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잠 한 숨 자고 자두나무 가지를 주으러 갔다
한 달여를 사람 물색하여 전지를 부탁하였으나
그 일군이 얼마나 행동이 굼뜨든지, 꼴란 900평에
듬성듬성 박힌 자두나무 전지를 두 번을 날을
잡아도 못 다 하였다
승질 난 울 시동생이 어제 들고 앉더니 나머지
남겨 놓은 부분을 다 가지치기를 해서 그나마
자두꽃 오시기 전에 일을 마무리 하였다
자두나무 햇가지는 다 잘라 내고 묵은 가지만
남겨 놓는데, 햇가지는 횅냥횅냥하니 회초리하기
딱 알맞은 굵기가 되는데, 꼭 학교 다닐 때 선생님
들고 다니시던 교편과 비슷한 굵기이다.
사방 잘라 놓은 나뭇가지를 주으러 밭으로 갔다
소위 자외선 차단 모자라는 창모자를 쓰고, 마스크까지
실하게 둘러서는, 목 마르면 먹을 귤까지 댓개 챙기고
둘러 쓸 머릿수건에 면장갑 두 켤레, 소소하니 챙길기 많다
스쿠터 타고 가려다 봄 볕이 좋고 봄 바람이 좋아 걸어간다
철길을 따라 오백여미터 가면 고속도로와 경부선 철길 사이에
우리집 자두밭이 있다
시집 온지 올해로 십오년째 발걸음을 옮기는 밭이다.
좁은길을 따라 철둑 옆을 걸으면, 어디서 그 씨가 날아와
뿌리를 내렸는데, 새파란 원추리가 두어 포기 벌었고, 납죽납죽
잎들을 밀어 올리는 것은 무엇이냐...아구 갑자기 이름이 생각이
나지 않는다. 여름에 대궁 껍질을 벗겨 감자 썰어 넣고 녹말 풀어
물그리하니 끓여 놓으면 모심기 할 때 그만한 국물도 없다하였는데
아직 제비꽃은 방가로 간판을 내걸지 않아, 어느 땅 속에서 개업 준비를
하는지 알 수가 없으나, 이팝꽃 화들짝 피어나면 제비꽃도 덩달아
길섶에 깊은 보랏빛을 피어물리라.
몰래 비밀구좌처럼 피어나던 나만 아는 다래넝쿨도 아직은 동곳같은 작은 잎들을 내밀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단지 찔레만 가시를 돋운 채 작은 잎을 내어 놓을 뿐이다.
양지쪽 거름티미는 아지랭이같은 김들을 피어 올리며 썩고 있고
지난 겨울 말라서 엉겨붙은 한삼덩쿨은 죽어도 꺼끄름 기색은 포기할 수
없는가 손등에 달라붙어 앙칼진 손톱을 들이민다.
봄볕이 환히 떨어지는 자두밭에 성큼 들어서 가지를 줍는다.
황을 쳐대었더니 나뭇가지는 하얗게 색이 바랜 듯 황이 말라 있다
가지런히 모아서 들어내고 한 나절을 꿈직거린다
모아지는 자두가지에 꽃망울은 아직도 제 몸 붙은 가지가 나무에서 잘라
진 줄도 모르고 뽀조록히 입술을 내밀고 있는데, 꽃도 피워보지 못하고
시름시름 말라 죽을 일이라면, 그 긴 겨울 버틴게 속으로는 저으기
아깝고 속상하리라. 그러나 한 해 농사 튼실히 지으려면 그렇게 잘려져야 하는 것. 나를 원망 말거라.
산 너머로 해님이 넘어가니, 짧은 따사로움은 금새 펼쳐진 그늘에 설렁
바람이 인다.
그제서야 입 안이 쓰고 밭둑에 털퍼덕 걸치고 앉아 장갑을 벗는다
손등이며 손가락이며 황 가루가 스며들어 손가락도 하얗다.
손 씻을 뭣도 없으니 그냥 귤 하나 까서 입안에 쏙 밀어 넣는다
옛날 서양 사람들이 우리 나라 와서 논에 써래질하고 흙탕물에서 걸어나와 손도 씻지 않고 그 손으로 김치며 반찬 손으로 집어 점심을 먹고
미류나무 선선한 그늘 아래서 한 숨 자면, 그걸 보고 그네들은 디러운 손으로 밥 먹고 전부 배탈 나서 죽었다고 눈을 하얗게 까디집으며 난리를
쳤다지 않는가.
"하이고, 조선 사람들 손도 안 씻고 밥 먹더니 다 죽었네"
귤을 까서 입으로 넣고 내 손을 바라 보니 문득 그 얘기가 생각난다
이 손을 보면 울 아덜놈 엄마 죽는다고 난리칠거 아닌가? 손 씻고 입 씻는데는 이력이 난 놈이라..황이 허옇게 묻은 손으로 귤 먹는 꼴을 보면
옛 서양사람처럼 난리를 칠게 분명하다.
그래도 나는 안 죽는다.
이 자두밭에 자두꽃이 하얗게 피면, 거기서 기념 사진도 올해는 한 장 찍을 거다. 꽃 떨어지고 작고 푸른 열매가 달리면, 큰 열매를 얻기 위해 작고 붙어 있는 열매는 접과까지 씩씩하게 해 낼거다.
차츰 차츰 나는 농사꾼이 되어간다.
풀도 매고, 밭둑 가에는 옥수수도 심으면서.
자투리 밭을 로타리 치면 들깨모도 부어서, 복날 오기 전에 두어포기
딱딱 키를 맞춰 들깨 모종을 심고, 봄감자도 두어 골 심어야지
하얀 감자꽃이 피면, 감자꽃 시도 외우면서.
북을 돋으고, 솔찮이 비가 내린 뒷날에는 요소 비료 한 봉다리 옆구리에 차고 나가, 골탕에다 솔솔 뿌려 주기도 하면서.
심고 남은 고추모종도 얻어다 줄 맞춰 심어 놓고, 풋고추 따 먹는 재미도 누려봐야지
탈래탈래 걸어서 철길을 따라 집으로 온다
뒤안 감나무 아래 포도박스에 흙 채워 심어 놓은 매발톱꽃과 제라늄같이 생긴 꽃씨는 언제쯤 올라 오려나.
상추씨와 얼갈이 배추씨도 뿌려 놓았는데, 그것들은 또 언제 푸른 촉을
내밀어 내 얼굴에 환한 웃음 한 자락 엥길려나
슬리퍼 끌고 가만히 뒤안으로 돌아가는 모퉁이 그림자
바로,
내 그림자.
한 달여를 사람 물색하여 전지를 부탁하였으나
그 일군이 얼마나 행동이 굼뜨든지, 꼴란 900평에
듬성듬성 박힌 자두나무 전지를 두 번을 날을
잡아도 못 다 하였다
승질 난 울 시동생이 어제 들고 앉더니 나머지
남겨 놓은 부분을 다 가지치기를 해서 그나마
자두꽃 오시기 전에 일을 마무리 하였다
자두나무 햇가지는 다 잘라 내고 묵은 가지만
남겨 놓는데, 햇가지는 횅냥횅냥하니 회초리하기
딱 알맞은 굵기가 되는데, 꼭 학교 다닐 때 선생님
들고 다니시던 교편과 비슷한 굵기이다.
사방 잘라 놓은 나뭇가지를 주으러 밭으로 갔다
소위 자외선 차단 모자라는 창모자를 쓰고, 마스크까지
실하게 둘러서는, 목 마르면 먹을 귤까지 댓개 챙기고
둘러 쓸 머릿수건에 면장갑 두 켤레, 소소하니 챙길기 많다
스쿠터 타고 가려다 봄 볕이 좋고 봄 바람이 좋아 걸어간다
철길을 따라 오백여미터 가면 고속도로와 경부선 철길 사이에
우리집 자두밭이 있다
시집 온지 올해로 십오년째 발걸음을 옮기는 밭이다.
좁은길을 따라 철둑 옆을 걸으면, 어디서 그 씨가 날아와
뿌리를 내렸는데, 새파란 원추리가 두어 포기 벌었고, 납죽납죽
잎들을 밀어 올리는 것은 무엇이냐...아구 갑자기 이름이 생각이
나지 않는다. 여름에 대궁 껍질을 벗겨 감자 썰어 넣고 녹말 풀어
물그리하니 끓여 놓으면 모심기 할 때 그만한 국물도 없다하였는데
아직 제비꽃은 방가로 간판을 내걸지 않아, 어느 땅 속에서 개업 준비를
하는지 알 수가 없으나, 이팝꽃 화들짝 피어나면 제비꽃도 덩달아
길섶에 깊은 보랏빛을 피어물리라.
몰래 비밀구좌처럼 피어나던 나만 아는 다래넝쿨도 아직은 동곳같은 작은 잎들을 내밀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단지 찔레만 가시를 돋운 채 작은 잎을 내어 놓을 뿐이다.
양지쪽 거름티미는 아지랭이같은 김들을 피어 올리며 썩고 있고
지난 겨울 말라서 엉겨붙은 한삼덩쿨은 죽어도 꺼끄름 기색은 포기할 수
없는가 손등에 달라붙어 앙칼진 손톱을 들이민다.
봄볕이 환히 떨어지는 자두밭에 성큼 들어서 가지를 줍는다.
황을 쳐대었더니 나뭇가지는 하얗게 색이 바랜 듯 황이 말라 있다
가지런히 모아서 들어내고 한 나절을 꿈직거린다
모아지는 자두가지에 꽃망울은 아직도 제 몸 붙은 가지가 나무에서 잘라
진 줄도 모르고 뽀조록히 입술을 내밀고 있는데, 꽃도 피워보지 못하고
시름시름 말라 죽을 일이라면, 그 긴 겨울 버틴게 속으로는 저으기
아깝고 속상하리라. 그러나 한 해 농사 튼실히 지으려면 그렇게 잘려져야 하는 것. 나를 원망 말거라.
산 너머로 해님이 넘어가니, 짧은 따사로움은 금새 펼쳐진 그늘에 설렁
바람이 인다.
그제서야 입 안이 쓰고 밭둑에 털퍼덕 걸치고 앉아 장갑을 벗는다
손등이며 손가락이며 황 가루가 스며들어 손가락도 하얗다.
손 씻을 뭣도 없으니 그냥 귤 하나 까서 입안에 쏙 밀어 넣는다
옛날 서양 사람들이 우리 나라 와서 논에 써래질하고 흙탕물에서 걸어나와 손도 씻지 않고 그 손으로 김치며 반찬 손으로 집어 점심을 먹고
미류나무 선선한 그늘 아래서 한 숨 자면, 그걸 보고 그네들은 디러운 손으로 밥 먹고 전부 배탈 나서 죽었다고 눈을 하얗게 까디집으며 난리를
쳤다지 않는가.
"하이고, 조선 사람들 손도 안 씻고 밥 먹더니 다 죽었네"
귤을 까서 입으로 넣고 내 손을 바라 보니 문득 그 얘기가 생각난다
이 손을 보면 울 아덜놈 엄마 죽는다고 난리칠거 아닌가? 손 씻고 입 씻는데는 이력이 난 놈이라..황이 허옇게 묻은 손으로 귤 먹는 꼴을 보면
옛 서양사람처럼 난리를 칠게 분명하다.
그래도 나는 안 죽는다.
이 자두밭에 자두꽃이 하얗게 피면, 거기서 기념 사진도 올해는 한 장 찍을 거다. 꽃 떨어지고 작고 푸른 열매가 달리면, 큰 열매를 얻기 위해 작고 붙어 있는 열매는 접과까지 씩씩하게 해 낼거다.
차츰 차츰 나는 농사꾼이 되어간다.
풀도 매고, 밭둑 가에는 옥수수도 심으면서.
자투리 밭을 로타리 치면 들깨모도 부어서, 복날 오기 전에 두어포기
딱딱 키를 맞춰 들깨 모종을 심고, 봄감자도 두어 골 심어야지
하얀 감자꽃이 피면, 감자꽃 시도 외우면서.
북을 돋으고, 솔찮이 비가 내린 뒷날에는 요소 비료 한 봉다리 옆구리에 차고 나가, 골탕에다 솔솔 뿌려 주기도 하면서.
심고 남은 고추모종도 얻어다 줄 맞춰 심어 놓고, 풋고추 따 먹는 재미도 누려봐야지
탈래탈래 걸어서 철길을 따라 집으로 온다
뒤안 감나무 아래 포도박스에 흙 채워 심어 놓은 매발톱꽃과 제라늄같이 생긴 꽃씨는 언제쯤 올라 오려나.
상추씨와 얼갈이 배추씨도 뿌려 놓았는데, 그것들은 또 언제 푸른 촉을
내밀어 내 얼굴에 환한 웃음 한 자락 엥길려나
슬리퍼 끌고 가만히 뒤안으로 돌아가는 모퉁이 그림자
바로,
내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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