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대포집 세째며느리

꿈꾸는 자의 정선行

황금횃대 2004. 4. 12. 17:23

삼월 스무날에는 정선행이 예약되다
아직 날짜까지 가려면 무슨 이유들이 그 길을 막고 나설지 모를 일이지만
가계부 월말 계획 칸에다 착실허니 <정선행>이라고 칼끝으로 새기듯
그날의 행선지를 써 넣는다.


정선에서 무슨 일이 있는가
다음에 몇만개가 있는 문학카페 중 하나가 거기서 정모를 한단다
지난 해 오월 태안 만리포에서 정모를 하였을 때, 얼마나 그 만남의 면면들이
서투르고, 서투른 송곳들이 찔러대는 슬픔에 나는 무척 절망을 하였더랬는데
일년의 세월은 그것을 꽃무덤 속에 묻고 다시 내 가슴에 꽃송이를 피우게 한다.


정선에는 나보다 나이가 한 살 어린 총각이 산다
그는 소설가다.
공동체 생활과 여타의 생활을 이제 모두 접고는 정선 그 골짜기로 스민 사람이다
오롯 혼자서 산 속을 거닐고, 새들이 잠든 첫 새벽에 글을 쓰고, 일체의 육식을
버리고 생식을 습관화 하려고 애쓰며, 어디 매인데 없이 자유로운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나 같은 촌구석 여편네도 언젠가는 그의 집 주변 낡은 폐가 하나
입수 해서 산 소리 물 소리에 젖고 싶은 생각이 저절로 들고야 만다.


지난 오월에도 내가 만리포에 간다니까 나를 보려고 그 먼 정선에서 만리포까지 왔다
그리 만나보아야 별 이야기도 못하고, 그나 나나 술취한 젊은이들 뒷치닥거리를 한다고 허둥대고 말았지만, 그 후로 나는 편지글이나마 편히 보낼 수 있었으니, 사람의 만남이란 그 순간에야 별다른 삐리리가 없어도 나중에 지나고 나면 사람이 내뿜는 향기는 오래 간직되는 모양이다.


생활의 엽편을 그림 엽서에 써 보내면 그는 소설가 답게 편선지에 서너장의 답장을 보내 오는데, 글씨체가 가지런하고 정갈함은 물론이거니와 한번도 문어체의 깍듯한 형식을 벗어나 본 적이 없다.
내가 여러 사람에게 편지와 엽서를 써 보내는데, 그 편지에 답장을 꼭꼭 해 오는 사람은 여기 위드리나 언니와 그이 밖에 없다.
한 통의 편지가 가면 며칠 뒤 기다림의 배반이 없이 반드시 답장이 그의 주소를 목에 달고 온다.
여름 날, 고되게 포도밭에서 일하고 돌아오면서 흘낏 대문 앞 우체통을 바라 봤을 때, 거기에 개인적 서신이 끼여 있으면 하루 노동의 노고가 말끔히 씻겨져 나가는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다.


정선 여량으로 걸어 나가면서 주워온 가을 단풍잎과 은행잎을 스캐너에 얹어 편지지에 인쇄해서 보내는 그의 정성을 생각하면 하도 기특하고 이뻐서 매일매일 엽서를 쓰고 싶은 마음이다.
그의 겉모습이래야 상상처럼 멋지고 그렇지는 않다. 왜소한 키에 덩치에 곱슬머리에 산 속 혼자의 생활이라 기름기가 배제된 최소한의 조건을 가지고 있지만, 그가 쓰는 글은 우리말이 주는 함축적인 의미와 풍부한 감성의 자양분이 군데 군데 녹아 있어서 글을 읽으면서 내내 츠르릅 흐르는 침을 닦아야 할 정도니 자연에서 발효시킨 그의 삶이 얼마나 멋지면 몇 백리길 밖의 나를 감동시키는가.


정선으로 가는 길이 서너번 갈아타야 하고, 어쩌면 회사 댕기는 놈 시간을 알아봐서 제천쯤에서 녀석의 발품을 빌려 데려다 달라고 사정을 해야하는 판국이지만, 삼월 스무날, 아름다운 내 발길에 환한 빛덩이를 안겨 줄 것이 틀림 없는 여행이기에 이렇게 그 날의 설레임을 써 보면서 정선 아리랑 한 구절 불러 본다

저 건너 저 묵밭은 작년에도 묵더니

올해도 나와 같이 또 한해 묵네


정선 읍내 물레방아는 물살을 안고 도는데

우리집의 서방님은 날 안고 돌줄 왜 몰라


앞남산 딱따구리는 생구멍도 뚫는데

우리 집의 멍텅구리는 뚫린 구멍도 못 뚫어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상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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