기 싫어"

"말하기 싫으면 안 허면 될거 아녀" 나도 속된 말로 야마 잇빠이 돌아서 차 문을 꽝하고 닫는다.

 

대전행 차표를 끊고 조금 있으니 버스가 들어온다.

자리 잡고 마악 앉으니 전화기에 문자가 들어온다

 

"날씨가 추우니 감기 조심 하시고 항상 건강하셔야 해요. 사랑해요"

 

어디 눈먼 문자가 내 전화기로 들어와 사람의 심정을 이리 울리나

울컥 눈에 물기가 올라온다.

꾸역꾸역 목이 메여온다

차창 밖을 내다보니 고스방은 다른 기사들과 같이 커피 자판기 앞에서 웃는 얼굴로 뭐라 이야기하고 있다.

퍽도 유쾌하시겠수 흥!

 

병원에서 약 타가지고 나와 버스 시간이 될 때까지 시장에 들어 반찬 몇 가지 사는데 꽃게가 눈에 띈다

얼마전 고스방이 꽃게가 먹고 싶은가 작년 이맘때 먹은 꽃게 이야기를 실무시 끄집어 내던데 내가 일언지하 꽃게 값이 얼마나 비싼데! 하고 무질러 버렸다.

아침에 내게 한 소행으로 봐서는 꽃게 뒷다리 주물럭거려서 집에와 손 씻은 물로 국을 끓여줘야 마땅하거늘 납량특집 구미호의 끄트머리 대사 한 줄처럼 <더러운게 정이라..> 구링이알같은 돈을 지갑에서 꺼내 꽃게를 댓마리 산다. 내일 아침 블로그에는 꽃게탕 사진이 올라오겠지?

 

그나저나 내 자궁은 안 허던 짓을 하며 갱년기란 이름으로 슬슬 내게도 침투를 하는데  나는 어떤 방비를 해야하는거지. 아득하고 아득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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