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대포집 세째며느리

연민도 울분처럼 솟누나 2

황금횃대 2005. 4. 15. 14:12

 

 

 

 

내 병원문제 때문에 서울에 시누형님이 내려왔다.
손목아지에 힘주면 안된다고 의사가 누누이 이야기를 해서 형님이 병원에서 집까지 오셔서 사흘을 밥에 청소에 반찬에.. 해주고 어제 올라갔다.


오랜만에 시어머니와 둘째딸 시누가 만나 티비를 보면서 옛날 고생했던 이야기며 이런 저런 이야기, 그러니까 열두번만 더 들으면 백번째 듣는 이야기를 듣는다. 다리 아픈 이야기를 하다가 어머님께서,


"저 건니 노근네할마이는 애들 유모차같은 것을 지팽이 대신 끌고 댕기는데 크지도 않고 날씬한기 내가 함 밀어보니까 편하두만"

 

아마 야외휴대용 유모차 이야긴갑다.

방 안에서 둘의 이야기를 가만가만 듣고 있던 내가 나서며


"까잇꺼 그거 돈 몇 푼 안하는데 여기 컴에 들어가면 베라벨 모양이 다 있응께 어머님 함 골라 봇씨요잉"

 

옥션으로 들어가니 유모차가 떠르르르 널렸다
여러가지 모양을 보여드렸더니 19900원짜리 그걸 고르신다.

 

"딱 저 모양이네 저거여."

 

바로 폰벵킹으로 결제를 하고 기다렸더니 오늘 점심을 먹으로 고스방이 마악 집으로 들어오는데 택배회사 직원이 길다란 박스를 가지고 들어온다.

포장을 풀르고 조립을 해서 어머님에게 드리니 고스방이 이 뭐꼬? 한다


"어머님이 지팽이보다 이게 더 편하고 걷기가 나은거 같다고 하셔서 내가 주문했지요. 어머님 함 밀면서 걸어보이소."

 

마당에 내어놓고 새로 걸음마를 시작하는 듯 어머님이 유모차를 끌고 살살 움직이신다.
돌 지나 걷기 시작한 한 사람의 일생에 <걸음>이란 것이 잊어버리는 그 무엇도 아니건만, 새로이 유모차에 온몸을 지탱하며 한 걸음 한 걸음 걷는 연습을 하신다.

 

그러다 대문 내리막을 내려가다가 넘어지셨다. 발통 굴러 가는 속도와 발 내딛는 속도가 엇갈린것이다. 깜짝 놀라 뛰어가 겨드랑이 손을 넣어 어머님을 일으켜 세우는데

울컥,
목젖이 뜨끔하다.

 

 

담장 우에는 봄볕이 미친 듯 가볍게 튀어오르는데.
나는 어머님 몸보다 더 무거운 연민을 들어 올리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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